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문재인 대통령의 적극 중재로 교황 방북이 가시화되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종단으로 꼽히는 천주교. 그러나 중세 천주교의 부패는 극에 달했고, 그 부패의 최정점에 교황이 있었다. 그들의 부패를 95개조 반박문에 써서 내걸면서 종교개혁이 일어났고, 오늘날 개신교의 모태가 됐다. 종교개혁 501년이 된 지금 천주교는 얼마나 개혁되고 변화했을까. 천주교의 과거와 현재, 천주교의 부패에 반발해 태동한 개신교의 탄생과정과 실태를 진단한다.

‘바티리크스’ 바티칸 발칵

돈세탁 의혹 사실로 확인

성추행 전 세계에서 터져

[천지일보=김성완 기자] 중세시대 로마 가톨릭은 교황청의 입김이 사회의 모든 부문에 걸쳐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했다. 교황의 한마디는 세속 군주의 목숨을 위태롭게 할 수 있었다. 또한 교회법은 시장논리의 자율성을 허락하지 않았다. 중세 사회를 구성하고 있던 모든 영역은 로마 가톨릭이라는 거대한 틀 안에 있었다. 하지만 권력의 극대화는 신앙의 부패로 이어졌다. 또한 새로운 질서에 대한 흐름도 나타났다. 11세기 말에는 이슬람권의 확장에 맞선 십자군 전쟁의 잇따른 실패로 교권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13세기 이후에 시작된 자본과 화폐경제의 성장은 교회 중심의 중세적 질서를 무너뜨리고 있었다.

이 같은 시대적 요구에 부응하지 못한 중세 로마 가톨릭은 세상과 결탁한 교권주의, 내부 권력 다툼 등 최악의 타락상을 보여주며 급격히 몰락하기에 이르렀다. 특히 성직자들의 부정부패가 극에 달했다. 정치권력과 야합하고 성직매매가 공공연히 자행됐다. 이때 출현한 것이 면죄부다. 당시 면죄부 판매는 비텐베르크 대학의 신학 교수였던 마르틴 루터(Martin Luther)가 종교개혁을 하게 된 결정적 계기가 됐다.

500년이 지난 오늘날의 가톨릭을 바라보는 시선도 같은 양상이다.

가톨릭 사제들의 아동 성추행 문제, 동성애 논란, 바티칸 은행의 부패와 재정비리, 마피아 연루설 등 중세교회와 다를 바 없다는 평가다.

2012년 바티칸 은행의 돈세탁 의혹이 불거졌다. 뿐만 아니라 그간 논란이 됐던 로마가톨릭 사제들의 아동 성추행 추문이 드러나면서 가톨릭 사제들의 도덕적 권위가 땅에 떨어졌다.

또 동성애 논란, 마피아 연루설까지 가톨릭은 부패의 온상이 돼 가고 있다.

◆‘돈세탁’ 창구 바티칸 은행

2012년 이탈리아 기자 잔루이지 누치가 이른바 ‘바티리크스’로 불리는 내부 문서 유출 사건을 다룬 ‘교황 성하(His Holiness)’라는 책을 써서 바티칸을 발칵 뒤집어 놓았다.

당시는 독일 언론 슈피겔이 ‘바티칸 관료들이 교황을 좌지우지한다’는 특집기사를 냈을 정도로 교황이 무력했던 시기였다.

바티칸과 위키리크스의 합성어인 바티리크스라는 용어를 만들어낸 이 책은 베네딕토 16세의 집사 파올로 가브리엘레로부터 건네받은 기밀문서를 바탕으로 작성됐다. 이 문서가 유출되면서 바티칸 일부 고위 성직자들이 외부업체와의 계약에서 가격을 부풀리는 방식으로 부정을 행한 일과 바티칸 은행이 돈세탁을 했다는 의혹이 사실로 확인됐다.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휘청거렸고 그 이듬해 퇴임했다.

