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준 역사연구가/칼럼니스트

 

최근에 조선시대 불화(佛畫)를 조사하다 매우 주목할 만한 사실을 알게 됐다. 임진전쟁 당시 일본군이 한반도에 상륙해 많은 문화재를 약탈해 간 사실은 주지하는 사실이다. 그러나 이번처럼 참담하게 와 닿은 충격은 처음이었다. 

삼장탱화(三藏幁畵)란 사후 망자의 극락왕생을 기원하는 불교 그림이다. 세 보살(菩薩)을 주존으로 모시고 사방에 여러 인물을 그린 그림이다. 이 탱화는 조선 중기 잠시 나타났다가 한때 명맥이 끊기고 후기에 들어서 다시 유행한다. 

한국에는 조선 중기에 그려진 삼장탱화가 한 점도 없다. 중중~선조 때 그린 것이 모두 일본 사찰에 보존돼 있다. 일본학계가 조사한 것은 8점이다. 이 8점 가운데 임진전쟁 직전에 그려진 것도 한 점 있다. 일본군이 사찰을 돌아다니며 금방 그려진 탱화마저 모두 떼어내 가져간 것을 알려 준다. 

일본군은 한국불화의 예술성과 가치를 이미 알아본 것인가. 사찰에 걸려 있던 고려불화들이 이 시기 대부분 수난을 당했다. 고려 불화는 삼장탱화보다는 1~2백년 앞서 그려진 것인데 일본군은 사찰을 샅샅이 뒤지며 닥치는 대로 약탈했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삼장탱화를 고려불화로 착각했을지 모른다. 이 시기까지 탱화는 고려적 기법이 내려왔다. 비단을 사용해 고려불화의 특색인 배채법(背彩法)을 견지해 환상적인 분위기를 낸 것이다. 배채법이란 비단의 뒤에다 그림을 그리는 방법이다. 

고려불화는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미술품으로 평가 받고 있다. 중국 불화나 일본 불화가 따라오지 못한다. 조선 중기 삼장탱화도 그 화려함과 세밀한 붓놀림이 결코 뒤지지 않는다. 

그런데 필자가 최근 임진전쟁 직후 광해군 시기에 그려진 삼장탱화 한 점을 조사하게 됐다. 서울의 저명한 수장가가 가지고 있는 이 탱화는 AD 1620년에 그려진 것으로 바로 전쟁을 겪은 후에 제작된 유일한 것이었다. 삼장탱화로는 현존하는 국내 유물 가운데 가장 오래 된 것이며 문화재급이다. 

한국의 문화유산은 과거 잇단 전란으로 파괴되고 유린됐다. 고려 말 왜구로부터 시작해 임진전쟁과 두 번의 호란으로 수많은 국보 보물급이 약탈당하거나 소실됐다. 한국에 없는 고려불화가 대부분 일본에 수장돼 있는 것을 봐도 그 정황을 짐작할 수 있는 것이다. 

오래 전부터 이런 해외반출 문화재가 국제 경매시장에 등장해 한국 수장가들이 매입해 국내로 들여온 것이 여러 점이다. 그런데 모두 수억이나 수십억 천문학적 값을 주고 매입해 들여온다. 최근에는 고려 불화 가격이 수백억을 호가한다는 말도 있다. 

1907년 충남 부여 규암리에서 출토돼 일본인 수장가에게 팔려간 백제 금동관음불상의 소재가 최근 확인돼 학계를 흥분시켰다. 아름다운 미소가 일품인 이 관음상은 국보급 가치를 지니고 있다. 학계의 고증을 거쳐 막상 문화재청이 이를 매입 환수하려고 나서자 일본 수장가는 150억을 달라고 했다는 보도가 눈길을 끈다. 국립박물관은 40억원으로 감정하고 매입하려하나 일본 수장가는 거부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국립박물관의 유물 구입비가 1년에 고작 10억원이라고 한다. 문화재청은 당초 17여억원을 요청했으나, 예산 심의과정에서 삭감당해 이 금액이 국회에 상정돼 있다. 이 예산으로 해외에 반출된 국보급 문화유산을 사들인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한국에서 가져간 문화유산을 외국인이 되돌려준 사례도 적지 않다. 평생 모은 한국 고대 와당(瓦當)을 국립박물관에 기증한 일본인 수장가 이우치 이사오(井內功)씨의 경우는 특별하다. 그는 1987년 국립중앙박물관에 1천여점의 유물을 기증했다. 

고향을 잃은 백제 금동관음불상이 1500년 고국으로 귀환해 아름다운 미소를 국민들에게 선사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일본은 문화재약탈 과거사부터 사과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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