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일보=장수경 기자] 잔느는 요즘 경찰서에서 일하는 게 좋아지기 시작했다. 건물이 커서 남의 이목을 끌 일도 없고, 적당히 인간적이면서 또 적당히 비인간적이라 저녁이 되면 더 있고 싶어질 일이 없었다. 잔느는 계단을 올라 지원실이 있는 3층으로 향했다. 경찰서의 일원이 된 지도 벌써 1년째다. (본문 12페이지 中)

서적 ‘유의미한 살인’ 저자인 카린 지에벨은 2005년 데뷔한 이후 지금까지 명확한 선과 악의 대립이나 액션이 주가 되는 극적인 연출보다 내면에 집중해왔다. 그의 데뷔작이자 마르세유추리소설대상 수상작인 ‘유의미한 살인’은 스스로 만든 틀에 갇혀 평생 살얼음판을 걷듯 조심스레 살아가는 잔느가 편지 한 장을 받으면서 시작된다. 편지를 쓴 이는 살인자임이 분명한 엘리키우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잔느는 그에게 살인자 이상의 의미를 부여하게 된다.

이처럼 카린 지에벨은 평범한 인물을 통해 특별한 스릴을 전해온다. 어디에나 있을 법한 인물의 심리를 파고들어 천생 악인에게나 있을 것 같은, 하지만 사실은 누구나 품고 있는 선과 악의 경계로 초대한다. 증오와 정의, 공포와 설렘, 섞여선 안 될 것들의 묘한 공존, 아이러니 속에서 갖게 되는 공감.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내 마음의 어둠까지 깊게 긁어내는 카린 지에벨의 이야기는 그래서 매력적이다.

카린 지에벨 지음·이승재 옮김 / 밝은세상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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