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증언하며 특별법 제정 촉구
법안 3년째 국회서 잠자는 중
검찰총장 사과 물꼬 틀까 주목
[천지일보=홍수영 기자] 문무일 검찰총장이 ‘형제복지원 사건’ 피해자들을 직접 만나 공식 사과했다. 피해자들은 문 총장의 사과를 환영하면서 그동안 당했던 참혹한 일들에 대한 증언을 쏟아냈다. 그러면서 진상규명과 피해보상을 위해 빠른 형제복지원 특별법 제정을 촉구했다.
지난 27일 문 총장을 만난 형제복지원 피해자들은 수용소 내에서 벌어진 끔찍한 인권 유린·침해 대해 증언하며 검찰의 잘못을 지적하고 특별법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피해자 중 한 명인 김대호씨는 초등학교 3학년 때인 1981년 형제복지원에 처음 끌려갔다. 김씨는 친족들의 도움으로 두 차례 형제복지원을 탈출했지만, 경찰들에 의해 다시 수용소로 끌려갔다.
그는 “‘50m 근처 여인숙이 집이고 초등학교 3학년 11반 학생이다’라고 했는데도 경찰관은 제 말을 믿어주지 않았다”며 “도리어 나를 차 안에서 감금하고 구타했다. 죄도 없이 한두 번도 아닌 세 번이나 잡아가는 것이 말이 되는가”라고 억울함을 토로했다. 그러면서 “나는 친구도 없고 부모도 다 잃어버렸다. 배우지 못한 게 진짜 한스럽다”고 울음을 터트렸다.
경남 진주가 고향인 박순이씨는 부산에 사는 오빠 집에 놀러갔다가 그만 경찰들에게 붙잡혀 형제복지원으로 끌려갔다.
박씨는 “경찰에 잡혀갔지만, 29년 동안 우리를 죽인 건 검찰도 책임이 있다”며 “그때 조금이나마 똑바른 수사를 했다면 지금 우리가 이 자리에 있진 않았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문 총장이 선배 검사들의 잘못에 대해 사과해줘서 감사하다”며 “진상규명에 힘을 많이 써줬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또 다른 피해자 안기순씨는 “500명 넘는 수많은 영혼이 그곳에 잠들어 있다. 조금만 더 관심을 갖고 치료와 혜택을 받았다면 죽지 않았을 사람도 있었다”면서 “형제복지원 특별법이 통과돼 사회 소수자, 고통 받는 힘없는 약자들이 치유되고 회복되길 바란다. 생애 남은 기간이나마 복되고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시길 바란다”고 밝혔다.
당시 이 사건의 수사검사였던 김용원 변호사 역시 피해자들의 고통을 덜기 위해 국회가 하루빨리 특별법을 제정할 것을 촉구했다.
한종선 형제복지원 피해 생존자·실종자·유가족 모임 총대표도 형제복지원 사건이 진상규명이 제대로 안 된 책임이 검찰에 있는 만큼, 국회 계류 중인 형제복지원 특별법을 검찰 차원에서 강력하게 요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 대표는 지난 2012년 국회 앞 1인 시위를 시작으로 길거리 서명, 삭발·연좌농성, 단식농성, 국토대장정, 문화예술제 등 특별법 제정을 위해 여러 방면으로 뛰었다.
2014년 한 번 폐기됐던 형제복지원 특별법(내무부 훈령 등에 의한 형제복지원 피해사건 진상 규명 법률안)은 2016년 20대 국회에서 더불어민주당 진선미 의원이 재발의 했다. 현재 이 법안은 진상규명과 피해회복에 필요한 재정문제 때문에 더 이상 진전이 안 되고 있다.
하지만 이번 문 총장의 사과가 막혀있던 물꼬를 트는 분수령이 될 수도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국가기관 차원에서 형제복지원 피해자들에게 사과한 건 이번 문 총장 사례가 처음이기 때문이다.
이번 사과를 이끌어 냈던 법무부 산하 검찰 과거사위원회(김갑배 위원장) 역시 지난달 10일 “국가는 형제복지원 피해자들에게 사과하고, 추가 진상규명 및 피해회복을 위한 특별법을 제정할 것을 권고한다”는 내용의 조사·심의 결과 발표를 한 바 있다.
1975년부터 1987년까지 형제복지원은 박정희 정권이 만든 ‘내무부훈령 410호’를 근거 삼아 부랑인을 선도한다는 명분으로 일종의 수용시설처럼 운영됐다. 그러나 시민을 불법 감금하고 강제노역과 구타·학대·성폭행을 일삼았다는 의혹을 받는다. 피해자는 3000여명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