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일보=강은영 기자] 케이피 시토울라 네팔 관광청 한국사무소장은 지난달 15일 서울 마포구에서 유창한 한국말로 27년간의 한국생활과 서울명예시민이 되기까지의 있었던 일들을 소개했다. ⓒ천지일보 2018.12.5
[천지일보=강은영 기자] 케이피 시토울라 네팔 관광청 한국사무소장은 지난달 15일 서울 마포구에서 유창한 한국말로 27년간의 한국생활과 서울명예시민이 되기까지의 있었던 일들을 소개했다. ⓒ천지일보 2018.12.5

서울시 명예시민 케이피 시토울라

유학길로 한국정착 27년차… 관광청업무·봉사 등 활동 왕성

한-네팔 문화교류 앞장… “韓, 240만 이주민 품어야” 쓴소리

[천지일보=손성환 기자] “저는 네팔에서 태어났지만 한국은 제게 사회생활을 가르쳐 준 고향과 같은 곳이에요.”

케이피 시토울라 네팔 관광청 한국사무소장은 지난달 15일 서울 마포구에서 유창한 한국말로 27년간의 한국생활에 대한 생각을 떠올렸다. 그에게 한국은 제2의 고향이나 다름없다.

시토울라는 네팔 이주 노동자에 대한 지원과 한국과 네팔 간 문화교류의 공로로 지난 2009년 서울시 명예시민으로 선정된 인물이다. 신기하게도 시토울라와 처음 만난 이날도 ‘2018 서울명예시민의 날’ 행사가 있는 날이어서 그는 행사에 다녀왔다고 했다.

“솔직히 저는 명예시민이 된 것도 몰랐어요. 네팔 관광청 입장에서 서울시와 한-네팔 문화 교류 차원에서 인연을 맺다가 그때 ‘하이 서울 페스티발’ 등에도 참여했어요. 네팔에 대한 홍보·음식부스·문화공연 등 3가지를 가지고 9년 연속 참가했어요. 70~80여개 나라 외교관·관광청 등에서 참여를 하는데, 네팔이 1등을 차지하기도 했어요.”

1990년대 네팔이 민주화를 위한 내전을 겪고 이듬해 1차 민주화를 이뤘을 때쯤 네팔 청년들 사이에선 나라를 잘 살게 만들겠다는 마음을 가지고 유학을 떠나는 것이 유행했다. 시토울라도 그 유학길에 올랐던 한 명으로, 친구들은 미국·일본·홍콩·대만 등으로 유학을 떠날 때 자신은 누군가 만들어놓은 길을 따라가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한국행을 택했다고 말했다.

“대학 때 배운 한국에 대해서는 1988년 서울올림픽에 대해서만 조금 나와요. 일제시대와 한국전쟁을 겪고 올림픽을 성공적으로 이루려는 모습들이 궁금했어요. 그래서 네팔과 아무 교류가 없었던 한국으로 가보자라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26~27년 한국에서 지냈어요.”

◆네팔 여인 정신병원 보낸 사건

시토울라는 네팔 대사관보다 먼저 한국에 정착해 실질적으로 외교 관련 일들을 해왔었다고 소개했다. 그는 휴대전화를 두 개씩 갖고 다닌다. 이날도 인터뷰 이후에 네팔 출신의 이주노동자의 상담이 예정돼 있다고 했다.

특히 시토울라는 1999년에 언론에 회자됐던 멀쩡한 네팔 노동자 찬드라 쿠마리 구룽이 한국에 단기 비자로 왔다가 정신병원에 6년간 감금된 안타까운 사연을 해결하는 과정에 대해서 말했다. 한 섬유공장에서 보조 미싱사로 일했던 찬드라는 어느날 포장마차에서 음식을 먹으려고 운동복 주머니에 2만원을 넣고 나왔다가 잃어버리고 말도 안 통해서 파출소에 잡혀가게 됐다. 파출소에서는 그녀를 오인해서 청량리 정신병원에 보냈고 용인 정신병원으로 옮겨져 6년 넘게 갇혀있게 됐다. 네팔에서는 그녀가 행방불명돼 찾을 수 없는 줄 알고 장례식까지 치렀다.

