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준 역사연구가/칼럼니스트

 

조선 선비들의 최고 염원은 과거(科擧)에 급제하는 것이었다. 향시, 초시를 거쳐 전시(殿試)에 급제하면 명예가 하늘을 찌를 듯했다. 관복에 찬란한 어사화를 꼽고 서울 장안을 사흘씩이나 돌아다니며 축하잔치를 열었다.

과거에 급제하면 그 때부터는 인생행로가 달라졌다. 영영전(英英傳)의 성균유생 김생은 알성급제하여 대군(大君)의 집에 들어가 남모르게 만나왔던 궁인(宮人) ‘영영’과의 결혼 승낙을 얻어낸다. 상상도 하지 못할 일로 과거 급제자가 받은 특전이었다. 춘향전의 이몽룡은 알성급제하여 정삼품(正三品)을 제수 받고 암행어사가 됐다. 

그런데 과거에 합격한다는 것은 하늘의 별 따기였다. 평생 죽을 때까지 과거공부만을 하다 끝내는 포기하고 세상을 한탄하며 산 선비들이 많다. 한 집안에서 3대에 걸쳐 과거에 오르지 못하면 양반이라도 몰락의 길을 걸었다.

대대로 청렴을 신조로 살아온 선비들이라 재산이 있을 리 없었다. 가난한 선비들이 처음 내다 판 것이 조상이 물려 준 땅문서였다. 그다음 손댄 것이 서적이었다. 흉년이 들어 먹을 것이 없을 때는 자식까지 팔았다.

이런 가난한 삶속에서도 선비는 하루 종일 방안에 틀어박혀 책만을 끼고 살았다. 자나 깨나 과거타령만 했다. 농사나 노동은 부녀자들의 몫이었다. 
실학자 초정 박지원의 ‘양반전’에 나오는 양반의 일상 모습을 보자. 

- (전략)…옛 것을 본받고 뜻을 고상하게 할 것이며… 주림을 참고 추위를 견뎌 입으로 설궁(說窮)을 하지 아니하되… 소리를 길게 뽑아서 여종을 부르며, 걸음을 느릿느릿 옮겨 신발을 땅에 끈다.… 손에 돈을 만지지 말고, 쌀값을 묻지 말고, 더워도 버선을 벗지 말고… 추워도 화로에 불을 쬐지 말고…(하략) -

실학자들은 조선이 망하는 것을 과거제와 무위도식했던 양반들에게 있다고 탄식했다. 선비들도 농사를 지어야 하며 노동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조선 사회는 이들을 개혁하지 못하다 가난한 나라로 전락해 열국에 짓밟히는 수모를 당한다.

직장을 포기하고 방안에만 틀어박혀 바깥에도 나오지 않는 ‘지붕 밑 실업자’가 수십만이라고 한다. 대학을 졸업해 중소기업은 아예 생각하지 않는 젊은이들이다. 30대에 지붕 밑 신세를 벗어나지 못하면 40대가 되면 의욕을 잃고 좌절하게 된다. 이들의 행태가 어쩌면 옛 유교사회 과거에만 집착했던 양반의 행태를 닮은 것일까. 

필자는 젊은 시절에 에밀쑤뻬스뜨르가 지은 ‘지붕 밑 철학자’라는 소설을 읽은 적이 있다. 방안에 틀어 박혀있던 젊은이가 문을 여는 순간 비둘기 떼가 몰려들었다. 

청년은 방안에 있던 빵 부스러기를 비둘기에게 던져주었다. 새들은 즐거워하며 청년을 떠나지 않았다. ‘아! 나를 반겨 맞이해주는 것도 있구나.’ 청년은 골목으로 나와 사람들과 대면한다.

그는 새로운 삶을 살기 시작했다. 자신감이 생기고 행복을 느꼈다. 세상은 자기가 생각한 만큼 보는 눈에 따라 달라진다는 줄거리다. 이 소설에서 받은 감동이 지금도 생생하다. 

방안 철학자들은 빨리 벗어나 새로운 도전을 해야 한다. 매일 아침 새로운 바이오그래피를 쓴다는 각오가 있다면 세상은 다르게 보일 것이다. 좋은 직장만을 바라는 ‘과거시험 의식’을 버려야 개인의 삶도 희망이 있다. 안된다고 생각되면 빨리 포기하는 것이 현명한 처사다. ‘지붕 밑’을 하루 빨리 탈출해야 새로운 인생을 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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