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진 한국외대중국연구소 연구위원 

 

한국은 중국과 무역에 있어서 미국, 유럽연합, 그리고 일본보다 훨씬 많다. 작년 수치만 봐도 그렇다. 세계 3대 무역 상대인 미국은 11.6%이고 유럽연합은 9.6%, 일본은 5.1%이다. 3대 블록을 합치면 26.3%이다. 중국과는 어떤가? 홍콩도 중국에 복속됐다. 고도의 자치권을 중국으로부터 부여 받았지만 결정적인 정치적 판단은 중국 중앙정부의 보이지 않는 허락 없이는 못하고 있다. 홍콩도 엄밀히 말하면 중국이기에 홍콩을 포함한 중국과의 무역량은 35% 정도 된다. 이 놀라운 수치를 근거해 판단해 보면 중국의 중요성은 한국으로서는 피할 수 없는 현실이다. 물론 상대적 필요성 때문이다.

한·중 산업발전단계의 현재 구조상 중국은 한국으로부터 부품 등 중간재를 수입하지 않으면 안 되는 구조이다. 상호 필요하고 의존성이 절대적이기에 어찌할 수 없는 측면이 분명히 존재한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중국도 자체 기술개발과 국산화를 이루어 한국으로부터 수입하지 않을 대체재를 자력으로 만들어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적 시각에서 보면 한·중 상호의존성(相互依存性)은 그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다. 그런데 여기서 주목해야만 하는 것은 혹시 한·중이 지난 사드(고고도 미사일방어 체계, THAAD, Terminal High Altitude Area Defense)와 같이 문제가 발생해 감정적 대립까지 가서 확대될 경우 어느 쪽이 피해를 보게 되는데, 그쪽이 어느 국가인가라고 자문하면 유감스럽게도 한국일 수밖에 없다. 이것이 한국이 피할 수 없는 운명이기에 한·중관계의 상호 호혜적 관계를 지속적으로 유지하고 발전시켜야 할 책무들이 현 위정자들의 어깨에 놓여져 있는 대업이다.

한 나라에 30% 이상 무역을 의존하고 있다는 것은 어떻게 보면 상당히 위험하다. 경제는 중국과 고리와 고리로 연결돼 있고, 군사적 동맹은 미국과 굳건히 맺고 있다. 그런데 중국과 미국은 경쟁자이며 적대국이다. 이런 운명의 장난이 한반도에 존재하고 있다. 한민족은 왜 이렇게 어려운 과제들을 항상 갖고 산다는 말인가. 그러나 역으로 이러한 난제들이 한국에게 새로운 지혜를 창안하도록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문득 스위스가 떠오른다. 영세 중립국이다. 850만명의 인구이다. 그런데 1인당 국민소득은 8만불이 넘는다. 영국,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등 강국에 둘러싸여 있다. 유럽 중심부에 있는 국가이며 요충지이다. 한반도와 마찬가지로 주변 강대국들의 위협에 시달려 왔다. 국토가 대부분 산이다. 작고 자원도 없다. 그런데 금융 산업은 세계 최고이다. 금융 같은 경우는 두 번에 걸친 세계대전 시기에 군사적으로 중립을 지켰다. 전쟁 피난민들을 자국의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다 받았다. 당시 유럽 부호들의 현금을 잘 보관해주는 은행 역할도 했다. 스위스로 가면 어떠한 자금의 도피도 본인의 허락 없이는 공개해 주지 않았다. 일명 불법자금도 수취한 것이다. 이렇게 위탁자들에게 신뢰를 긴 세월동안 주었다. 결국 금융 산업이 융성하게 된 계기가 됐다. 군사적 동맹도 철저히 외면하고 있다. 어느 한 블록에 가담하지 않는다. 국제 정치의 중요한 중립의 무대로 인식되고 있다. 스위스 제네바는 항상 뉴스에 등장한다. 이번 북·미정상회담 장소로 거론된 적이 있지 않은가.

제네바에는 국제노동기구 세계무역기구 등 30여개의 국제주요기구 본부가 있다. NGO단체도 250여개가 있다. 172개의 대사관과 대표부가 있다. 국제도시이며 세계정치 경제의 중심이 된 지 오래이다. 그런데 작지만 강한 나라라는 것에 그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못한다. 과거로부터 꾸준히 교훈을 얻고 중립을 대외정책의 기조로 삼았다. 1515년 프랑스와 싸워 대패했다. 살기 위해 싸우는 것보다 분쟁을 피해 자국을 보호해야 한다는 것을 철저히 위정자와 국민들이 깨달았다. 주변강국의 야욕을 일치되고 용맹한 국민들이 극복해 냈다. 자강을 기반으로 주변 4대국과 지속적인 우호관계가 절실하다. 병자호란 임진왜란 청·일전쟁 러·일전쟁 본거지가 되든가 대리전의 현장이 한반도였다. 남북이 평화공존하고 자강해서 국제사회에 당당히 외교적으로 중립을 선언하는 그날을 상상한다면 헛된 망상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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