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일보 2018.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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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 성폭력 2차 피해 심각

성폭력 신고·도움요청 안해

 

“선생님께 말해도 해결 안돼”

“학교구성원, 인식 변화 시급”

[천지일보=임혜지 기자] “성폭행과 학교폭력으로 투신자살한 우리 딸의 한을 풀어주세요.”

인천의 한 아파트에서 뛰어내려 숨진 여중생의 유족들이 이 여중생이 숨지기 전 또래 학생들로부터 성폭행을 당했다는 의혹을 제기해 경찰이 수사에 나선 가운데, 28일 청와대 국민청원엔 여중생 A양(15)의 이 같은 제목의 아버지의 글이 올라왔다.

자신을 A양의 아버지라고 소개한 청원인은 “딸의 장례식 때 딸의 친구들로부터 ‘성폭행을 당한 적이 있다’ ‘여러 친구들에게 망신을 당했다’는 등의 휴대폰 문자 메시지를 받았다”며 “딸은 중3이었던 남학생에게 성추행을 당했고, 동급생 남학생에게 고민을 털어놓자 SNS에 유포하고 소문내겠다고 협박해 성폭행을 했다”고 주장했다.

A양은 지난 7월 19일 오후 8시께 인천시 미추홀구 아파트 3층에서 스스로 뛰어 내려 숨졌다.

유족들은 A양이 또래 남학생들로부터 피해를 당하면서 투신했다고 의혹을 제기하며 지난 8월 30일 남학생 3명을 고소한 데 이어 최근 2명의 남학생도 범행에 가담한 혐의로 추가 고소했다.

현재 경찰은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강간 등) 및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된 B군(15) 등 5명에 대해 수사를 벌이고 있다.

최근 성폭력 피해를 당한 여중생이 잇따라 숨지는 사건이 발생하면서 성폭력 2차 피해 문제의 심각성이 대두되고 있다.

문제는 피해 학생들이 신고를 하거나 선생님 또는 주변 어른들에게 도움을 요청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곧 보호자 역할을 해야 할 학교나 사회가 이들의 피해를 방관으로 일관해 온 방증이라는 목소리도 나온다.

실제 익명을 요구한 한 학생은 “친구 발언에 수치심을 느껴서 선생님께 말했더니 아무것도 해결되는 게 없었다”며 “이후부터는 선생님께 말하지 않았다”고 했다. 이와 관련해 전문가들은 교사 등 학교 구성원들부터 교내 성폭력에 대한 인식과 관점 변화가 시급하다고 입을 모았다.

최근 국가인권위원회의 학교폭력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학교폭력 피해 후 어떤 도움이나 조치를 받았는지에 관한 질문에 “아무런 도움도 없었다”는 응답이 38.6%로 가장 많이 나왔다. 학교폭력을 경험한 학생 10명 가운데 4명은 피해 이후 아무런 도움을 받지 못한 채 방치되고 있다는 것이다. ‘학교 선생님께 도움과 위로를 받았다(18.3%)’는 응답은 불과 18%에 그쳤다.

현재 일선 학교들은 성폭력 등 학교폭력 가해 학생에 대해 엄하게 벌하고 사회적 처벌 강화 사례를 중심으로 예방교육을 진행하며 철저한 사안 조사와 피해 학생보호·지원 확대에 온 힘을 쏟고 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피해 학생들이 성폭력을 당해도 부모가 속상해하거나 남들이 해결해 주지 못할 것이란 불안감, 보복에 대한 두려움, 사회적 시선 등의 이유로 도움을 구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송란희 한국여성의 전화 사무처장은 “학생들이 성폭력 피해 사실을 선뜻 말하지 못하는 이유는 이런 얘기를 할때 ‘너가 잘못됐다’는 지적을 받을까봐”라며 “성폭력 예방 교육이 의무화 돼 있긴 하지만 교육과 현실은 매우 다르다”고 말했다.

이소희 한국여성민우회 성폭력상담소 사무국장은 “학생의 경우 성폭력 피해를 겪으면 사회적 시선이 두려워 자신의 피해를 말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며 “성폭력 피해자들에 대한 사회적 인식 변화부터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외부의 전문가가 학교에 개입하는 방식 보다는 교장, 교사 등 학교 구성원들의 성폭력에 대한 인식과 관점 변화가 필요하다”며 “무조건 외부 전문가에 의지하기 보다는 학교 내부 구성원들이 사건을 해결할 수 있는 역량이 높아져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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