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호익 동북아공동체ICT포럼회장/한국디지털융합진흥원장

 

정부 승인을 받아 합법적으로 들어선 국내 첫 영리병원인 제주녹지국제병원이 존폐의 기로에 있다. 국내 의료산업의 규제현황을 보여주는 현주소다.

녹지병원은 동북아시아 최대 의료복합단지로 거듭나겠다는 청사진 아래 서귀포시에 약 46만평에 조성된 제주헬스케어타운 안에 있다. 중국 뤼디그룹은 제주헬스케어타운 사업을 3단계로 나눠 콘도, 웰니스몰, 웰빙, 힐링가든, 녹지병원, 의료R&D센터 등 개발을 진행해왔다.

뤼디그룹은 2015년 4월 제주헬스케어타운 안에 숙박시설을 착공하려고 하자 제주도는 “의료시설 없이 숙박시설이 들어설 일이 없다”고 하여 뤼디그룹은 그해 12월 복지부 승인을 받고 녹지병원 공사에 착공했다.

녹지병원은 2002년 김대중 정부가 외국 자본의 투자병원 설립을 허용하는 ‘경제자유구역법’을 제정한 지 13년 만에 탄생한 국내 1호 영리병원이 됐다.

뤼디그룹이 그동안 제주헬스케어사업에 투자한 돈은 총 6583억원(6월 말 현재)에 달하는데 이 중 녹지병원에 778억원이 투자됐고 1년 넘게 개설 허가 연기로 매달 8억 5000만원 손실을 기록하고 있다.

더욱 심각한 것은 녹지병원만 문을 닫으면 제주헬스케어타운 기반 자체가 흔들릴 수 있다는 점이다. 뤼디그룹은 적법한 절차에 따라 진행했기 때문에 최종 불허 결정이 나면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할 태세이고 한중 자유무역협정(FTA) 협약 등 한중 관계에 심각한 외교적 문제로 비화할 가능성도 있다.

제주녹지국제병원 개설이 불허되면 중국인 의료관광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한국은 2009년 5월 외국인 환자 유치를 허용했다. 2011년 약 2만명이던 중국인 환자는 2016년 12만 8000명으로 늘었지만 지난해에는 사드(THAAD) 여파로 10만명으로 줄었다.

외국인 환자도 같은 기간 12만 2000명에서 36만 4000명으로 급증했지만 역시 지난해에는 32만 2000명으로 줄었다. 제주도 역시 외국인 환자가 2011년 740명에서 2016년 6666명으로 급증했다가 지난해 4947명으로 줄었다. 지난해 제주도의 중국인 환자는 약 3000명으로 절대 다수이다.

대다수 의료전문가는 제주헬스케어타운이 동북아시아 의료 및 힐링 허브로서 경쟁력이 크다는 점에서 녹지병원사태를 안타까워하고 있다.

제주도는 비행기로 2시간 이내에 인구 1000만명 이상인 도시가 5개나 있다. 또 인구 300만~1000만명 도시가 13개 있을 만큼 동북아 중심 지역에 위치한다. 특히 상하이, 항저우, 난징, 칭다오, 베이징 등 잘사는 중국 도시 대부분이 제주에서 반나절 거리다. 세계 의료관광 시장이 급성장하는 상황에서 이처럼 훌륭한 의료 자산을 스스로 포기한다는 것이다.

미국 프라이스워터하우스쿠퍼스(PwC)는 세계 의료관광 시장이 2016년 681억 달러(약 76조원)에서 연평균 13%씩 성장해 2021년 약 1240억 달러로 급성장할 것으로 분석했다.

2016년 의료관광을 떠난 각국 환자는 약 1400만명에 달했다. 최근 고령화 및 저비용 항공사(LCC) 등장으로 세계 의료관광시장이 활성화되고 있다. 특히 중국인 의료 관광객이 크게 늘었고 앞으로 더 크게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세계 각국은 외국인 환자 유치에 속도를 내고 있다. 외국인 환자 비자 발급 요건을 이전보다 완화하고 원격의료를 통해 치료 후 관리, 의료분쟁 해결 등을 적극 지원하고 있다.

‘아시아 의료 허브’ 구상을 추진 중인 태국은 2017년 의료 관광객이 약 330만명으로 세계 최고였다. 올해는 342만명을 웃돌 전망이다. 인도는 지난해 의료 서비스 고객 약 49만 5000명이 방문해 2015년보다 2.1배 늘었다. 터키도 지난 10년 새 의료 관광객이 급증해 지난해 약 70만명이 방문했다.

녹지병원 개설 여부는 결국 제주도에 달려있다. 개설허가가 여섯 차례나 연기된 점과 중앙정부가 승인해 건물까지 지은 사업을 공론에 붙인 건 행정권 남용이자 법률 위반이라는 지적이 많다.

제주지역주민들도 일자리 창출 및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해 도청과 시의회를 찾아가 허가를 요구하고 있다. 원희룡 지사의 결단을 촉구한다. 제주특별법은 외국 의료기관 개설 절차는 보건복지부가 승인한 조건을 충족해 보건의료정책심의회 심의를 거쳐 최종적으로 제주도지사가 허가를 결정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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