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일보 진주=최혜인 기자] 진주 8경 중 하나인 진주 비봉산의 모습. (제공: 진주시) ⓒ천지일보 2018.11.29
진주 8경 중 하나인 진주 비봉산의 모습. (제공: 진주시) ⓒ천지일보 2018.11.29

진주시 봉황(鳳) 들어간 지명 多

봉황교 다시 잇자 운석 떨어져

市 ‘비봉산 제 모습 찾기’ 사업

전설 듣고 찾아온 발길 이어져

[천지일보 진주=최혜인 기자] 경남 진주에는 봉황(鳳)이 들어간 지명이 이상하리만큼 많다. 상봉동(上鳳洞)·봉곡동(鳳谷洞)·봉안동(鳳安洞)·서봉지(棲鳳池) 등 이외에도 많은 지명이 있다. 그 중에는 거대한 봉황이 머물렀다는 대봉산(大鳳山)이 있다. 대봉산은 옛 이름이며 지금은 ‘봉황이 날아가 버렸다’는 뜻을 가진 비봉산(飛鳳山)으로 불린다. 산의 이름이 ‘거대한 봉황이 머물렀다’는 뜻에서 ‘봉황이 날아가 버렸다’는 뜻으로 바뀌기까지 비봉산에는 어떤 사연이 담겼을까. 초겨울 날씨를 보인 지난 20일 기자는 비봉산을 찾았다.

진주의 대표적인 ‘봉황의 전설’을 안고 있는 비봉산은 138m의 나지막한 산으로 봉래동, 옥봉동을 품으며 동서로 크게 봉황이 날개를 펼친 모양을 하고 있다. 먼저 봉황의 머리에 해당하는 산 정상으로 올라간 후 도로 공사로 인해 잘렸다가 지난 2012년 다시 복구된 봉황교(봉황의 동쪽 날개 방면)로 향했다. 봉황의 날개와도 같은 다리(봉황교)가 이어진 다음날 진주시에는 운석이 떨어지는 기묘한 현상이 나타났다고 한다.

◆ 진주에만 있는 ‘에나길’

비봉산을 오르기 위해 ‘에나길’에 올라섰다. 고려시대 전국 12목 중 하나였던 큰 고을 진주는 오랜 역사 속에 고유의 말과 문화도 함께 형성됐다. 진주에선 ‘에나가?’ ‘에나?’라는 말을 흔히 들을 수 있는데 마치 제주도 사투리처럼 타지사람에게는 외국말로 들릴 수도 있다. ‘에나’라는 말은 진주만의 고유한 사투리로 ‘참’ ‘진짜’라는 의미다. ‘정말?’ ‘진짜?’ ‘참말이니?’라는 의미로 보면 된다. 진주의 ‘참’ 모습을 볼 수 있다는 에나길은 총 길이 약 15㎞로 5시간 가량 걸린다.

가장 먼저 도착한 곳은 ‘봉산사(鳳山祠)’로 비봉산 등산로가 시작되는 곳이다. 이곳은 강감찬 장군과 살수대첩을 승리로 이끈 진주 강씨의 시조 강이식 장군을 명장으로 기리기 위해 세워졌다. 비봉산 등산로의 시작점이라는 이정표 역할도 하고 있다.

◆ 대봉산이 비봉산으로 바뀐 사연

‘조정인재 반재영남, 영남인재 반재진주’ 태조 이성계가 영남 진주에서 조정 인재의 4분의 1에 달할 정도로 인재가 많이 난다는 뜻으로 한 말이다. 이는 비봉산 봉황의 전설과도 관련있다. 고려시대 진주 강씨·하씨·정씨 문중은 대대로 조정에서 높은 벼슬자리에 올라 권세를 누려왔다. 설에 의하면 태조 이성계는 인재가 많이 나는 진주에서 이들의 세력이 강해져 반란을 꾀하지 않을까 걱정하게 된다. 이때 태조 이성계의 스승 무학대사가 그 기세를 살펴보러 진주로 내려가보니 대봉산(현재 비봉산)을 진산(鎭山)으로 해 좌우로 고을 전체를 감싸는 풍수적 기세가 대단했다. 이를 견제하기 위해 그는 대봉산의 봉황 바위라는 봉암(鳳巖)을 깨뜨려 봉황을 날아가게 했다. 이때부터 대봉산의 이름이 비봉산으로 불렸다 한다. 무학대사는 이것으로 부족해 봉황이 내려와 목욕한 연못이라는 ‘서봉지’의 이름도 가마못(釜池)으로 바꿨다. 가마못은 ‘펄펄 끓는 뜨거운 못에 봉황을 삶는다’는 뜻이다. 이렇게 해서 봉황을 쫓아버리고 진주 인재의 맥을 끊었다고 전해진다. 신기하게도 이러한 일이 있고 난 뒤 진주에서는 더는 큰 인물이 나지 않았다. 위기를 느낀 진주 문중은 날아간 봉황을 불러들이기 위해 남강 강변과 상봉촌 일대에 대나무와 오동나무를 두루 심었다. 봉황이 대나무 열매를 먹고 살며 오동나무에 둥지를 틀어 잔다는 믿음 때문이었다.

