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희 건축가

ⓒ천지일보 2018.11.18
ⓒ천지일보 2018.11.18

벽 속에 숨은 공간이 있다는 것은 재미있는 일이다. 벽 속 공간으로 빠져 들어가는 방법도 별도로 있다. 일상적인 문은 여닫이문이나 미닫이 문이겠지만… 회전문일 수도 있고 장식 벽에 감추어진 혓바닥 속으로 들어가는 느낌으로 들어 갈 수도 있다. 특별한 공간에 들어가면 완전 다른 느낌의 공간이 있을 것이다. 겉에서 보면 전혀 알 수 없었던 거대한 공간이 나온다. 그게 신기하다. 숨은 공간들은 왜 그렇게 크고 웅장한지 볼만한 공간들이 연출된다. 그러나 악의 기운이 충만한 거대 공간은 인간의 삶을 집어 삼킬 것만 같다. 

마법 시계를 작동시킬 수 있는 키가 작동하면서 모든 게 망가진다고 생각했는데 추억이 담긴 또 다른 키가 작동하며 원래의 모습을 되찾는다. 건축물이 있기 때문에 우리의 추억이 더 선명한 모습으로 오래 남아있는 것 같다.

기억의 대부분은 건축물과 공존한다. 어릴 때 단란했던 가족들의 모습도 집의 모습이 먼저 떠오르기 마련이고, 첫사랑도 첫 만났던 장소로 기억된다. 형태를 만들면 공간이 되고 기억의 저장소로 완성된다. 형태는 공간을 만들고 추억의 장소가 된다. 그래서 우리는 집안 구석구석 내 흔적에 대해서 평생을 두고 깊숙이 간직하는 것이다. 

아파트는 우리의 기억을 수능 답안지처럼 고정시켜 놓았는지도 모른다. 우리 집의 추억과 옆집 친구네 집의 추억을 동일시 만들고 있다.

친구가 “나는 오늘 거실에서 숙제를 했어”라고 했다면 어떤 모습인지 그려지는 것이다. 같은 유형의 아파트에 사는 친구는 그 모습이 훤히 그려지는 것이다. 어떻게 그런 동일한 공간에서 태어난 친구들이 창의적인 삶을 살 수 있는지 궁금하다. 

벽 속에 숨겨진 마법 시계는 고정관념에서 오는 공간의 획일성을 깨고 싶었던 영화였던 것 같다. 조금 불편해도 자신의 삶이 묻어있는 공간을 가진다면 틀림없이 자신의 삶의 사는 데 도움이 되리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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