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칼럼] 사유재산제도와 재산권의 보장
[인권칼럼] 사유재산제도와 재산권의 보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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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겸 동국대 교수 

 

재산에 대한 권리는 근대 시민사회가 형성된 이후 본격적으로 거론되기 시작한 기본권이다. 서양의 경우 중세는 종교가 지배하던 시대였기 때문에 개인의 재산에 대한 인식은 무의미한 것이었다. 재산이란 지배자인 영주들의 전유물이었고, 분쟁이 벌어지면 대부분 전쟁을 통해 해결하던 시대에 개인의 재산을 보장받는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다. 이런 상황은 동양이라고 다를 바가 없었다. 황제나 왕이 지배하던 시대에 개인의 재산이란 허황된 대상이었을 뿐이다.

동양과 달리 서양은 르네상스 이후 계몽주의를 통해 시민의식을 가진 새로운 시민계급이 등장했다. 계몽주의가 확산되면서 인간은 자신을 하나의 인격체로 자각하게 됐다. 인간이 사회공동체에서 자신의 삶을 스스로 가꿔나가기 시작하면서, 생활의 기초가 되는 재산이 중요하다는 인식이 커졌다. 1789년 프랑스 시민혁명은 인류사에 큰 획을 긋는 사건이었고, 이후에 신분계급은 새로운 변화를 경험하게 됐다. 이 때 인권선언은 인간으로서 보장받아야 할 기본적 권리를 선언한 것이었다.

프랑스 인권선언은 재산권에 대해서도 규정하고 있는데, 제17조를 보면 우선 소유권이 신성불가침의 권리라는 것을 선언하고 있다. 그런데 인권선언에서도 재산권이 절대적 인권은 아니라고 했다. 재산권도 공공의 필요성에 의해 명백히 요구되는 경우에는 제한할 수 있는데, 이 경우에도 사전에 소유자에게 정당한 보상을 조건으로 갖추어야 한다는 것을 강조했다. 즉, 그 당시에도 사유재산제도의 보장과 함께 명백한 공공필요성이 발생하면 정당한 보상으로 재산권을 수용할 수 있음을 밝힌 것이다.

근대 헌법에 재산권이 기본권으로 등장한 후, 재산권은 19세기 빈부격차를 통해 새로운 변화와 경험을 하게 됐다. 그 결과 1919년 독일 바이마르헌법에서는 재산권행사의 공공복리 적합성이란 새로운 제한이 발생했다. 이는 국가공동체 내에서 개인이 노력해 형성한 재산이라고 해도 공공의 이익을 도외시하며 행사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이런 재산권의 역사는 우리나라 헌법에도 그대로 계승됐다.

현행 헌법 제23조는 제1항에서 재산권의 보장을 명시하면서 재산권의 내용과 한계는 법률로 정한다고 함으로써 현실적인 문제를 고려해 재산권보장에 선을 긋고 있다. 같은 조 제2항에서는 재산권행사의 공공복리 적합성을 규정해 재산권을 행사할 때 공공복리를 위해서만 해야 하는 사회적 제약을 명시하고 있다. 그 다음 제3항에서는 공공필요성이 있으면 재산권을 수용·사용·제한할 수 있음을 밝히고, 이 경우 정당한 보상을 법률로 정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우리나라 헌법상 재산권 규정은 재산권보장의 역사를 그대로 수용해 명문화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헌법재판소는 재산권이란 경제적 가치를 가지는 모든 공·사법상 권리라고 하면서 재산이 많고 적음은 고려하지 않는다고 했다. 재산권이 갖는 의미가 오늘날이라고 축소되는 것은 아니다. 인간이 사회공동체를 이루고 살고 있지만, 인간다운 삶을 위해 또는 생존을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해결해야 하는 의식주의 문제가 있다. 생존과 인간다운 삶을 위해 재산권은 삶의 기초가 되는 인간의 기본적 권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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