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라곤 논설실장/시인

 

‘오 타넨바움(O Tannenbaum)’이라는 독일 민요가 있다. 동요풍인 그 곡조를 들어보면 우리에게도 익숙한데 ‘소나무(원제: 전나무)’라는 노래다. 가사를 보면 ‘소나무야 소나무야 변하지 않는 네 빛, 쓸쓸한 가을날이나 눈 오는 날에도 소나무야 소나무야 변하지 않는 네 빛’이다. 이 노래가 독일에서는 크리스마스 송으로 불러져 왔는데 전나무가 크리스마스트리 장식 재료로 많이 사용됐기 때문이라고 한다. 

원래 독일 슐레지엔 지방에서 불러지던 민요였으나 1824년 독일 라이프치의의 교사 겸 작곡가 에른스트 안쉬츠(Ernst Anschütz)가 민요를 바탕으로 작곡한 이후부터 널리 알려졌던 노래다. 이웃나라 영국에서는 유명한 프로축구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FC의 응원가로 불릴 만큼 유명세를 타고 있으며 다른 많은 나라에서 개사돼 불러지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노래 1절은 소나무의 한결같은 절개를 칭송하는 원가사와 같이 불러지고 있지만 2절에서는 개사되어 사람의 마음을 비유한 대목이 있어 송심(松心)과 인간 심리가 잘 비교되고 있다.  

개사돼 불러지는 2절의 내용인즉 ‘오 사람아 오 사람아 변하기 쉬운 네 맘, 어젯밤 굳은 명세도 날 새면 잊어버리고 오 사람아 오 사람아 변하기 쉬운 네 맘’이다. 이 노래를 들어보면 소나무가 한결같이 푸른빛을 지님에 대한 칭송도 되지만 한편으로는 변절하기 쉬운 사람의 마음을 빗대 불러졌던 노래여서 필자도 이 노래를 기억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 해도 이 세상에 ‘해가 동쪽에서 떠서 서쪽으로 진다’는 영원불변의 진리 말고 변하지 않는 게 어디 있겠으랴. 
오랫동안 한 입장을 견지해 변함없이 고수한다는 자체가 쉽지는 않을 터, 그래서 여건이나 주변환경에 따라 혹은 유리함을 쫓아 변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소나무 노래 가사처럼 사람의 마음은 변하기 십상이고 그 가운데 정치인들이 자신에게 유리한대로 움직이는 조변석개(朝變夕改)는 분명 시대 탓도 있으니 나무랄 일은 아니다. 지금이 어떤 시대인가? 과거 옛 왕조에서 절개를 지켰던 정몽주, 성삼문 등이 존재하기를 바라기란 어려운 세상인데, 변하지 않고서는 정치생명을 연장할 수 없는 정치풍조가 개탄스러울 뿐이다.

한 정치인이 한 사람의 정치인을 두고 “빛의 속도로 변신했다”며 “환영한다. 웰컴”을 외쳤다. 변신했다는 정치인은 다름 아닌 바른미래당 소속 이언주 의원(경기 광명시을)이다. 이 의원은 지난주 내내 언론의 중심에 서 있었던바 그의 화려한 변신과 함께 우군·적군을 가리지 않고 상대하면서 화제를 만들어낸 덕분이기하다. 연일 쉴 틈 없이 집권세력을 성토하면서 반문연대를 주장했고 심지어 한국당 행사에 참석해 강의한 일을 들어 소속정당 대표의 구두경고마저 개의치 않고 손학규 대표에게 친문인가를 맞받아치는 용감성(?)을 발휘하기도 했다.      

이언주 의원이 반문연대론을 내세우고 여권에 몸담고 있는 운동권 출신 세력들과 몇몇 야당 의원에 대해서도 비난성 화살을 퍼부었다. “이제는 기득권을 내려놓고 대한민국이 미래로 나갈 수 있도록 물러나라”고 저격했는데, 공격받은 당해 의원들이 가만있을 리가 없었다. 이종걸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이 의원에 대해 ‘운동권’ 못지않은 개혁론자로 치부했으며, 민주당 내 대표적 운동권 인사인 우상호 의원은 “(이 의원이) 박근혜 탄핵이 문제가 있었다고 하는데 박근혜 탄핵을 앞장서신 분이 이제 와서 그 당 가려고 박근혜 탄핵이 문제 있다고 얘기하면 그게 말이 되냐”고 맹공을 퍼부었다. “아무도 나서서 지적을 안 해 주니까 신나서 저렇게 언론노출을 즐기시는데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한다”고 이언주 의원에 대해 공격 수위를 한껏 높였다.  

정치인이 당적을 옮기고 출마지역을 변경하는 건 다 이유가 있으니 정치생명을 연장하기 위해서다. 정치인치고 자신의 의원직을 계속 유지하려는 욕심이 없는 자가 어디 있겠는가. 그렇지만 ‘철새’ 정치인으로 비판받을 수도 있어 섣불리 결정할 수도 없는바 현 상태의 이언주 의원을 두고서 정치권애서는 ‘철새’ 소리를 듣지 않기 위해서는 더 큰 소리로 ‘반문연대’를 주장하거나 소속정당인 바른미래당에 따르기보다는 친(親)한국당 입장을 보여야 한다고 귀뜸해준다. 어느 정당에서든 소속의원의 일탈을 눈감아주고 오래도록 포용할 수 없다는 판단에서 아닐까.  

정치인의 변심은 자기 이익이 아닌 민주주의와 국민을 위해서라면 정당성이 있을 것이다. 반문을 부르짖는 이언주 의원이 ‘신보수 아이콘’으로 지칭되며 최대 화제로 부상하고 있지만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국민들은 의아해한다. 이 의원의 최근 행보를 보면 스페인 소설가 세르반테스가 쓴 ‘돈키호테’가 생각나는바 ‘들어라 세상의 이야기 작가여! 먼동이 불그스름하게 틀 때 저 유명한 기사 돈키호테는 명마 로시난테를 타고 에티케일 벌판을 건너간다고 써다오’라는 구절이다. 작가는 어찌해 ‘형편없는 말’을 뜻하는 로시난테(Rosinante)를 명마로 둔갑시키면서 돈키호테가 현실을 간과하고 세상을 개혁하려는 우직한 정의의 기사(騎士)로 만들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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