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행공모 성립 여부에 의문”
검찰 즉각 반발 “상식 어긋나”
[천지일보=홍수영 기자] 양승태 전(前) 대법원장 시절 법원행정처장을 지내면서 ‘사법농단’의 핵심으로 거론되는 박병대·고영한 전 대법관에 대한 구속영장이 모두 기각됐다. 법원은 “구속 필요성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기각 사유를 밝혔다. 검찰은 즉각 반발했다.
서울중앙지법 임민성·명재권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6일 오전 박 전 대법관과 고 전 대법관을 상대로 각각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를 벌였다. 장고 끝에 7일 오전 0시 38분쯤 이들의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임 부장판사는 박 전 대법관에 대해 “범죄 혐의 중 상당 부분에 관해 피의자의 관여 범위 및 그 정도 등 공모관계의 성립에 대해 의문의 여지가 있다”고 설명했다.
▲관련 증거자료 다수가 수집돼 있는 점 ▲피의자가 수사에 임하는 태도 ▲현재까지 수사경과 등을 볼 때 증거인멸 우려가 보기 어려운 점 ▲피의자 주거·직업·가족관계 등을 종합하면 현 단계에서 구속사유나 구속의 필요성과 상당성을 인정하기 어렵다는 것이 법원의 판단이다.
고 전 대법관의 심사를 맡은 명 부장판사 역시 비슷한 결론을 내렸다. 그는 “피의자의 관여 정도 및 행태, 일부 범죄사실에 있어서 공모 여부에 대한 소명 정도, 피의자의 주거지 압수수색을 포함해 광범위한 증거수집이 이뤄진 점, 현재까지의 수사 진행 경과 등에 비추어 현 단계에서 피의자에 대한 구속 사유와 필요성과 상당성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법원의 이 같은 판단에 검찰은 즉각 반발했다.
검찰은 하급자인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이 구속된 상태에서 상급자들인 (법원행정처장을 지낸) 박·고 전 대법관에게 더 큰 형사책임을 묻는 것이 당연하다는 입장이다. 두 전직 대법관의 영장을 기각한 것은 재판 독립을 훼손한 반헌법적 중범죄에 대한 규명을 막는 매우 부당한 결정이라는 것이다.
법원의 영장기각으로 양 전 대법원장 시절 법원행정처장을 나란히 역임한 두 전직 대법관의 신병 확보 후 양 전 대법원장까지 칼끝을 미치려던 검찰 수사에 변수가 생겼다.
현재 상황에선 새로운 단서를 확보하지 못하는 한 구속영장을 재청구해도 법원의 결정이 바뀌진 않을 가능성이 크다.
검찰은 대신에 양 전 대법원장을 곧바로 조사하는 길을 택할 확률도 높은 것으로 전망된다.
이 사건을 수사하는 서울중앙지검 수사팀(팀장 한동훈 3차장검사)은 지난 3일 두 전직 대법관이 혐의를 극구 부인하고 있다고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박·고 전 대법관은 전 대법원장 시절 사법행정을 지휘하는 법원행정처장을 역임하면서 재판 개입과 법관 사찰 등 여러 의혹에 연루된 혐의를 받고 있다. 박 전 대법관은 2014년 2월~2016년 2월, 고 전 대법관은 2016년 2월~2017년 5월 처장으로 재직했다.
이들은 ▲전국교직원노동조합 법외노조 통보처분 사건 ▲옛 통합진보당 의원 지위 확인 행정소송 ▲헌법재판소 내부사건 정보 및 동향 수집 ▲상고법원 등 사법행정 반대 법관 및 변호사단체 부당 사찰 등 수많은 의혹에 연루된 혐의를 받고 있다.
박 전 대법관은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소송을 고의로 늦추는 등 각종 재판에 개입한 혐의가 핵심이다. 검찰은 당시 법원행정처가 일본 전범기업 측 대리인과 꾸준히 접촉하면서 정보를 나눈 사실을 파악했다.
고 전 대법관은 ‘정운호 게이트’ 사건 당시 판사들을 상대로 한 수사 확대를 차단하고자 수사 정보를 빼내고 영장 재판 가이드라인을 지시한 혐의 등을 받는다. 2016년 ‘부산 스폰서 판사’ 비위 의혹을 덮기 위해 사건을 은폐하고 재판에 개입한 혐의도 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