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폐가>
恨이 많아 하늘로 올라가지 못해
종교 안에서 풀이 ‘조금씩 달라’

[천지일보=이지수 기자] 으슥한 밤 어떤 한 여자가 서 있다. 머리는 오랫동안 안 감았는지 부스스하고 옷이 없나보다. 하얀 소복만 입었다. 게다가 맨발인 것을 보니 신발도 없는 것 같다. 화장은 어찌나 두껍게 했는지 얼굴이 허옇다.

가만히 보니 입에 피까지 묻어있다. 혀를 깨물어서 아픈 건지 울고 있다. 다 울고 나서는 노려본다. 순간 등골이 오싹하다.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귀신’이었다.

세상에 귀신이 정말 존재할까. 간혹 귀신을 봤다는 사람, 귀신 목소리를 들었다는 사람은 있다. 그리고 그들이 본 귀신의 모습은 다양하다.

◆한 많은 처녀귀신
귀신의 모습은 다양하지만 귀신하면 가장 먼저 연상되는 ‘처녀귀신’은 우리나라 대표 귀신이라 할 수 있다. 처녀귀신은 항상 머리를 풀어헤치고 밤에 하얀 소복만 입고 나타나 울거나 아니면 뭐라도 뚫어버릴 것처럼

▲ 처녀귀신 ⓒ천지일보(뉴스천지)
노려본다.

<전설의 고향>같은 드라마나 영화에도 많이 등장한다. 그 속에서 그들은 보통 억울하게 죽었다. 그 한(恨) 때문에 불만이 많다. 그래서 자신을 해친 사람 앞에 나타나 따지거나 원한을 풀어 줄 수 있을 만한 유능한 사람을 찾아가 밤새 신세 한탄을 한다.

흔히 귀신하면 여자, 그것도 왜 처녀귀신을 먼저 떠올릴까. 이에 대해 장정태(한국민속종교연구소) 소장은 “드라마나 영화, 소설에 많이 등장하는 것이 처녀귀신이기 때문에 알게 모르게 정형화 된 것”이라며 “귀신은 성별 차이가 없다”고 전했다.

▲ 총각귀신 ⓒ천지일보(뉴스천지)
◆장가가고 싶은 총각귀신
처녀귀신이 있는가 하면 우리가 흔히 몽달귀신이라고 부르는 ‘총각귀신’도 있다. 말 그대로 총각이 죽어서 된 귀신이다. 장가를 가지 못하거나 상사병에 걸린 총각이 죽어 혼령이 된 것.

조선시대 기생 황진이와 얽힌 유명한 일화도 있다. 황진이가 기생이 되기 전 그의 미모에 반해 혼자 상사병을 앓다가 죽은 총각의 상여가 황진이 집 앞에 와서는 땅에 붙어 떨어지지 않았다.

이에 황진이가 자기 속적삼을 얹어주고 위로의 말을 해주니 상여가 떨어졌다는 일화다. 처녀귀신은 누군가에게 죽임을 당해 억울해하지만 총각귀신은 장가를 못가고 죽은 것이 억울한 모양이다.

장 소장은 “우리나라 민속의식 으로 총각귀신과 어느 집 처녀귀신이 날짜를 정해 산 사람과 똑같은 방식으로 사혼식(死婚式)을 거행하는 것이 있다”며 “인형 같은 것을 만들어 전통혼례를 치른 뒤 신방을 꾸며 놓는데 여기서 흥미로운 것은 옛날 신랑과 신부가 신방에 들어가면 바깥에서 손가락으로 구멍 뚫으며 장난치는 것까지 재연한는 점”이라고 말했다.

◆미인이 될 수 없는 달걀귀신

▲ 달걀귀신 ⓒ천지일보(뉴스천지)

달걀귀신은 얼굴이 ‘달걀’처럼 생겨서 ‘달걀귀신’이다. 얼굴이 달걀형이어서 미인이면 좋으련만 그 달걀이 아니다. 이들은 미인이 될 수 없다. 왜냐면 얼굴에 이목구비가 없이 머리카락만 덩그러니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얼굴 없는 것도 서러운데 제사 지내 줄 자식이나 친인척이 아무도 없다. 그래서 다른 말로 무자귀(無子鬼)라고 알려져 있다.

▲ 물귀신 ⓒ천지일보(뉴스천지)
◆사람 잡는 물귀신
물귀신은 물에 빠져 죽은 귀신이다. 물귀신은 대개 물에 빠져 죽은 사람이 귀신이 돼 물속에 있다가 다른 사람을 잡아당겨 익사시킨다고 한다. 흔히 쓰는 말 중에 어떤 사람을 붙잡고 놓아 주지 않는다는 뜻의 ‘물귀신작전’이라는 말도 이 때문에 생겨난 것.

