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일보 시론] 중국 경호원에 이어 문 대통령 경호원까지… 매 맞는 국민
[천지일보 시론] 중국 경호원에 이어 문 대통령 경호원까지… 매 맞는 국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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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경호임무를 지닌 경호원이 대통령 경호 대신 일탈해 음주상태로 민간인을 폭행한 어처구니없는 일이 발생했다. 엄청난 일이 벌어졌으나 무탈하게 잘 넘어가기만을 바라는 이들에게 필자가 다시 문제를 만들고 있는 걸까.

이는 나라와 정부의 눈이 될 언론이 반드시 짚어야 할 중대 사안 중 하나다. 어용(御用)의 늪으로 깊이 빠져 들어가고 있는 언론의 현실에서 더더욱 짚고 파헤쳐야 하는 이유는 국민들이 볼 때 청와대와 정부는 이미 자정능력이 상실돼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과거 권력에서 찾아볼 수 없는 일들이 너무나 자연스럽게 잊을 만하면 한 번씩 재생산되고 있는 것이다. 기강해이, 이는 지도자의 지도력에 결함이 있는 것은 아닌지 아니면 지도력의 부재에서 기인된 것은 아닌지 아무튼 국민들은 왠지 불안하다.

지난해 말, 중국을 국빈 방문한 문재인 대통령은 또 한번 굴욕외교로 국민들의 자존심에 상처를 냈다. 문 대통령 베이징 도착에 맞춰 베이징을 비우고 난징을 방문한 시진핑, 리커창 총리의 오찬 거부, 왕이 외교부장이 문 대통령 어깨에 손을 올리는 일, 방문 일정 마지막 날 당연히 나와야 할 공동발표문조차 없었던 치욕의 국빈방문, 벌써 다 잊어버린 것인가. 아니면 이 같은 사실이 국민들에게 조목조목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던 것인가. 그것도 아니면 어느 누가 본질과 달리 내용을 희석시키며 안심시켜서인가. 방문 기간 내내 불안과 초조로 일정을 지켜봤던 그 때가 오버랩 되는 중이다.

거기서 끝이 아니다. 이보다 더한 치욕은 바로 중국경호원 한국기자 폭행사건이다. 한 나라 대통령이 국빈 방문한 가운데 해당국 경호원들에 의해 대통령을 수행한 대한민국 수행기자들이 수행 현장에서 무차별 폭행을 당해도 아무런 방어도 조치도 항변도 못하는 지도자와 정부 그리고 경호는 왜 존재하고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 것인가. 아이러니 한 것은 그러면서 자기 국민은 “내가 누군지 알아!” 하면서 무차별 폭행한다. 기강이 무너지고 질서가 와해되고 기존에 형성된 모든 제도를 부정하는 문화는 작금의 이 나라를 휩쓸며 어지럽히고 있는 게 분명해 보인다.

솔직히 북한을 대하는 태도 역시 왠지 석연찮다. 북에 어떤 약점이 있길래 무조건 저자세로 협상에 임하고 있는 것인가. 국민들은 궁금하다. 아니 의혹의 눈으로 지켜보고 있다. 번번이 호통치는 북한 관료에 고개 숙인 남한 관료, 왜 이런 현상들이 이어지는 것인가. 협상은 상호주의라는 원칙에서 시작하는 것은 삼척동자도 아는 상식이다. 저자세로 무슨 협상이 이뤄지겠는가. 국민들은 이젠 협상이 아닌 북한 일방주장을 우리는 그저 받아들이는 형국이 재연되고 있다는 의심을 갖기 시작했다.

남북군사협정과 군사긴장완화조치에 대해서도 표면적으로는 상호주의 원칙에서 진행되는 듯 보이나 실질적이며 이면적으로는 어떤 계략이 숨겨져 있을지는 모른다는 불안감이 확산되고 있는 이유다.

의심의 눈초리로 봐도 부족한 게 안보며 국방이며,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한 게 안보와 국방이라는 상식도 모르는 것인가. 평화가 가장 위험한 적의 공격이라는 치명적 충고를 하고 싶다. 애써 무장하지 않아도 상대가 스스로 무장해제하고 안일한 생각을 갖게 하는 것이 바로 평화전술이라는 기만전술이기 때문이며, 인류 역사의 전환기마다 그 판도를 바꾸는 역사의 핵심에는 바로 이 같은 평화전술이 있었다는 점도 제발 좀 알았으면 한다.

만에 하나가 나라와 국민의 존망이 달려있기 때문이다. 즉흥적이고 저자세로 국민의 안녕은 보장받을 수 없는 것이다. 북한의 성명과 발표는 자고나면 바뀌고 변하는 이 현실과 현상을 무엇으로 답할 것인가. 문재인 대통령도 대변인도 각부장관도 여당도 하나같이 모두 북한 입장을 두둔하고 심지어는 대변하고 있다.

작전에 실패한 지휘관은 용서받을 수 있지만, 경계에 실패한 지휘관은 용서받을 수 없다는 교훈은 우리 정부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언급했듯이 나라와 국민을 담보하고 있기에 한 치의 오차도 용납할 수 없다. 이것이 정의다. 현 정부는 정의에 대해서도 아전인수(我田引水)격으로 해석하지 말아야 한다. 지금까지 외친 정의는 정의가 아니었고, 자신들을 합리화 시키는 수단에 불과했다는 사실이 백일하에 다 드러나고 있음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적에게는 다 퍼주고 이해하고 용서하면서 왜 국민들은 둘로 나누며 마치 적으로 생각하며 하나 될 수 있도록 노력하고 희생하지 않는 이유가 뭘까. 내 편만의 정부가 되고 내 편을 위한 정책으로 일관하는 안타까운 정부가 잘 이해가 되질 않는다. 무슨 연고로 그리할까. 참으로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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