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쉼표] 정조대왕이 그리워하던 마음의 고향 ‘수원화성’
[쉼표] 정조대왕이 그리워하던 마음의 고향 ‘수원화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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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지일보=박준성 기자] 수원화성에서 가장 경관이 뛰어난 곳으로 꼽히는 화홍문(북수문)과 방화수류정(동북각루). 관광객들이 자연 경치와 어우러진 풍경을 바라보고 있다. ⓒ천지일보 2018.11.16
[천지일보=박준성 기자] 수원화성에서 가장 경관이 뛰어난 곳으로 꼽히는 화홍문(북수문)과 방화수류정(동북각루). 관광객들이 자연 경치와 어우러진 풍경을 바라보고 있다. ⓒ천지일보 2018.11.16

부모 향한 애틋한 효심 깃들어
경관 빼어난 화홍문·동북각루
5.7km 성곽… 장엄한 건축미
한해 수백만명 찾는 관광명소

[천지일보=이성애·박준성 기자] 가을의 끝자락, 구름 한 점 없이 쾌청한 하늘이 마음을 더 설레게 하는 11월 중순 서울 도심을 떠났다. 차를 타고 1시간 가까이 달린 곳은 정조대왕의 원대한 꿈과 효심이 깃든 수원화성이다. 수원화성은 세계문화유산(유네스코 1997년 지정)으로 한해 찾는 이들이 수백만명에 달한다. 한국을 방문하는 수많은 외국인도 찾는 한국을 대표하는 관광명소다. 이 중 화성 안에 자리한, 정조의 효심이 깃든 화성행궁과 북수문(화홍문), 동북각루(방화수류정), 산성의 길을 따라 여행을 떠났다.

밝은 미소를 띤 고영수 문화관광해설사가 화성행궁 정문에서 우리를 반갑게 맞았다. 문화해설사의 도움을 받으면 무심코 지나쳐버리기 아까운 흥미로운 화성행군과 수원화성에 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4인 이상의 단체 관람객에게 도움을 주고 있다. 입장료는 어린이 700원~어른 1500원이며, 적은 비용으로 주차장도 이용할 수 있다. 또 ‘문화가 있는 날(매월 마지막 주 수요일)’에는 무료로 누구나 둘러볼 수 있다. 화성행군 정문(신풍루)에서 펼치는 무예24기 시범 상설공연은 관광객들의 마음을 사로잡기에 충분한 무예공연으로 강추한다.

◆효심 지극한 정조대왕의 거처 ‘화성행궁’

화성행궁은 어떤 곳일까. 효성이 지극한 정조가 비운의 세자인 아버지 장헌세자(사도세자)의 묘소를 현륭원(현재의 융릉)으로 옮기면서 수원 신도시를 건설, 수원화성 성곽을 축조하면서 화성행궁을 건립했다.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과 살아계신 어머니 혜경궁 홍씨를 정성을 다해 모시고 싶어 했던 마음이 깃든 곳이기도 하다. 그래서일까. 화성행궁은 조선 행궁(임금이 궁궐 밖으로 행차할 때 임시로 머물던 별궁) 중 규모나 기능면에서 으뜸이자 최대 크기로 지어졌다. 평상시에는 수원부 관아로 쓰였다가 정조대왕이 행차하면 행궁 역할을 했다. 혜경궁 홍씨의 진찬연(회갑연)이 열린 곳이다. 또 과거시험의 장소로 쓰이기도 했다.

[천지일보=박준성 기자] 정조대왕의 거처인 봉수당 ⓒ천지일보 2018.11.16
[천지일보=박준성 기자] 정조대왕의 거처인 봉수당 ⓒ천지일보 2018.11.16

역사의 아픈 기억도 있다. 일제강점기 당시 낙남헌을 제외한 시설이 일제의 민족문화와 역사 말살 정책으로 한순간에 사라져버린 것이다. 또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많은 부분이 파손됐다. 이후 1996년 1단계 복원공사를 거치면서 화성행궁의 옛 모습을 되찾고 있다. 일반에 공개하기는 2003년부터다. 현재도 복원공사가 한참 진행되고 있다.

해설사는 행궁 중 대표적인 몇 곳을 소개했다. 화성행궁의 정문은 신풍루(新豊樓)다. 신풍은 ‘임금님의 새로운 고향’이란 뜻으로, 한나라 고조가 ‘풍 땅은 새로운 또 하나의 고향’이라고 한 고사에서 유래한 것이다. 고향처럼 살고 싶어 한 마음을 엿볼 수 있다. 1795년 을묘 행차시에 신풍루 앞에서 정조가 화성부의 백성들에게 쌀을 나누어 주고 굶주린 백성에게는 죽을 끓여 먹이는 진휼 행사가 벌어지기도 했다.

