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에 갑자기 불어 닥친 혼란은 걷잡을 수 없이 그 강도를 더해가고 있다. 적폐라 하듯이 오랜 세월 누적돼온 가치관들이 하루아침에 자기 소리를 내며 쏟아지니 지금 대한민국은 정신을 못 차리고 있다.

마치 해방 후 남과 북의 두 진영이 구축되면서 시작된 친탁과 반탁의 물결이 온 나라를 뒤덮던 때가 오버랩 된다. 아니 어쩌면 그 때는 오히려 단순했지만 지금은 모든 것이 실타래같이 얽혀 좀처럼 답을 찾을 수조차 없어 보인다.

각자의 생각과 기준과 가치관이 봇물 쏟아지듯 하루아침에 쏟아지는 연유에는 불에 기름을 붓듯 묘한 제도를 깔아 놓음으로 그 심각성은 하늘을 찌르고 있다. 그것은 바로 문재인 대통령이 국정을 시작하면서 공정하고 차별이 없는 세상을 역설하며 신설한 청와대 국민청원제도다.

개인과 단체는 진실과 사실과 정의보다는 진실과 사실과 정의라는 포장된 이름으로 자기와 자기편이 가지고 있는 생각과 기준과 가치관만이 정의라는 왜곡된 진영논리에 속절없이 갇혀 하나의 대한민국은 수만개의 나라로 쪼개져 모두가 제 목소리 내기에 바쁘다.

대한민국은 법치국가로서 법을 통해 질서가 유지된다. 그런데 그 법 위에 국민청원제도라는 법 아닌 법을 만들고 그 제도는 적법한 여론형성과정도 없이 여론을 형성하게 만들고 그 여론은 실질적으로 법 위의 개념으로 국민들에게 인식되게 함으로 이 나라 법의 정체성은 모호해져 가며 국민들은 혼란스러워지기 시작했다.

정의는 다수결에 의한 여론이 아니다. 소수의 의견일지라도 사실과 진실이 곧 정의라는 상식과 같은 진리를 왜곡시키는 어처구니없는 현상들이 지금 대한민국을 강타하고 있는 것이다.

비근한 예로 작금의 사건 중 하나인 이수역폭행사건이 그렇다. 폭행의 진위여부를 떠나 남과 여라는 진영이 형성되면서 사실과 진실보다 진영논리로 온 나라는 아수라장이 됐던 게 대표적인 예다.

정치적·사회적·문화적·이념적 진영 논리는 사실과 진실과 가치를 파괴하고 정의를 왜곡시키며 대한민국을 삼키고 있다.

국민청원제도는 한마디로 여론형성과정의 폐해를 가져와 팩트가 아닌 마녀사냥과 같이 모리배들의 여론몰이로 오히려 공정하지 못하고 차별을 더 심화시키는 폐단을 가져온다는 점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뿐만 아니라 ‘법으로 통치하는 나라’라는 법치국가의 본질을 파괴하는 위험한 제도임을 밝히는 바이다.

국민들의 인기만을 염두에 둔 포퓰리즘적이면서 즉흥적인 발상에서 고안된 일회성 제도로 국민들을 어지럽게 해선 안된다.

여론 즉 다수결의 이중성을 간과해선 안된다. 민주사회와 국가를 형성, 유지시켜 나가는 데 있어서 필요불가결한 것이 다수결의 원칙이라면 그 다수결은 사실과 진실을 묻히게 하는 이중성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잊어선 안된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듯이 중세 유럽의 지동설을 주장했던 갈릴레이가 그 대표적 예가 아니겠는가. 한 사람의 진리가 괴물과 같았던 중세봉건사회를 무너뜨렸던 사건을 기억해야 한다. 나아가 성자 예수가 홀로 진리를 외칠 때 세상은 다수의 세상과 종교권력으로 압제했지만 결국 한 사람의 진리가 이겼다는 점 또한 역사가 증명해 주고 있는 것이다. 지나치게 여론몰이로 마녀사냥 하는 악행은 없어져야 한다.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면서 또 하나의 폐단으로 국민들의 생각과 의식과 가치관에 커다란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 다름 아닌 ‘평등관’이다. 지금도 강조하는 모두가 함께 잘 사는 나라다. 그 말처럼 멋지고 아름다운 말이 어디 있겠는가.

하지만 겉만 보지 말고 그 속 즉, 이면의 본질을 들여다 볼 수 있어야 한다. 우리는 평등이라는 단어의 참 의미부터 발견해야 감언이설에 속지 않는다. 평등의 참의미는 ‘경쟁’과 ‘노력’이라는 실질적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는 것이다. 공산주의의 평등관과 자유주의의 평등관을 혼동 시켜서도 안 되며 혼동당해서도 안 된다.

허울 좋은 평등관에 갇혀 누구나 평등한 입장에서 배급받듯이 살아갈 수는 없는 것이다. 인류가 진보해 올 수 있었던 것은 역사학자 아놀드 토인비가 말한 것과 같이 ‘도전과 응전’ 속에 오늘의 발전된 인류세계를 만들어 온 것이다.

노력한 자가 게으르고 나태한 자와 경쟁해 이기고 받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이긴 자와 진 자의 차별이 진정한 평등인 것이다. 인류의 오늘을 가져온 원동력이 바로 이 같은 평등관이며 이것이야말로 정의인 것이다.

평등의 의미가 왜곡되고, 평등의 정의가 모욕당하는 이상한 세상이 지금 우리 눈앞에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모두가 생각과 의식이 깨어나 진정한 정의를 향해 애써야 할 때임을 잊지 말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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