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병 정치평론가 

 

차기 총선이 아직 일년 이상이나 남아 있는데도 마음이 급한 일부 정치인들은 벌써 총선용 ‘프레임 만들기’에 여념이 없다. 지금부터라도 프레임만 잘 만들면 차기 총선은 훨씬 유리한 고지에서 싸울 수 있다는 계산이다. 물론 이런 조급함은 지금 이대로는 차기 총선에서 승산이 거의 없는 쪽, 즉 야권 외곽에서 집중적으로 거론되고 있다. 이를테면 목마른 사람이 먼저 우물을 파는 격이다. 그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것이 이른바 ‘반문(反文)연대’라는 깃발이다. 문재인 대통령에 반대하는 모든 세력들이 차기 총선에서 똘똘 뭉치자는 주장에 다름 아니다.

얼마나 내세울 것이 없으면 현직 대통령을 중심으로 그 반대세력이 똘똘 뭉치자는 저급한 얘기를 하겠는가 싶지만 이는 사실 현실성이 없을 뿐더러 바람직하지도 않다. 게다가 이런 주장은 그 자체부터 기득권을 쥔 일부 정치인들의 상투적인 ‘편가르기식 정치’에 가깝다. 여론을 둘로 갈라치기 해서 그 이득은 내가 챙기겠다는 식의 ‘이기적인 발상’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한국정치의 ‘적폐’는 지금까지 그렇게 축적된 것이다. 이런 행태를 ‘보수의 재건’이라고 주장하니 그저 말문이 막힐 뿐이다.  

지금은 독립운동을 하거나 민주화운동을 하던 그런 시기가 아니다. 다양한 세력들이 다양한 가치와 정책을 놓고 서로 경쟁하고 다투는 ‘포스트 민주화’ 시기이다. 물론 ‘정당정치’가 그 경쟁의 중심이다. 그럼에도 현직 대통령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다 모여라는 식의 시대착오적인 주장이 터져 나올 수 있는 한국 정당정치의 현실, 특히 야당의 현실이 그저 서글플 따름이다. 동네 반장 선거도 이런 식으로는 하지 않을 것이다. 

반공주의는 친일파들의 출구였다

이른바 ‘반문연대’ 배경에는 차기 총선 때의 ‘프레임 전략’이 강하게 깔려 있다. 그리고 그 프레임 전략의 핵심은 문재인 대통령의 인기가 예전 같지 않다는 것, 나아가 차기 총선 즈음에는 문 대통령 지지율이 더 떨어질 것이라는 기대가 짙게 깔려 있다. 이런 상황에서 문 대통령에 반대하는 정치세력만 손을 잡는다면 양자구도가 형성돼 총선 승리는 어렵지 않다는 계산이다. 선거 때만 되면 고개를 내미는 ‘정상배들’의 생각에서 볼 때는 별로 손해 볼 것이 없다는 판단일 것이다.

정치는 과정이요 선거는 그 과정의 결과일 뿐이다. 국론을 ‘편가르기식’으로 분열시키고 민심을 이간질시켜서 과연 총선 승리를 얻어 낼 수 있다고 보는 것일까. 우리 국민을 아직도 그런 수준으로 보고 있는 것일까. 설사 의도대로 그 언저리까지 간다고 한들 그런 정치가 우리 국민에게 무슨 도움이 될 것인가. ‘나쁜 정치’가 백성과 나라를 메쳤던 그 통탄스런 과거사를 정말 모르고 있는 것인지 묻고 싶은 마음이다.

그러나 핵심은 문재인 대통령이 아니다. 야권, 특히 자유한국당이 더 큰 문제이다. 어이없는 내분으로 인적 혁신이 사실상 난관에 봉착하게 되자 그동안 숨죽여 있던 ‘꾼들’이 드디어 큰 목소리를 내고 있다. 혁신을 주도하고 있는 지도부를 향해 총공세를 펼치는 형국이다. 그런 꾼들에게 책임의식이나 성찰 같은 것은 거의 없어 보인다. 살아남기 위해 자신들을 겨눈 칼끝을 향해 더 매서운 창끝을 겨누는 형국이다. 혁신에 대한 ‘반혁신’의 적개심으로 가득 차 있을 뿐이다. 이른바 ‘반문연대’는 그들의 ‘귀환’을 위한 ‘카펫(길잡이)’이 되고 있으며 그들의 거친 목소리에 다시 힘을 실어주는 명분이 되고 있다.

일제강점기 때 친일파는 일제가 그렇게 빨리 망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러나 하루아침에 일제가 투항하자 친일파는 어디 얼굴을 들고 다닐 곳조차 없었다. 뒷방에 숨어 지내면서 ‘새로운 시대’의 ‘청산 대상’이 되어 죽을 날을 불안하게 예상했을 것이다. 그러나 ‘새로운 시대’는 오지 않았다. 미군정과 뒤이은 이승만 정부는 정치적 목적으로 ‘반공주의’ 깃발을 내세웠으며, 그 깃발은 결국 ‘친일파 귀환’의 카펫이 됐고 친일파의 악질적 언행에 다시 힘을 실어주는 명분이 되고 말았다. 대한민국 헌정사의 최대 비극은 이렇게 형성된 것이다.

‘반문연대론’의 비극은 정책이나 가치 대신 ‘특정인’ 중심의 찬반론을 주장한다거나 또는 야당 기득권 세력의 정치적 도구로 이용된다는 데만 있는 것이 아니다. 최대 비극은 야권에서 벌써 퇴출되거나 소멸됐어야 할 구태의 ‘꾼들’이 다시 귀환할 수 있는 카펫, 즉 길잡이 역할을 할 수 있다는 데 있다. 그동안 죽은 듯 숨어있던 그런 꾼들이 벌써부터 ‘반문연대’ 운운하며 스멀스멀 고개를 내밀고 있는 현실이 눈에 보이지 않는가. 그들은 전열을 재정비하면서 더 공세적으로 나올 것이다. 마치 친일파의 그것처럼 그들의 ‘적개심’이 어떻게 표출될지 우려하지 않을 수 없는 대목이다. 불행하게도 ‘반문연대’가 사실상 그 마중물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다. 민주주의 역사에 죄를 짓는 농간에 다름 아니다.

좀 더 분명하게 짚을 대목도 있다. ‘반문연대’를 주장하는 그 목소리에 국민은 지금 별 관심이 없다는 점이다. “너나 잘 하세요” 라는 화답이 아마 적절할 것이다. 설사 앞으로 문 대통령에 대한 실망이 크다고 하더라도 이미 폐기됐어야 할 구태들이 ‘반문연대’라는 깃발을 들고 선거정치 전면에 나서는 순간 국민들이 어떤 행동을 보일지는 지켜볼 일이다. 지난 지방선거에서 야권을 초토화시킨 ‘민심의 분노’를 잊어서는 안 된다. 그들이 짜주는 프레임대로 국민이 따라 갈 것이라고 보면 엄청난 착각이다. 야권은 지금 내부 혁신에 운명을 걸어야 할 때이다. 도려 낼 것은 과감하게 도려내야 한다. 부디 시간이 그리 많지 않다는 점을 직시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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