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고궁박물관의 국외왕실 특별전시의 하나인 ‘리히텐슈타인 왕가의 보물’ 특별전 모습 ⓒ천지일보 2018.12.11
국립고궁박물관의 국외왕실 특별전시의 하나인 ‘리히텐슈타인 왕가의 보물’ 특별전 모습 ⓒ천지일보 2018.12.11

국립고궁박물관 특별展
‘왕가의 보물’ 대중에 공개

[천지일보=장수경 기자] 유럽의 왕실 문화의 정수인 ‘리히텐슈타인(Liechtenstein) 왕가’의 보물이 공개됐다.

문화재청 국립고궁박물관(관장 지병목)은 국외왕실 특별전시의 하나로 ‘리히텐슈타인 왕가의 보물’ 특별전을 개최했다. 전시는 내년 2월 10일까지 국립고궁박물관 2층과 1층 기획전시실에서 열린다.

리히텐슈타인 공국은 오스트리아와 스위스 사이에 자리한 국가로, 가문의 성(姓)이 곧 국가의 공식 명칭인 나라 중 하나다. 영토의 크기가 서울의 1/4 정도(약 160㎢)로, 세계에서 여섯 번째로 작은 국가다. 이곳은 ‘대공(Fürst, Prince)’을 국가 원수로 하는 입헌군주제를 채택하고 있다. 대공은 황제 또는 왕에게 통치권을 인정받아 독립적인 영토를 다스리며, 왕위 계승권을 가진 군주를 의미한다.

전시에서는 리히텐슈타인 왕가에서 가문의 역사와 함께 지속적으로 조성해 온 세계 최고 수준의 ‘리히텐슈타인 왕실컬렉션’ 소장품을 바탕으로 왕가의 역사와 문화를 소개하는 자리다.

◆‘리히텐슈타인’ 왕가의 역사

‘리히텐슈타인’의 이름이 역사에서 처음 등장한 것은 1120년경으로, ‘후고’라는 이름의 귀족이 그 시작이었다. 왕가의 시작인 후고는 12세기 초반 남쪽에 성을 짓고 세력을 키웠으며, 점차 빈과 체코 모라비아 지역으로 영토를 넓혀 나갔다.

1608년 카를 1세는 합스부르크 황실로부터 대공 지위를 받음으로써 왕가의 기반을 다졌다. 이어 요한 아담 안드레아스 1세가 현재 리히텐슈타인 공국인 셸렌베르크와 파두츠 지역을 구입하고, 1719년에 안톤 플로리안 1세가 두 지역을 합쳐 황실의 연방국가로 인정받으면서 공국으로 리히텐슈타인의 역사가 시작됐다.

리히텐슈타인 공국은 작은 나라지만 유럽의 중심지라는 지리적 이점을 활용해 국제적인 경제, 산업의 중심지가 됐다.

국립고궁박물관의 국외왕실 특별전시의 하나인 ‘리히텐슈타인 왕가의 보물’ 특별전 모습 ⓒ천지일보 2018.12.11
국립고궁박물관의 국외왕실 특별전시의 하나인 ‘리히텐슈타인 왕가의 보물’ 특별전 모습 ⓒ천지일보 2018.12.11

◆왕가의 생활문화

리히텐슈타인 가문이 오스트리아와 체코 모라비아 일대의 귀족 가문에서 왕가로 승격됐던 절대주의 시대에는 통치자를 인간이 아닌 ‘신의 모습’으로 여겼다.

군주는 고귀한 혈통을 잇는 선택된 자였으며, 군주만이 신이 내려주신 세계의 질서를 대변한다고 생각했다. 왕의 생명은 유한했으며, 지위와 역할은 시간을 넘어 존재하는 것이다.

이에 따라 리히텐슈타인의 대공들은 다양한 방법으로 자신의 사회적 지위와 권력을 널리 알리고자 했고 보통사람들과 구별되는 품격있고 화려한 생활을 추구했다. 이들은 거대한 정원이 딸린 궁전에 거주하고 호화로운 의복을 입었다. 연회를 개최하고 예술가의 후원자로 활동했다.

‘퓌르슈텐가세 방면에서 바라본 여름궁전’의 모습을 담은 그림은 당시의 리히텐슈타인 가문의 모습을 잘 표현해 놓았다. 이들이 사용한 ‘새장’과 시계가 있는 ‘샹들리에’, 긴 소파, 피에트라 두라 기법으로 화려하게 장식한 ‘함’ 등은 왕가의 문화를 표현해 놓았다.

특히 도자기는 왕실컬렉션의 중요한 수집대상이었다. 왕가는 중국과 일본에서 수입된 도자기를 비롯해, 1718년 빈 도자기공장이 설립된 뒤에는 이곳에서 제작한 도자기를 주로 구입했다. 빈 도자기공장은 깨끗한 색채와 특유의 도자양식을 정립해 명성을 얻었다.

근세 유럽에서 말 사육과 사냥은 귀족 문화의 정수를 보여주는 취미였다. 왕가에서도 좋은 품종의 말을 기르고 다루는 능력이 중시됐다. ‘말에게 굴레 씌우는 법’ ‘석궁과 크레인퀸’ 등 왕가에서 기록하고 사용한 유물은 당시의 왕가의 귀족문화를 알려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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