이 때문에 진주 곳곳에는 대나무밭과 오동나무가 많이 조성돼 있다. 진주성 앞 ‘대나무밭’을 포함해 ‘대나무와 오동나무 광장’이라는 뜻의 ‘오죽광장’ 로터리 안에는 오동나무와 대나무가 나란히 심겨 있다. 또 상봉동에는 '봉란대(鳳卵臺)'라는 봉황의 알자리가 있다. 봉황을 날려 보내고 약 100년 후, 어느 도승이 지나가다 봉황의 사연을 듣고 ‘날아간 봉황새는 알자리가 있으면 돌아오는 법이니 알자리를 만들라’고 권해 봉곡촌 중앙 동산에 봉황새의 알자리를 만들었다. 봉황을 비봉산에 다시 불러들여 봉황의 그 상서로운 기운을 다시 누리자는 것이었다. 이처럼 진주 곳곳에는 복을 바라는 서민들의 풍수적 기복사상을 엿볼 수 있다.

◆ 제 모습 찾는 비봉산, 다시 이은 봉황교

에나길을 계속타고 올라가다 보면 어느덧 비봉산 정상이 나온다. 비봉산은 나지막한 산이라 올라 가보지 않은 시민이 없을 정도로 친숙한 산이다. 그러나 오랫동안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아 시에서는 지난 2016년부터 ‘비봉산 제모습 찾기’ 사업을 시작했다. 이를 통해 ‘봉황숲 생태공원’ ‘생태탐방로’ ‘말티문화숲’ 등이 비봉산 일대에 조성됐다.

[천지일보 진주=최혜인 기자] 진주 비봉산에 있는 전망 정자 ‘대봉정’. (제공: 진주시) ⓒ천지일보 2018.11.29
진주 비봉산에 있는 전망 정자 ‘대봉정’. (제공: 진주시) ⓒ천지일보 2018.11.29

에나길을 따라 서쪽 날개으로 내려가니 ‘대봉정’이라는 쉼터가 반긴다. 공모를 통해 붙여진 ‘대봉정’이름은 비봉산의 원래 이름 대봉산에서 따온 것으로 풍수 전문가를 통해 위치와 방향을 선정해 진주의 상징 ‘촉석루’를 본떠 만들었다. 대봉정에 올라서니 정면으로 진주성·천수교·망진산, 동쪽으로 월아산, 서쪽으로 지리산 등 사면이 뚫린 경치를 볼 수 있어 마음도 뻥 뚫리는 듯하다. 비봉산이 진주 8경에 들어가는지 이유를 알 것 같다.

대봉정에서 동쪽으로 내려오면 선학산과 비봉산을 구분하는 ‘말티고개’가 있다. 봉황의 왼쪽 날개에 해당하는 말티고개에 큰길을 내고 난 뒤부터 고려 시대와 조선 초에 융성했던 인재가 줄었다는 전설이 있다. 잘린 날개를 잇는 봉황교는 ‘봉황이 날아든 비봉산'을 주제로 봉황의 날개짓을 가장 잘 형상화한 디자인이 선정됐고 2014년 3월 8일 완성됐다. 다리가 완성돼 봉황이 다시 날아든 걸까. 다리가 완성된 다음 날 진주에는 운석 4개가 차례대로 떨어졌다.

[천지일보 진주=최혜인 기자] 지난 2012년 복구된 진주 봉황교. ⓒ천지일보 2018.11.29
[천지일보 진주=최혜인 기자] 지난 2012년 복구된 진주 봉황교. ⓒ천지일보 2018.11.29

떨어진 운석으로 인해 진주에는 수많은 인파가 몰렸고 관광객 수도 역대 기록을 경신했다. 진주 고유 축제 개천예술제와 유등축제 방문 관광객은 연일 기록을 갱신하고 있다. 어쩌면 제비를 고쳐준 뒤 박씨를 물어다준 우화처럼 꺾였던 날개를 회복한 봉황이 날개 짓을 다시 시작한 것일지도 모른다.

봉황교를 뒤로하고 내려오니 진주의 대표적인 대중가수 남인수의 ‘진주의 달밤’이란 곡이 애절하게 들려온다. 봉황의 전설이 애절한 노랫소리를 타고 바람 따라 흘러가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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