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행정권 남용 사건에 관여한 의혹을 받는 박병대·고영한 전 대법관이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6일 오전 법정에 출석했다. 전직 대법관으로서는 초유의 일이다. 조만간 양승태 전 대법원장도 검찰 출석을 앞두고 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그 경위야 어떻든 대한민국 헌정사 70년 만에 겪게 되는 사법부 최대의 굴욕이요 수치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이날 오전 10시 30분 영상실질심사를 앞두고 서울중앙지법에 도착한 박 전 대법관과 고 전 대법관은 심경과 책임 소재를 묻는 취재진에게 모두 입을 굳게 다물었다. 딱히 할 말도 없으려니와 그 수치와 비참한 심경을 어찌 말로 대변할 수 있겠는가. 더욱이 그토록 강조했던 ‘사법부 독립성’을 스스로 훼손했다니 전직 대법관으로서 그 참담함은 참으로 비통할 것이다. 후배 법관들 앞에서 또 국민 앞에서도 얼굴을 제대로 들 수 없을 만큼 죄질 또한 고약하고 나쁘다. 헌법의 근간을 짓밟은 것과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사실 박병대 전 대법관은 2014년 2월부터 2년간, 고영한 전 대법관은 2016년 2월부터 지난해 문재인 정부 출범 때까지 대법관이 겸직하는 법원행정처장을 지냈다. 사법부 최고의 실세요 핵심 요직에 있었다는 뜻이다. 그런 두 전직 대법관이 사법농단 주범으로 지목돼 범죄 혐의를 받으며 후배 법관 앞에서 구속을 위한 영장실질심사를 받은 것이다. 대한민국 사법부가 어쩌다 이 지경까지 오게 됐는지 그저 말문이 막힐 따름이다.

이미 구속된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의 주장에 따르면 사법농단의 실체는 그 윗선인 법원행정처장과 대법원장의 지시나 관여로 이뤄진 개연성이 높아 보인다. 임 전 차장 선에서 끝날 일이 아니라는 뜻이다. 더욱이 양승태 전 대법원장은 특정 재판을 대리하고 있는 모 로펌의 변호사를 대법원 집무실로 불러 향후 있을 재판의 진행과정을 설명했다는 얘기까지 불거지고 있다. 그 과정에서 청와대와 정부까지 연결돼 사실상 ‘재판거래’를 했다는 의혹이 더 확산되고 있는 상황이다. 말 그대로의 ‘사법농단’이요 사실상 권력의 하수인 역할을 했다는 비판에서도 자유롭지 않다.
아무리 박근혜 정부에서의 사법부였다고 하더라도 어찌 이럴 수가 있느냐는 탄식이 절로 나오지만 이것이 끝이 아니다. 앞으로 양승태 전 대법원장까지 철저하게 조사해서 이번 기회에 사법농단의 적폐들을 말끔하게 일소해야 한다. 현 사법부가 좌고우면 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 이를 통해 사법개혁의 더 탄탄한 기초를 다지고 내부 성찰의 철저한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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