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환벽당 (자료 제공 : 담양군)

[천지일보=정인선 기자] 전남 담양은 올곧은 선비정신을 이어받은 조선시대 사림(士林)들이 불합리하고 모순된 정치 현실을 비판하고, 자신들의 큰 뜻을 이룰 수 없음을 한탄하며 낙남(落南)해 누(樓)와 정자(亭子)를 짓고 살았던 곳이다. 이들은 이곳에서 빼어난 자연경관을 벗 삼아 시문을 지어 노래하기를 즐겼다.

조선시대 한문이 주류를 이루던 때에 국문으로 시를 제작했는데, 그중에서도 가사문학(歌辭文學)이 크게 발전하며 꽃을 피웠다. 이서의 <낙지가>, 송순의 <면앙정가>, 정철의 <성산별곡> <관동별곡> <사미인곡> <속미인곡>, 정식의 <축산별곡> 등 18편의 가사가 전승되고 있어 담양을 가사문학의 산실이라고도 부른다.

문학관 가까이에는 호남시단의 중요한 무대가 되었던 소쇄원·식영정·환벽당 등이 자리 잡고 있다. 이는 한국 가사문학 창작의 밑바탕이 돼 면면히 그 전통을 오늘날까지 이어오고 있다.

가사문학의 중요한 무대였던 환벽당과 식영정은 소쇄원과 함께 담양의 ‘일동삼승지’로 묶어 담양 10경의 하나로도 손꼽힌다.

환벽당은 광주호 상류 창계천의 충효동 언덕 위에 있는 정자로, 1972년 1월 29일 광주광역시기념물 제1호로 지정됐다.

조선시대 나주목사(羅州牧使)를 지낸 김윤제(金允悌 : 1501∼1572)가 고향으로 돌아와 창건하고, 교육에 힘쓰던 곳이다.

벽간당이라 불리기도 했던 환벽당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의 목조와가이며, 우암 송시열이 쓴 글씨가 걸려 있고, 임억령과 조자이의 시가 현판으로 걸려 있다.

김윤제의 제자 가운데 대표적인 인물로는 정철(鄭徹)과 김성원(金成遠) 등이 있다. 특히, 정철은 16세 때부터 27세에 관계에 나갈 때까지 환벽당에 머물면서 학문을 닦았던 것으로도 유명하다.

 

 

▲ 식영정 (자료 제공 : 담양군)

‘그림자가 쉬고 있는 정자’란 뜻을 담고 있는 식영정은 서하당 김성원이 그의 장인 임억령을 위해 지은 정자다. 이곳도 조선 중기 학자이자 정치가인 정철이 성산에 와 있을 때 머물렀던 곳 중의 하나다. 김성원은 송강 정철의 처가 쪽 친척이며, 송강이 성산에 있을 때 함께 공부하던 동문이다.

정철이 벼슬을 그만 두고 고향으로 와 식영정을 무대로 하여 많은 선비들과 친분을 나누었으며, 시문을 익히고 <성산별곡> 등의 문학작품을 지었다.

지방기념물 제1-1호로 지정돼 있는 식영정은 정면 2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으로 한쪽 귀퉁이로 방을 몰아붙이고 전면과 측면을 마루로 한 특이한 구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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