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머무는 시] 맨발의 탁발 - 곽효환
[마음이 머무는 시] 맨발의 탁발 - 곽효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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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발의 탁발

곽효환(1967~  )

붉은 장삼에 가사를 두른
까까머리 동승 한 무리 줄지어 간다
종을 흔들고 발우를 품은 맨발들
그렁그렁한 커다란 눈망울
어린 송아지 떼가 줄지어 길을 건넌다
흑백필름이 느리게 흘러가다 일순 멈춘다
양곤의 외곽, 국제공항 가는 길목
뒤엉킨 낡은 차들도 사람들도
잠시 멈추고 길을 연다

전생(前生) 같기도 내생(來生) 같기도 한
발우 품은 맨발의 어린 내가 종종걸음 친다

 

[시평]

미얀마의 옛 수도가 양곤이었던가. 미얀마는 불교의 나라인가. 그렇다 철저한 불교 나라이고, 승려에 대한 예와 계율이 그 어느 나라보다 철저한 나라이다. 미얀마는 소승불교, 지켜야 할 계율이 많은, 그래서 어쩌면 자신의 수행에 철저한 불교의 나라 미얀마. ‘오후 불식’이라고 해서 오후 12시부터 다음날 아침 공양 전까지는 물이나 주스 이외에는 절대 먹지 않는다는 철저한 계율을 지닌 불교, 소승불교. 이 오후 불식 계율은 지금도 미얀마에서는 철저하게 지켜지고 있다고 한다. 

미얀마 양곤의 어느 외곽, 붉은 장삼에 가사를 두른 까까머리 동승 한 무리 줄지어 간다. 종을 흔들고 발우를 품은 맨발들이 줄을 지어 걸어간다. 그 뒤로는 어린 송아지 떼가 줄지어 길을 건넌다. 마치 우리가 오래 전에 보았던 흑백 필름 마냥 느리게 지나가는 그 풍경. 양곤 국제공항으로 가는 그 길이지만, 이들의 행렬은 결코 ‘국제공항’이라는 이름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국제공항을 출발한 사람들이 세계의 곳곳을 헤매고 다녀도, 이들 동자승들은 그냥 맨발로 줄을 지어 탁발을 하며 세상을 걸어 다닐 것이다. 뒤엉킨 낡은 차들도 사람들도 잠시 멈추고 길을 열어주는 그 길을 따라. 마치 우리들의 전생 같기도 한, 아니 내생 같기도 한 그들, 그래서 어쩌면 조금도 낯설지가 않은 그들. 지금도 우리의 곁 전생이듯, 내생이듯 느리게, 느리게 세상을 건너가고 있구나.

윤석산(尹錫山)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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