20년 전 벌어진 ‘이태원 살인사건’의 진범으로 기소된 아더 존 패터슨 (출처: 연합뉴스)
20년 전 벌어진 ‘이태원 살인사건’의 진범으로 기소된 아더 존 패터슨 (출처: 연합뉴스)

2000년 민사 일부 승소해 위자료… 法 “다시 소송 제기 안 돼”

[천지일보=홍수영 기자] ‘이태원 살인사건’ 피해자 고(故) 조중필씨의 유족이 사건 가해자들을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했지만 법원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서울중앙지법 민사16부(김동진 부장판사)는 13일 조씨의 유족이 미국인 아서 존 패터슨과 에드워드 리를 상대로 낸 6억여원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각하했다.

각하는 소송이 적법하게 제기되지 않았거나 청구 내용이 법원의 판단 대상이 되지 않을 때, 심리 없이 재판을 끝내는 결정이다. 법원은 유족의 청구를 인정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고 조중필씨는 1997년 서울 이태원의 한 패스트푸드점 화장실에서 수차례 흉기에 찔려 숨졌다. 당초 검찰은 현장에 있던 리와 패터슨 가운데 리를 범인으로 지목해 기소했다. 하지만 대법원은 그의 무죄를 확정했다.

범행에 사용한 흉기를 버린 혐의(증거인멸) 등으로 유죄가 인정된 패터슨은 검찰이 출국정지 기간을 연장하지 않은 치명적인 실수를 틈 타 1999년 8월 미국으로 도주했다.

검찰은 2011년 재수사 끝에 패터슨을 진범으로 보고 그를 재판에 넘겼다. 그해 미국에서 체포된 패터슨은 2015년 9월 도주 16년 만에 국내로 송환돼 재판을 받았다. 지난해 1월 대법원은 그에게 징역 20년형을 확정했다.

이후 유족은 가해자 두 명을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두 사람이 조씨를 살해한 행위, 패터슨이 미국으로 도주해 실체적 진실 발견을 지연시킨 행위에 대해 위자료를 지급하라는 소송이었다.

'이태원 살인사건'의 진범 아더 존 패터슨에게 범행 20년 만에 징역 20년이 확정된 25일 오전 피해자 조중필씨의 어머니 이복수 씨가 서울 서초동 대법원에서 열린 상고심을 마치고 나와 소감을 밝히고 있다. (출처: 연합뉴스)
'이태원 살인사건'의 진범 아더 존 패터슨에게 범행 20년 만에 징역 20년이 확정된 25일 오전 피해자 조중필씨의 어머니 이복수 씨가 서울 서초동 대법원에서 열린 상고심을 마치고 나와 소감을 밝히고 있다. (출처: 연합뉴스)

하지만 재판부는 ‘살해 행위’에 대해 이미 유족들이 과거 두 사람을 상대로 민사 소송을 제기해 일부 승소 확정판결을 받은 만큼 다시 소송을 제기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유족은 에드워드 리가 대법원에서 무죄 확정 판결을 받은 후인 2000년 ‘두 사람이 공모해 조씨를 살해했거나 적어도 두 사람 중 한 사람이 직접 망인을 살해하고 나머지 한 명이 이를 교사·방조했다’는 이유로 민사소송을 제기했고, 위자료를 일부 받은 적이 있다.

재판부는 패터슨의 미국 도주가 불법이라는 유족 주장에 대해 “그 자체로 민법상 불법행위를 구성한다고 보기 어렵다”고 청구를 기각했다. 죄를 저지른 범인이 자신과 관련된 증거를 인멸하거나 도주한 것을 별도로 처벌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 경우라는 취지다.

유족 측 대리인인 하주희 변호사는 “가해자들에게 피해자에 대한 책임을 당연히 물어야 한다고 생각해 소송을 진행한 것”이라며 “(별건으로 이뤄지는) 국가를 상대로 한 소송에선 충분한 배상을 받길 원하고, 이 소송은 어떻게 할지는 의논해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유족은 부실 수사의 책임을 물어 국가를 상대로 별도의 소송을 제기, 지난 7월 1심에서 3억 6000만원의 위자료 지급 판결을 받아냈다. 이에 불복한 국가는 항소해 현재 재판이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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