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수 한체대 스포츠 언론정보연구소장 

 

마지막 순간까지 가슴 설레며 경기를 지켜봤다. 연장 13회초 SK 공격, 2사 후 상황에서 2번타자 한동민이 우중간 결승 솔로홈런을 날리자 SK 응원단은 이내 함성으로 뒤덮였다. SK는 한동민의 이 솔로홈런 한 방으로 4-4로 팽팽히 맞선 승부를 결정지우고 2010년 이후 8년 만이자 4번째 한국프로야구 우승컵을 들어 올렸다. 극적인 순간에서 잠시 숨을 돌리며 SK의 연고지, 인천야구의 추억이 낡은 필름이 돌아가듯 기억 속을 맴돌았다.

인천 SK 야구단의 첫 번째 전신팀은 1980년대 ‘꼴찌 신화의 전설’ 삼미 슈퍼스타즈였다. 1982년 전두환 정권 때 정치적 관심을 돌리고 독재정권의 국민적 이미지를 벗기 위해 ‘우민정책’의 일환으로 프로야구가 출범한 이후 인천을 연고지로 한 삼미는 1983년 한 해를 빼고는 1985년 청보 핀토스로 매각되기까지 만년 꼴찌였다. 삼미는 팀 최다 실점, 시즌 최소 득점, 1게임 최다 피안타, 팀 최다 홈런 허용, 최다 사사구 허용, 시즌 최다병살타 등 치욕적인 기록을 갖고 있었다. 최약체의 삼미 슈퍼스타즈는 엉뚱하게도 소설, 영화 속의 소재로 스토리가 재현돼 당시의 시대적 분위기를 잘 전해주었다.

2000년대 초반 제8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으로 스포츠소설로는 이례적으로 베스트셀러에 등극한 박민규 원작의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은 승리만을 바라보며 돌진하던 시대상을 잘 표현해 호평을 받았다. 작가가 괴짜구단 삼미 슈퍼스타즈를 주목했던 이유는 승리지상주의 뒤에서 패배를 곱씹어야 한 소외된 이들의 자화상과 흡사하다고 봤기 때문이다. ‘주변인들’을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은 경쟁과 죽음을 부추기는 현대 자본주의에 대한 풍자와 만나 색다른 소설적 감흥을 주었다. 삼미의 팬클럽은 야구를 잘 하는 게 아니고 그냥 하는 게 목표라는 메시지에 삶의 여유를 느꼈던 것이다. 

삼미 슈퍼스타즈에서 청보 핀토스로 매각되던 무렵, 프로야구 기자로 첫 발을 내딘 필자는 이후 소설이 아니 실제 야구장에서 인천야구가 엄청나게 달라지는 모습을 수십년 동안 지켜봤다. 청보 핀토스, 태평양 돌핀스, 현대 유니콘스를 거치며 인천야구는 삼미 때와는 다른 면모를 보였다. 2000년 SK그룹이 인천 출신의 현대 유니콘스 선수들을 주축으로 프로야구단을 창단하면서 인천야구는 새로운 전기를 맞았다. SK는 2002년 홈구장을 인천 문학구장으로 이전하고 2003년에 창단 이후 처음으로 포스트시즌에 진출해 준우승을 했다. 2005년에는 3위로 시즌을 마감했고, 2007년에는 1위로 시즌을 마감, 한국시리즈에서 처음으로 우승했다. 2008년에는 2년 연속 통합 우승을 달성했으며, 2009년에는 2위로 플레이오프에 진출해 준우승을 했다. 2010년에는 1위로 시즌을 마감, 한국시리즈에서 우승했다. 2011년에는 3위로 플레이오프에 진출해 준우승을 기록했다. 

삼미 시절, 팬들의 따뜻한 동정심까지 이끌어냈던 인천야구지만 이제는 대한민국 야구를 주도적으로 이끌며 강력한 존재감을 과시할 정도다. ‘짠물 야구’라는 비아냥 소리를 듣던 팬들은 과거의 모습에서 탈피해, 최첨단 구장에서 최고의 오락으로 야구경기를 즐기는 적극적이고 열정적인 분위기이다. 특히 올해 프로야구에서 SK는 정규리그에서 압도적인 성적을 올렸던 두산을 상대로 ‘언더독’ 팀의 뚝심과 저력을 보여줬다. 플레이오프를 거쳐 최종 챔피언결정전에 오른 SK는 여유만만한 두산을 맞아 선수들과 코칭스태프들이 혼연일체로 뭉쳐 최상의 경기력을 발휘하며 열세라던 전문가들의 일방적인 예상을 뒤엎고 극적인 우승을 차지했다. SK는 플레이오프 5차전서 넥센 히어로즈를 연장까지 가는 접전 끝에 11대 10으로 꺾고 한국시리즈에 진출해 프로야구팬들을 열광하게 했다. 이 승부는 근래 들어 프로야구 최고의 명승부로 늦은 밤에도 이례적일 정도로 높은 TV 시청률을 보였다. 지금은 SK로 대표되는 인천야구는 지난 수십년간 많은 감동적인 스토리를 엮어내며 프로야구의 진면목을 보여줬다. 최약체에서 최강자로 올라선 인천야구는 경쟁사회에서는 영원한 약자도, 영원한 강자도 없다는 삶의 교훈을 일깨워주었다.

천지일보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천지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