“제가 98년 당시에 네팔 교민회 총무를 맡을 때였어요. 찬드라 사건은 한국 내 이주민에 대한 인권침해 사건이었어요. 이 분은 재판을 할 자금도 없었어요. 우리가 보상금이라도 받게 해줘서 집이라도 마련할 수 있게 해줘야 하겠다 했는데, 더 기가막한 건 한국 정부가 그 이후에 6년 넘게 정신병원에 감금된 찬드라에게 실종 당시 네팔 돈으로 계산해서 320만원을 보상해준다는 거예요. 그래서 그 돈 안 받게 하고 우리가 약 2000만원을 모아서 후원해드렸어요. 경찰의 사과도 받아냈고요.”

[천지일보=강은영 기자] 케이피 시토울라 네팔 관광청 한국사무소장은 지난달 15일 서울 마포구에서 유창한 한국말로 27년간의 한국생활과 서울명예시민이 되기까지의 있었던 일들을 소개했다. ⓒ천지일보 2018.12.5
[천지일보=강은영 기자] 케이피 시토울라 네팔 관광청 한국사무소장은 지난달 15일 서울 마포구에서 유창한 한국말로 27년간의 한국생활과 서울명예시민이 되기까지의 있었던 일들을 소개했다. ⓒ천지일보 2018.12.5

 ◆다문화만 아닌 240만 이주민 모두 품어야

시토울라는 한국에 이주한 네팔인을 비롯해 이주민에 대한 한국 정부의 관심이 더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피부색이 다르다고 해서 인종이 다르다고 해서 차별을 하면 안 된다고 했다. 자신도 네팔에서 자랐지만 한국에서 사회인을 만들어줬다며 고향 못지않게 한국에서 사회인으로서 잘하고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다고 했다. 그는 한국 홍보대사냐라는 말도 들었다. 그만큼 자신이 한국사회의 일원임을 강조하고 자신과 같은 이주민에 대해 한국 정부가 관심을 가져줄 것을 호소했다. 그는 ‘다문화’라는 용어부터 고쳐야 한다고 했다.

“다문화라는 말은 남의 문화로 받아들이는 느낌이에요. 차라리 이주민이라고 하면 좋겠어요. 다문화는 국제결혼과 연관이 있어서 한국 국적의 남성 배우자와 외국 여성이 결혼하면서 만들어진 단어입니다. 한국 정부가 다문화 가정은 지원하지만, 한국에 정착한 외국인은 어떤 지원도 하지 않아요. 그래서 외교관들이나 유학생 부부가 한국에 안 오려고 해요. 외국 외교관이 한국에서 아이를 낳으면 한국어만 배울 수 없기 때문에 국제학교에 보내야 해요. 그렇다고 언어교육 지원을 받을 수 있는 것도 아니에요. 한국에 거주하는 외국 이주민이 240만명이고, 다문화는 30만명이에요. 이주민이라고 호칭을 바꿔서 이들 모두가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하면 좋겠어요.”

시토울라는 또 한국에 거주한지 30년 가까이 돼가지만 부모님을 한국에 모실 수 없어서 떨어져 살 수밖에 없다고 하소연 했다. 그는 한국 영주권자이지만 부모를 한국에 모실 수 없다. 순수 자녀와 배우자만 인정이 되기 때문에 부모는 한국에 왔다가도 3개월 이후에는 다시 네팔로 돌아가야 한다.

◆외교·봉사 활동에 아이돌볼 틈도 없어

시토울라는 네팔 정부의 지원 없이 한국에서 관광청을 운영하고 개인사업을 하면서 한국 거주 네팔인에 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사실상 네팔 대사관의 역할을 해왔다. 앞으로도 그는 사업과 봉사를 계속할 것이라고 했다.

“한국과 네팔 간 민간차원에서 노력을 계속해서 좋은 관계가 되도록 노력하고 있어요. 주중에는 사업과 교민들 상담을 하고 주말에는 봉사활동도 하고 있어요. 어떤 사람이 뇌성마비로 쓰러졌었는데 병원에서 사망진단서와 함께 병원비 청구서 5000만원이 나왔어요. 병원에서 후원단체를 마련하고 저희도 1000만원을 지원해서 시신을 가족에게 보내줬어요. 얼마 전에도 어떤 사람이 불법체류자가 됐어요. 정상적으로 들어왔던 사람이에요. 사람 자체가 불법은 아니잖아요. 이런 사람들 우리가 도와줘요.”

시토울라는 남을 위해 희생하면서 오히려 가족은 잘 챙기지 못한 것을 미안해했다.

“저는 우리 아이들에게는 못된 아빠인 것 같아요. 이런 일들 하느라 너무 바빠서 아이들을 토요일 아침에 잠깐 보고 거의 못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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