귀신은 주로 밤에 활동한다. 귀신은 밤을 좋아하는 것일까. 이찬수(한국종교문화연구원) 원장은 “음양이론도 있듯이 밤은 음이고 낮은 양인데 귀신은 음으로부터 분리된 존재라고 생각해왔다”며 “무당들은 낮에도 귀신을 보기 때문에 귀신이 반드시 밤에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또 이 원장은 “밤에 귀신이 나타난다고 생각하는 것은 밤에 무언가 많은 경험을 하기도 하고 확인 할 수 없는 보이지 않는 세계에 대한 심리적 두려움이 있기 때문”이라고 덧붙여 말했다.

또한 귀신을 보거나 공포영화를 볼 때 등골이 서늘해지는 이유는 뇌에 자극을 받아 본능적으로 교감신경계가 활성화 돼 추운 것과 유사한 반응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귀신 있다? 없다?
귀신을 체험한 사람은 귀신이 있다고 믿지만 보이지 않는 귀신의 특성 때문에 귀신이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8살 때 신내림을 받아 35년째 무녀 생활을 하는 정순덕 씨는 “요즘 태어난 아이들은 귀신 이야기를 듣고 자라지 않았지만 귀신을 경험하기도 한다”며 “하나님이 존재하듯이 귀신도 존재한다”고 강조했다.

민간 신앙 안에서 귀(鬼)는 흙으로 돌아간 몸만을 의미하기보다는 살아있는 인간에게 부정적 인식을 주는 물질 이상의 힘이며, 신(神)은 위로 올라간 기의 차원만이 아니라 인간의 신앙 대상이 되기도 한다.

이찬수 원장은 “귀(鬼)는 인간의 형상을 하고 나타나는 경우가 대다수이며 하늘로 올라가지 못한 존재”라며 “원(怨) 때문에 후손에게 나타나 해코지를 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고 밝혔다.

◆종교가 말하는 귀신
각 종단마다 가지고 있는 경전이나 경서를 보면 풀이와 해석 등은 조금씩 다르지만 귀신에 대해 언급해 놓은 것을 볼 수 있다. 종교에서 말하는 귀신은 근본적으로 사람이 아닌 영(靈), 혼(魂)이며 이것은 영생이나 윤회 같은 종교적사상과 연관성이 깊다.

최대광(감신대 강사) 목사는 “귀신은 불신자들의 사후 영”이라며 “불신자들의 사후 영과 타락한 천사를 포괄해 귀신이다”라고 강조했다. 또 최 목사는 “신약의 복음에서 예수가귀신을 쫓아낸 것처럼 성서적으로 보면 병의 원인도 귀신에게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법현스님(태고종열린선원 원장, KCRP종교 간 대화위원)은 “근본적으로 귀와 신은 다른 존재”라며 “귀는 아귀의 줄임말로 육도 중생 중의 하나로 공포스럽고 기괴한 모습을 하고 염라왕계에 살고 있다”고 정의했다.

이어 “신은 여러 가지 능력을 지닌 특별한 존재이기는 하나 기독교의 개념처럼 절대적인 존재는 아니고 정령과 비슷한 존재로 볼 수 있다”며 “불교의 귀신에 관한 개념 및 사고는 일정한 틀이 없다“고 덧붙였다.

반면, 천도교의 생각은 조금 달랐다. 김춘성(부산예술대) 교수는 “천도교에서 귀신은 공경의 대상도 두려움의 대상도 아니다”며 “천도교인들은 귀신의 실체를 인정하지 않으며 스스로 죽었다는 것이 자각이 안 된 기운의 작용으로 보고 있다”고 주장했다.

귀신은 종교적 교리를 떠나 사람들에게 일반적으로도 공포와 두려움의 대상이자 해를 끼치는 존재로 생각되어지며 쫓아야만 하는 존재라고 여겨지고 있다.

장정태 소장은 “귀신이 우리에게 해를 끼치는 존재만은 아니다”며 “나쁜 귀신이 있기는 하지만 좋은 귀신도 있으며 귀신 잘 만나서 부자가 되는 경우도 있다. 게다가 상황에 따라서는 사람을 도와주는 귀신도 있다”고 말했다.

귀신에 대해 논하다보면 있다, 없다부터 시작해 논쟁은 끝이 없을 것이다. 분명한 것은 귀신은 육체를 벗어난 존재로 사람이 아니며 그렇기 때문에 그들이 가야 할 곳은 따로 있다는 것이다.

천지일보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저작권자 © 천지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