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의 정 반대편이며 세계에서 가장 긴 나라 칠레, 두 달여 전 산호세 구리 광산이 붕괴되고, 땅 밑 700m 갱도엔 33명의 광부들이 갇히게 되었고, 그 후 69일 만에 33시간의 치밀하고도 정교한 구조과정을 거쳐 19살에서 63세까지의 침착했던 33인의 영웅들은 국민들과 아니 온 세계와 함께 기적의 순간을 연출하며 가족의 품으로 생환했다.

인명경시 풍조와 함께 지구촌 곳곳에서 수많은 인재(人災)와 천재(天災) 그리고 각종 분쟁으로 인한 인명살상이 서슴지 않고 자행되는 이때, 그야말로 생명의 소중함과 우리가 왜 살아가야 하는지를 다시금 일깨워 주는 기적의 드라마가 펼쳐지면서 잠시 모든 것을 잊게 해줬다.

크리스천사이언스 모니터는 14일 “환율전쟁 영토분쟁 테러음모로 분열된 세계를 광부들이 하나로 만들었다”고 밝힌 점도 같은 맥락에서다.

33人의 매몰에서 생환까지의 드라마는 갇힌 자의 침착함과 의지, 구조자의 치밀함과 확신, 세바스티안 피녜라 칠레 대통령과 국민들의 인내와 끈기, 그리고 온 세계인의 기도가 함께 빚어낸 분명 픽션이 아닌 사랑과 감동의 걸작 다큐다.

생존자 가운데 두 번째로 구조된 세블베다(40)는 “그곳에는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있었지만, 악마도 함께 있었다”며 “결국 하나님이 우리의 손을 잡아 주셨기에 구출될 것을 확신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즉, 이들은 절망 가운데서도 한 사람의 지도자를 세웠고, 또 그 지도자에 의해 희망을 배웠고 순종을 배웠다. 또 그 희망이 단순 희망으로만 끝나는 게 아니라, 인내와 믿음으로 실행으로 옮겨 희망의 결과를 향해 불가능을 가능케 하는 기적을 일궈 냈던 것이다.

결국 신은 불평과 절망을 싫어했고, 희망과 용기와 함께했던 것임을 잘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굳이 속담을 빌어본다면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는 말과 같을 것이다.

빼놓을 수 없는 것은 또 있다.

갇힌 자뿐만 아니라 칠레 대통령은 모든 사람들이 불가능이라 조언할 때, 외려 국민들과 하나 되어 용기를 심어 주며, 전 세계를 향해 도움을 요청하며, 구조자와 가족과 함께 현장을 누비며 희망의 끈을 놓지 않게 했으며, 그것이 온 세계가 하나가 될 수 있는 원동력이 됐던 것임을 익히 알고 있을 것이다. 지도자의 역할이 얼마만큼 중요한지를 또한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그 결과 지진과 내정의 불안으로 분열된 칠레를 하나로 묶는 계기가 되었으며, 온 세계는 칠레가 이런 나라였던가 하며 생각을 바꿔 놓는 계기가 된 것이다. 아무튼 수많은 얘기를 남긴 채 산호세 구리 광산의 신화 같은 역사는 이제 뒤안길로 접어들 것이다.

이번 사건으로 인해 구조시간 총 33시간, 생환자 33인, 즉, ‘33’의 숫자는 행운의 숫자로 등극하게 된 점도 괄목할 만하며, 우리 또한 91년 전 종파를 초월 구국의 일념으로 하나 되어 선포하고 또 조국의 미래를 예시한 33인의 절망으로부터 희망의 메시지 즉, 3.1독립선언문이 만들어졌음이 새롭게 와 닿는다.

이제 위기를 하나로 묶는 기회로 승화시킨 칠레를 보며, 그 반대편에 서 있는 우리의 문제로 돌아와 보자. 지금까지 걸어온 힘들고 어둡던 긴 터널을 잘 견디며 이겨낸 민족이다. 그야말로 위기 때마다 기회로 여기며 하나 되어 오늘을 일궈 낸 민족이다. 고지를 앞에 두고 기회가 온 것이다. 그것은 다름 아닌 며칠 앞으로 다가온 ‘G20 정상회의’다.

이젠 위기를 넘겨 기회를 잡은 것이다. 찾아 온 이 기회를 결과로 만들 일만 남아 있는 것이다. 금번 칠레 광산의 사건이 우리에겐 교훈이 돼 저기 보이는 고지를 기필코 탈환해야 한다.

“고난의 운명을 지고/ 역사의 능선을 타고/ 이 밤도 허우적거리며/ 가야 하는 겨레가 있다./ 고지가/ 바로 저긴데/ 예서 말 수는 없다.// 넘어지고 깨어지더라도/ 한 조각 심장만 남거들랑/ 부둥켜 안고/ 가야만 하는 겨레가 있다./ 새는 날, 피 속에 웃는 모습/ 다시 한 번 보고 싶다.”
노산 이은상 시 ‘고지가 바로 저긴데 예서 말 수는 없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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