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머무는 시] 연두빛까지는 얼마나 먼가 - 조정인
[마음이 머무는 시] 연두빛까지는 얼마나 먼가 - 조정인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연두빛까지는 얼마나 먼가

조정인(1953~  )

오후 4시 역광을 받고 담벼락에 휘는 그림자는 목이 가늘고 
어깨가 좁다 고아처럼 울먹이는 마음을 데리고
타박타박 들어서는 골목
 
담장 너머엔 온몸에 눈물을 매단 듯, 반짝이는 대추나무 새잎
 

저에게 들이친 폭설을 다 건너서야 가까스로 다다랐을 새 빛
대추나무 앙상한 외곽에서 저 연두빛까지는 얼마나 멀까
 
잎새 한 잎, 침묵의 지문 맨 안쪽 돌기까지는 얼마나 아득한
깊이일까 글썽이는 수액이 피워 올린 그해 첫 연두빛 불꽃까지는

 

[시평]

겨울의 문턱으로 들어서고 있다. 간간이 차가운 겨울비가 내리고, 머잖아 매서운 추위가 우리에게 닥칠 것이다. 나무들은 모두 잎들을 떨구고 앙상한 가지만 보이며 서 있다. 나무들의 잎 떨어진 모습을 보면, 더욱 그 추위가 실감이 되기도 한다.
저 잎새들 모두 진 나무들, 지금은 비록 잎들이 모두 떨어졌어도, 봄이 오면 어김없이 새순이 돋고, 연두빛의 잎새들을 내놓겠지. 연두빛의 그 잎새들을 내놓기 위해, 저 나무들은 그 겨울의 혹한도, 또 폭설도 모두 견뎌내야만 하리라. 그래서 힘들게, 힘들게 다다랐을 새 빛, 그 연두빛. 우리는 그 연두빛을 그저 막연히 바라다본다. 봄이 왔으니, 당연히 연두빛의 새잎들이 돋아나려니 하며, 그저 바라다본다. 그러나 실은 그 연두빛, 새순에 이르기 위해 얼마나 많은 어려운 시간들을 견디면, 견뎌내며 헐벗은 나무는 글썽이는 수액 침묵의 지문 맨 안쪽 돌기까지 피워 올렸을까.  
실은 우리들 삶이란 모두 이러한 것 아니겠는가. 연두빛과 같은 그러한 삶의 시간을 맞이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시련의 시간을 우리는 견디며 살아가야 하는가. 폭설이 내리고, 차가운 바람과 추위를 견디며, 봄의 새로운 시간을 맞이하기 위해, 우리들 얼마나 긴 시간 속, 아픔을 견뎌야 했는가. 세상의 모든 일 그저 쉽게 이루어지는 일 하나도 없음을 우리는 새봄을 기다리는, 저 연두빛의 새잎을 준비하는 겨울나무들의 앙상한 가지를 바라보면, 다시 한번 가슴 깊이 깨닫게 된다. 

윤석산(尹錫山) 시인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