2015년에는 누치가 바티칸 비리를 폭로한 ‘성전의 상인(Merchants in the Temple)’이라는 두 번째 책을 발간해 바티칸을 또다시 뒤흔들었다. 일명 ‘바티리크스2’라는 용어까지 만들어낼 정도였다.

이 책은 교황청의 부실 운영, 일부 추기경과 주교의 탐욕, 프란치스코 교황의 개혁을 방해하는 바티칸 내부의 저항 등을 담았다.

누치는 책을 통해 바티칸이 전 세계 교구에서 거둬들인 헌금의 약 20%만이 자선 등 좋은 일에 사용되고 80%는 교황청 내부의 관료 조직을 유지하거나 일부 성직자가 호화로운 생활을 하는데 쓰인다고 폭로했다.

그는 또 “전 세계에서 들어온 헌금 사용 내역은 절대 알아낼 수 없는 비밀에 싸인 수수께끼와 같다”면서 “프란치스코 교황이 바티칸 은행을 정화하도록 추기경들에게 전권을 위임했지만 바티칸 관료들의 끈질긴 저항에 직면하고 있다”고 밝혔다.

1942년에 세워진 자산 규모가 70억 달러가 넘는 ‘종교사업기구(Instituto per le Opere di Religioni; IOR)’, 이른바 ‘바티칸 은행’은 철저히 비밀에 가려져 있다. 은행이라기보다는 150개국의 교회에 금융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관의 모습으로 운영돼 왔으며 수십년 넘게 돈세탁 추문이 끊이지 않았다.

1980년대부터 바티칸 은행과 마피아 자금의 연루 의혹이 제기됐으나 당시 교황청은 검찰 수사에 전혀 협조하지 않았다.

2010년 유럽연합(EU)은 바티칸 은행의 돈세탁 혐의에 대해 조사에 착수했고 교황 베네딕토 16세에게 배달된 비밀편지에 이 은행의 부패가 거론되기도 했다.

바티칸 은행은 이탈리아 크레디토 아르티기앙노 은행에 2300만유로(약 370억원) 상당의 돈을 예치한 것으로 드러나 돈세탁 의심을 받았다. 이탈리아 법원은 교황청 자금을 동결조치했다.

2013년 프란치스코 교황은 취임하자마자 바티칸 은행에 대한 강도 높은 개혁에 나섰다.

새로운 바티칸 은행장에 민간 금융인을 앉혔고 장부에 적혀 있지 않은 계좌 4800여개를 없앴다. 그해에는 또 로마 교황청의 ‘돈세탁 스캔들’ 진원지인 바티칸은행 업무를 총괄했던 스카라노 신부가 이탈리아 검찰에 전격 체포됐다. 스카라노 신부의 체포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바티칸은행의 돈세탁 의혹을 조사하기 위한 교황 직할위원회를 구성한 뒤 바로 이뤄졌다.

최근에는 세계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교황청 ‘시스티나 성당 합창단(Sistine Chapel Choir)’이 횡령과 돈세탁 등의 혐의로 조사를 받았다.

2017년 유럽 의회의 돈세탁과 테러자금 감시기구인 머니발(MONEYVAL)이 발간한 보고서에 따르면 교황청 금융감독 기구인 금융정보청(AIF)은 지난 2013년부터 문제가 있는 거래 69건을 적발, 27건의 형사수사를 진행했다. 이 가운데 14건은 기소 없이 종결됐고 돈세탁과 관련해서는 단 1건도 기소되지 않았다.

보고서는 “AIF가 의심스러운 거래를 적발하는데 있어 상당한 성과를 거두고 있지만 법적으로 처벌하는데는 여전히 미온적”이라고 비판했다.

◆사제 아동 성추문 전 세계에서 나타나

재정비리 논란을 비롯해 연이어 쏟아지는 사제들의 아동 성추행 추문으로 로마 가톨릭이 끝없이 추락하고 있다.

가톨릭 사제들의 성 학대는 1985년 길버트 고드 신부 사건을 통해 처음으로 세상에 알려지게 됐다. 고드 신부는 미국 루이지애나주에서 1974년에서 1983년까지 어린이 37명을 성추행한 혐의로 기소됐다.

