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이영칠 지휘자
지휘 공부 위해 ‘한국 지휘계 불모지’ 동유럽 직행
단원에겐 “연주할 땐 나만 보도록” 요구로 합심
이제껏 400여 회 연주 모두 기립 박수 호응 얻어
“연주가 끝나자마자 수많은 카메라 플래시가 여기저기서 터졌습니다. 한국과 일본은 항상 경쟁구도였지 않습니까? 게다가 아시아뿐 아니라 세계적으로 최고의 실력자만 무대에 세우기로 유명한 곳에서 불렀으니 기분이 묘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N향은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 이고리 스트라빈스키, 에르네스트 앙세르메 등 세계적인 거장들과 함께 연주한 곳으로 세계적 수준을 자랑하는 교향악단에서 지휘 연수가 적은 그를 부른 것이다.
일본뿐만 아니다. 동유럽권에서 그의 이름 ‘이영칠’은 이미 클래식 연주계에서 정평이 났다. 동유럽에서 지휘를 시작한 이유도 있지만 그의 실력이 빛을 발했기 때문이다. 악단 연주자들이 지휘자의 움직임을 놓치지 않고 음악에 빠져든 모습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지휘자와 단원들이) 합심하지 못하면 청중들이 먼저 알죠. 음이 제각각으로 흘러가거든요. 지휘자의 실력은 단원들을 어떻게 한 마음으로 만드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저는 단원들에게 음악을 느끼고 연주할 때엔 저만 보라고 요구합니다.”
그에게 ‘동유럽에서 인정받은 지휘자’라는 말이 뒤따른다. 불가리아에서 지휘 공부한 뒤 동유럽에서 데뷔를 했다. 어떻게 보면 당연한 수순처럼 보였으나 지휘를 공부하러 동유럽으로 간 것 자체가 우리나라 클래식계에서 볼 때 볼모지로 가는 것과 같았다.
“사실 지휘를 공부해야겠다고 결심을 했을 뿐 동유럽에 꼭 가야겠다는 생각은 없었어요. 하다 보니 동유럽이었죠. 그곳에서 보낸 지휘생활이 녹록치 않았습니다. 음악을 배우러 온 동양인은 찾아보기 어려웠고 동양인으로 지휘봉을 막 잡았을 때도 보이지 않는 벽이 있었죠.”
사실 동유럽은 우리에게 익숙하지 않을 뿐이지 드보르자크 등 유명 음악가들이 많이 나온 곳이다. 동유럽 음악계에서도 동양인은 흔치 않았다. 서로 낯선 상황에서 그는 혈혈단신으로 싸워 이겨야만 했다. 단원들은 동양인 지휘자에 괜스런 거부감이 들었다. 악장만을 따를 뿐 이 씨의 지휘를 보이지 않게 무시했다.
“단원들에게 내 지휘대로 한 번 연주해 보자고 단호하게 말하죠. 마음에 들지 않으면 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입니다. 일종의 ‘거래’죠. 단원들을 겨우 달래놓고 연주를 시작합니다. 그리고 끝나잖아요? 그러면 다들 제 방식을 따르죠.”
이제는 그를 따르는 단원들이 제법 있다. 이 씨가 기계적으로 음을 다루지 않고 감정이 담긴 음을 연주할 수 있도록 인도하기 때문이다. 그가 보여 주는 기적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지금껏 약 400회 연주를 하면서 단 한 번도 기립박수를 받지 않은 적이 없었다. 모든 연주를 기립 박수로 마무리하면서 단원들 역시 뿌듯함을 느꼈다.
“클래식에 한국향을 담았습니다. 우리네 다양한 감정을 연주에 실은 거죠. 끊을 듯 말 듯 하면서도 이어지죠. 아슬아슬함을 표현했습니다. 제가 느낀 대로 그대로 연주를 지휘했습니다. 다행히 청중들이 호응해 주더군요.”
지난해 불가리아 소피아교향악단을 이끌고 성남아트센터 콘서트홀에서 연주를 했다. 한국에서는 첫 연주회였다.
“한국에서도 종종 무대에 서고 싶고 한국 지휘자들이 세계를 무대로 많은 활동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