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이야기] 상트페테르부르크 10 – 에르미타시 박물관 (4)
[역사이야기] 상트페테르부르크 10 – 에르미타시 박물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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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곤 역사 칼럼니스트 

 

에르미타시 박물관 투어도 막바지이다. 루벤스 방까지 왔다. 현지 가이드는 인생을 가장 멋지게 살다간 화가가 루벤스(1577~1640)라고 말한다. 반면에 렘브란트(1606~1669)는 초년엔 화려하다가 말년에 파산까지 당하고 쓸쓸하게 죽은 화가라고 설명한다. 

루벤스 그림들을 다시 보니 반갑다. 2016년 11월에 스페인 프라도 미술관에서 ‘삼미신(三美神)’ 즉  아글라이아(미의 신), 에우프로시네(은총의 신), 탈레이아(풍요의 신)를 본 적이 있으니 구면이다. 더구나 ‘조선남자’란 그림을 그려 조선과 인연이 있는 화가라서 그런지 더욱 애정이 간다.

한 쪽 벽에서 여러 그림들을 보았다. 특히 그리스·로마 신화에 나오는 것 같은 그림 두 점이 눈에 들어온다. ‘땅과 물의 만남’과 ‘바쿠스’이다.  

1618년에 그린 ‘땅과 물의 만남’은 뿔을 들고 있는 땅의 여신 키벨레와 삼지창을 들고 있는 바다의 신 넵튠(그리스 신화는 포세이돈)이 서로 손을 잡고 있다. 항아리에는 물이 넘쳐흐르고, 두 아이가 헤엄치고 있다. 키벨레 위에는 승리의 여신 빅토리아가 월계관을 들고 있고, 물 아래에는 트리톤이 고동 나팔을 불고 있다. 

그런데 이 그림에는 ‘스헬데와 안트베르펜’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당시 루벤스가 활동했던 플랑드르 상업도시 안트베르펜은 종교전쟁으로 스헬데 강을 통해 바다로 나가는 항로가 차단당했는데, 땅과 물이 만나듯이 바다로 나가 안트베르펜이 번영하길 기원하고 있다.    

다음 그림은 ‘바쿠스(Bacchus)’이다. 바쿠스는 로마 신화의 포도주와 황홀경의 신이다. 이 그림은 ‘부어라 마셔라’이다. 술잔을 든 바쿠스는 여인이 따르는 술을 받고 있고, 그 밑에서 한 아이가 떨어지는 술을  받아 마시고 있다. 바쿠스 오른편에는 한 남자가 병나발을 불고, 아이는 오줌을 싸고 있다. 

이 그림은 1637년에 그린 것인데, 이 시기는 루벤스의 삶이 그야말로 황홀에 빠진 때였다. 1626년에 첫 부인 이사벨라와 사별하고 4년간 홀로 지낸 루벤스는 1630년(그의 나이 53세)에 16세의 헬레나 푸르망과 재혼했다. 그는 아이를 5명이나 낳으면서 브뤼셀 근교의 전원주택에서 풍요롭게 살았다. 이 시기에 루벤스는 아내를 모델로 그림을 여러 장 그렸는데, 1636년부터 1638년까지 그린 ‘삼미신’ 중 금발의 분홍빛 얼굴의 여인 모델이 아내 푸르망이었다.  

한편 현지 가이드는 일행을 ‘젊은 여자가 두 손이 묶인 늙은이에게 자신의 젖을 먹이고 있는 그림’ 앞으로 데리고 간다. 제목은 ‘로마인의 자비(Roman Charity)’이고 부제는 시몬과 페로라고 설명한다.     

노인 시몬은 젊은 여자 페로의 아버지다. 시몬은 역모죄로 아사형(餓死刑)을 선고받고 감옥에 갇힌 죄수였다. 아버지를 면회한 페로는 굶어 죽어가는 아버지를 보고 자신의 젖을 물린다. 시몬의 목숨을 구한 딸의 효성에 감동한 간수들과 이 사실을 전해들은 로마법정은 시몬을 석방한다.   

이렇게 루벤스는 감옥 안에서 자신의 젖을 물리며 굶어 죽어가는 아버지를 살리려는 젊은 여인의 헌신적 사랑을 표현해 냈다. 

한편 암스테르담 국립박물관에 있는 루벤스의 또 다른 ‘로마인의 자비’그림은 에르미타시 박물관보다 훨씬 선정적이다. 늙은이가 두 젖이 다 나온 젊은 여인의 젖 하나를 물고 있어 섹슈얼리티가 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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