2002년 보스턴에서는 사제 235명이 1940년부터 60년간 1000명 이상의 어린이를 성적으로 학대한 사실이 미국 전역에서 폭로됐다. 그동안 의혹 차원에서 제기됐던 사제들의 성추문이 드러나면서 미국 가톨릭계를 뒤흔들었다. 바티칸 교황청은 이 사건을 미국 내 문제로 치부했으나 이후 독일, 오스트리아, 영국, 아르헨티나 등 세계 곳곳에서 오랜 기간 사제들의 아동 성추행이 자행돼 왔음이 드러나면서 파문은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올해 8월에는 미 펜실베이니아 주에서 성추문이 불거졌다. 펜실베이니아 주 검찰 조사 결과 피츠버그 등 6개 교구 사제 300여명이 1940년대부터 최근까지 70여년에 걸쳐 1000명 이상의 어린이를 성폭행하거나 추행한 것으로 드러났다. 수사당국은 가톨릭교회의 조직적 은폐도 있었다고 발표했다.

최근에는 미국 워싱턴 가톨릭 대교구가 지난 70년간 성추행 의혹을 받은 성직자 31명의 실명을 공개하기도 했다.

미국 가톨릭주교회의(USCCB) 2017년 보고서에 따르면 1950년부터 2016년 5월까지 미국에서 성추행을 저지른 사제는 최소 6721명이다. 피해자는 1만 8565명으로 나타났다.

사제들의 성 학대는 미국을 비롯해 세계 전역에서 속속 밝혀지고 있다.

독일에서는 가톨릭 사제들이 1946년부터 2014년까지 약 70년 동안 최소 3766명의 아동을 성추행했다. 피해자 대부분은 소년으로 절반 이상이 13세 미만의 어린이였다. 연루된 성직자만 최소 1670명인 것으로 밝혀졌다.

2009년 아일랜드 정부가 발간한 ‘머피 보고서’에 따르면 1975년부터 30년간 1만 5000건의 범행이 보고됐다. 아일랜드 정부는 성 학대·강간·폭력은 아일랜드 가톨릭 기숙학교와 고아원에서 70여년간 만연해 있던 현상이라고 지적했다.

호주에서는 2012년 교회의 성 학대 사실을 조사하는 독립 기구 ‘왕립 조사위원회’를 발족했다. 왕립 조사위원회에 따르면 1980년부터 2015년까지 호주 어린이 4444명이 사제와 남녀 수사, 교회 관계자들에게 성추행과 성적 학대를 당했다. 가해자 2000여명 가운데 572명이 사제다.

칠레 검찰은 최근 1960년 이후 아동 178명을 포함한 총 266명에게 성적 학대를 하거나 은폐한 혐의로 사제와 신도 등 158명을 수사 중이다.

사제들의 아동 성추행은 성추문은 끊임없이 터져 나오고 있다. 가톨릭 지도층의 도덕성은 심각한 타격을 입었다. 베네딕토 16세 교황은 성추문이 불거진 나라에 여러 차례 사과했다.

2014년 유엔 인권위원회 아동권리위원회(CRC)는 스위스 제네바에서 사상 최초로 가톨릭 사제에 의한 성추행 청문회를 열었다. 또 아동보호위원회를 설치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사탄 숭배만큼 추악한 일”이라며 성범죄를 은폐한 주교를 해임하는 법안에 서명하기도 했다.

이와 달리 바티칸 교황청은 성추문 논란이 있을 때마다 조직적으로 은폐하거나 사건을 축소하려고 했다. 또 사제에 의한 아동 성추행 문제가 계속해서 터져 나오는 와중에도 가톨릭계의 대응은 개별적 사안에 대한 문제로 치부하고 사제 보호에만 집착했다.

최근에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아동 성추행 문제 해결이 가톨릭교회의 신뢰를 회복하는 핵심이라고 강조하고 있지만 바티칸은 여전히 부적절한 대응으로 비난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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