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경우 소설가 문화칼럼니스트

지난 주말, 군대에 간 조카 면회를 갔다. 전방의 산과 들이 가을 햇살을 맞고 있었다. 아름다운 풍경이었다. 몇 년 째 업그레이드 하지 못한 자동차 내비게이션 탓에 낯선 시골 길을 헤매야만 했다.

조카는 훈련을 마치고 자대에 갓 배치 받은 작대기 하나짜리 이등병이었다. 올 초 대학에 입학하고서도 제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방황하다 선택한 입대였기에 부모는 물론 여러 피붙이들이 안타까워했었다. 걱정도 많았다. 아직 솜털 보송한 어린 것이 어떻게 견뎌낼꼬, 하며 눈물을 찍어내기도 했다.

조카는 건강했다. 훈련소에서 헤어진 후 처음 만난 부모 앞에서 거수경례를 턱 갖다 붙일 때는 제법 의젓하고 늠름해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내 히죽 웃으며 살갑게 굴 때는 천진한 어린 아이 그대로였다.

조카의 증언은 놀라웠다. 훈련소에서부터 자대에 배치받기까지 여러 차례 어떤 보직을 받고 싶은지 물었으며, 보직 제안을 해 올 때에는 반드시 의견을 물었다고 했다. 훈련소 위병과 조교부터 수색대 등 여러 차례 자신의 의지에 따라 부대와 보직을 선택할 기회가 있었으며, 지금의 자대로 배치 받은 것 역시 자신의 의사가 반영된 것이라 했다.

내 기억 속 군대는 ‘까라면 까는’ 곳이었다. 친절하게 내 의견을 물어본 적도 없었고 나의 기분이나 형편을 헤아려 주는 이도 없었다. 앞으로 가라면 앞으로 가고, 뒤로 구르라면 뒤로 구르고, 침상 밑으로 기어들라면 기어들고, 화장실 변기에 머리를 박으라면 박았을 뿐이다.

조카의 놀라운 증언이 이어졌다. 군대에 와서 한 번도 맞지 않았으며 욕설을 듣지도 않았다고 했다. 심지어 중대 선임들이 사촌 형처럼 잘 대해 준다고 했다. 피엑스에서 맛 나는 과자도 사 줄 뿐 아니라 공연히 불러 차렷 열중 쉬어 시키는 선임은 더더구나 없다고 했다.

심지어 소대의 최고선임인 말년 병장이 두 팔 걷어붙이고 화장실 청소에 앞장선다고 했다. 가장 후임인 조카가 한심한 자세로 호수로 물을 뿌려주면 선임 병장이 놀라운 속도로 양 손 두 자루의 빗자루를 움직여 바닥을 쓸어낸다는 것이었다.

내 기억 속 군대의 말년 병장은 깔깔이라고 부르는 야전 점프 내피를 끼어 입고선 경로당의 노인처럼 내무반을 어슬렁거렸다. 매일 아침 막내 졸병으로 하여금 제대 D-데이를 아뢰도록 했고, 후임이 경례를 하면 강아지 새끼처럼 한 발을 찍 들었다 놓기도 했다.

조카의 놀라운 증언이 거듭됐다. 하루 일과가 끝나면 누구나 개인적인 시간을 갖는다고 했다. 개인정비라 해서 옷을 빨기도 하고 책을 읽을 수도 있다고 했다. 부대에 공중전화도 있어 그리운 엄마 아빠 목소리도 들을 수 있다고 했다. 비데기가 설치된 화장실이 있으며 이 또한 계급에 상관없이 누구나 먼저 온 놈이 이용할 수 있다고 했다.

내 기억 속 군대의 일과 후는 두들겨 맞는 시간이었다. 선임들의 군화를 모조리 가져다 한 놈이 먼지를 털면 한 놈이 받아 침을 퉤퉤 뱉으며 광을 내야만 했다. 파리가 미끄러질 정도로 반질반질 광을 내지 않으면 조인트가 까였다.

손이 베일 정도로 침상의 모포 각을 잡아야 했고 선임 하사님이 하얀 장갑을 끼고 창틀이나 바닥을 싹 문지르면 초주검을 각오해야 했다. 이등병 일등병이 실로 다정한 모습으로 대화를 주고받으면 상병들께서 “죽어도 명랑 내무반은 아니 된다”며 “내 밑으로 다 집합!”을 외쳤다.

군대가 분명 진화했다. 인간들도 진화한 게 틀림없다. 나는, 내 마음 속 군대는 그야말로 내 마음 속 군대일 뿐이라는 걸 확실하게 알았다. 그래, 내 마음속 불편한 돌덩이 하나가 사라졌다. 돌아오는 길, 내 마음이 깃털처럼 폴폴 가을 하늘을 날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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