[천지일보=박준성 기자] 글공부를 하는 정조의 모습을 재현해 두었다. ⓒ천지일보 2018.11.16
[천지일보=박준성 기자] 글공부를 하는 정조의 모습을 재현해 두었다. ⓒ천지일보 2018.11.16

이어 발길을 옮겨 소개한 봉수당은 화성행궁의 정당(正堂)으로 정조가 거한 처소이자, 이곳에서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회갑연을 열었던 장소로 쓰였다. 그 안에는 정조가 글공부를 하는 모습과 회갑연 모습이 밀랍인형으로 재현돼 있어 눈길을 끌었다. 정조는 혜경궁의 장수를 기원하며 ‘만년(萬年)의 수(壽)를 받들어 빈다’는 뜻의 봉수당이라는 당호를 지어 조윤형으로 하여금 현판을 쓰게 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일제강점기에도 유일하게 훼손되지 않고 원형 그대로 보존된 건물이 낙남헌이다. 낙남헌이란 이름은 후한의 광무제가 낙양으로 도읍을 옮기고 궁궐 이름을 ‘남궁(南宮)’이라 한 것에서 따온 것이다. 정조는 어머니의 회갑연을 기념해 군사들의 회식을 이곳에서 하고, 특별과거시험을 치러 문과 5명과 무과 56명을 선발, 장원급제자에게 합격증을 내려줬다.

끝으로 정조대왕이 왕위에서 물러나 노후생활을 꿈꾸며 지은 노래당(老來堂)과 정조의 어진(초상화)을 모시기 위해 순조 1년에 새운 화령전 또한 둘러볼 곳 중에 하나다.

[천지일보=박준성 기자] 화성행궁 내에서 유일하게 훼손되지 않고 원형 그대로 보존된 ‘낙남헌’에서 초등생들이 선생님의 역사 이야기를 듣고 있다. ⓒ천지일보 2018.11.16
[천지일보=박준성 기자] 화성행궁 내에서 유일하게 훼손되지 않고 원형 그대로 보존된 ‘낙남헌’에서 초등생들이 선생님의 역사 이야기를 듣고 있다. ⓒ천지일보 2018.11.16

◆세계인도 반한 한국의 문화유산 ‘수원화성’

행궁을 나와 수원화성의 남북을 관통하는 수원천(水原川) 길을 따라 산책하듯 가을을 정취를 느끼는 시간을 가졌다. 북쪽 끝에 다다랐을 때쯤, 눈에 장관이 들어왔다. 세계문화유산인 수원화성에서 가장 경관이 뛰어난 곳을 꼽으라면 화홍문(華虹門)과 방화수류정(訪花隨柳亭)을 빼놓을 수 없다. 눈앞에 펼쳐진 화홍문은 수원성곽(사적 제3호) 내의 북쪽 수문으로, 일명 ‘북수문(北水門)’이라고 불린다. 아래에 수문이 있고 그 위에 문루가 있어 내천에서 바라보는 경치가 빼어나다. 화홍문은 1910년 12월 21일 통용된 한국은행권 일원짜리 지폐 전면을 장식했다. 지폐에는 그 나라를 대표하는 문화·자연 유산이나, 인물 등을 넣는다. 지폐에 화홍문이 전면에 들어갔다는 것은 당시 화홍문의 위상을 보여준 것이다.

바로 위에 자리한 방화수류정은 송나라 시인 정명도의 운담풍경오찬(구름 끼어 맑은 바람 부는 한낮), 방화류과전천(꽃을 찾아 버드나무 따라 앞 내를 건넜네)에서 따온 이름으로 ‘꽃을 찾고 버들을 따라 노닌다’는 뜻이다. 전시에는 적군을 감시하나, 평시에는 휴식공간으로 쓰였다. 신발을 벗고 방화수류정에 올라섰다. 장엄한 건축미(美)와 역사의 숨결을 간직한 수원화성의 전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바로 아래 자연스럽게 조성된 인공 호수도 운치를 더했다.

[천지일보=박준성 기자] 화성의 성곽에서 보는 수원 도심 ⓒ천지일보 2018.11.16
[천지일보=박준성 기자] 화성의 성곽에서 보는 수원 도심 ⓒ천지일보 2018.11.16

수원의 중심에 위치한 수원화성하면 떠오르는 게 바로 ‘성곽’이다. 5.7km의 성곽을 따라 둘레길이 조성되어 있어 수많은 사람들이 찾는 명소다. 방화수류정을 시작으로 동쪽을 향해 발길을 이어갔다. 동장대(연무대), 동북공심돈, 동북노대, 창룡문을 끝으로 역사 여행을 마무리했다. ‘백 마디의 말보다 한번 보는 게 더 낫다’라는 우리 속담처럼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원화성을 편안하게 둘러볼 수 있는 ‘화성어차’ ‘자전거 택시’도 추천한다. 타종, 승마, 국궁 등 다양한 체험코스 또한 재미와 추억을 선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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