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륙의 나라 중국. 그 드넓은 땅 동쪽 끝인 동북지역의 작고 작은 마을에 큰 기운이 솟을 줄 누가 알았겠는가. 이 땅은 청태조 누르하치가 태어난 곳이자, 그 아들과 함께 중국 천하를 제패할 꿈을 키운 장소다. 누르하치가 속한 ‘여진족’은 이곳에서 새 역사를 써 내려갔다. 그런데 여진은 ‘조선’과도 관련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이를 중국 동북 현지  답사를 통해 하나씩 풀어가 보고자 한다.

청태조 누르하치 무덤에서 아들 홍타이지가 제향드리고 나오는 모습을 재현 ⓒ천지일보 2018.11.11
청태조 누르하치 무덤에서 아들 홍타이지가 제향드리고 나오는 모습을 재현 ⓒ천지일보 2018.11.11

마지막 뒷모습, 소박함 가득
반달 모양 성벽 뒤 묘소 마련
청나라의 독특한 문화 담겨

[천지일보=장수경 기자] 청태조 누르하치의 마지막 모습은 소박했다. 한 나라의 건국이라는 원대한 꿈을 꾸었던 누르하치. 하지만 마지막 뒷모습은 청태조라는 이름에 비해 검소했다. 하지만 오히려 그 검소함은 누르하치의 삶의 진실성을 느끼게 해줬다.

◆누르하치 무덤인 ‘동릉’

중국 랴오닝성 푸순의 고대 도시 ‘허투알라(Hetuala)’와 ‘사르후’를 둘러본 후 도착한 청태조 누르하치의 무덤인‘복릉’. 심양에서 동북쪽으로 약 11㎞ 떨어져 있어 ‘동릉’이라고도 부른다.

운이 좋은 걸까. 마침 홍타이지가 아버지 누르하치에게 제향 올리는 행사가 재현됐다. 황금색의 복장을 갖춰 입은 홍타이지. 그는 108계단을 오르며 차분히 아버지를 만나러 갔다. 어느덧 주요 건물이 모습을 드러냈다. 건물의 전체적인 색은 주황빛인데, 과연 중국의 분위기를 가득 담고 있었다.

위패를 봉안한 융은전(隆恩殿)이 멀리 보였다. 이곳에 오른 홍타이지는 미리 준비된 방석에 무릎을 꿇고 앉는다. 그리고 두 손을 높이 들었다가 몸을 최대한 낮게 한 후 절을 했다.

청태조 누르하치 무덤으로 제향드리러 가는 아들 홍타이지의 모습을 재현 ⓒ천지일보 2018.11.11
청태조 누르하치 무덤으로 제향드리러 가는 아들 홍타이지의 모습을 재현 ⓒ천지일보 2018.11.11

대청제국의 두 번째 황제인 홍타이지도 아버지 앞에서는 한없이 낮아지는 아들이었다. 아버지를 그리워했을 모습도 실제 이와 비슷했겠지. 청나라 황실의 옛 모습을 떠올리게 하는 오묘한 경험이었다. 융은전의 뒤쪽 성벽은 반달 모양이다. 이는 중국의 건축 방식으로, 성벽 뒤편으로는 둥그런 낮은 산이 하나 있다. 바로 누르하치 무덤이다.

이 무덤에는 누르하치와 황후가 함께 잠들어있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무덤 위에 나무 한그루가 심겨있다. 이는 중국만의 독특한 문화로 나무를 통해 환생한다는 뜻이 담겼다. 청나라가 영원히 이어가길 바라는 황실의 마음이 담긴 듯 보였다.

능 주변으로는 도굴 방지를 위해 성루를 쌓았다. 성루에 오르니 복릉 전체가 한눈에 들어왔다. 청태조 누르하치가 잠든 이곳 복릉은 여전히 그의 강인한 정신이 느껴지는 듯 했다.

청태조 누르하치 무덤에서 아들 홍타이지가 제향드리고 있는 모습 재현ⓒ천지일보 2018.11.11
청태조 누르하치 무덤에서 아들 홍타이지가 제향드리고 있는 모습 재현ⓒ천지일보 2018.11.11

◆역사 속 누르하치는?

역사 속 누르하치는 어떤 인물이었을까. 1559년 아이신기오로 누르하치가 태어났다. 누르하치는 여진족 말로 ‘멧돼지 가죽’이라는 뜻이다. 질기고 튼튼하게 살라는 의미를 담고 있는 듯 보인다.

원래 누르하치는 상인의 아들이었다. 그도 처음부터 대청제국을 꿈꾸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시대적 흐름은 그를 청태조 자리에 오르게 만든다. 그의 인생을 뒤흔든 가장 큰 사건이 발생한다.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명나라 장수인 이성량에게 목숨을 잃은 것이다. 이성량은 오살이라고 해명한다. 하지만 누르하치는 차분히 복수의 때를 기다린다.

청태조 누르하치 무덤인 동릉 ⓒ천지일보 2018.11.11
청태조 누르하치 무덤인 동릉 ⓒ천지일보 2018.11.11

33년이 흐른 1616년 누르하치는 후금을 세운다. 1234년 금나라가 몽골에 망한 지 382년 만의 독립이다. 누르하치는 1618년 칠대한(七大恨, 일곱가지 원한)을 명분으로 ‘반명’을 선포한다. 1619년에는 명나라와의 사르후 전투에서 대승을 거둔다.

1625년에는 중국 심양(瀋陽 : 奉天)으로 도읍을 옮기고, 청나라로 국명을 바꾼다. 그리고 1926년에는 요하를 건너 중국 본토로 들어가는 길목에 위치한 영원성을 공격하는데, 이곳에는 ‘원숭한’이라는 장수가 누르하치를 기다리고 있었다. 수차례 영원성을 공격하는 청나라. 그러나 공격할 때마다 늘 실패한다. 가장 큰 이유는 무기의 질이었다.

청태조 누르하치의 무덤 위에 나무 한 그루가 서 있다. 나무는 환생을 의미하는 뜻으로 전해진다. ⓒ천지일보 2018.11.11
청태조 누르하치의 무덤 위에 나무 한 그루가 서 있다. 나무는 환생을 의미하는 뜻으로 전해진다. ⓒ천지일보 2018.11.11

누르하치는 칼과 창, 화살을 준비했다면 원숭한은 홍이포(신식대포)를 사용한다. 누르하치는 원숭한이 쓴 홍이포에 부상을 입는다. 그리고 끝내 사망한다. 명나라와의 전쟁에 당당히 맞서고 여진족을 통일한 누르하치. 그는 비록 전투 중 병사했지만 그가 닦은 초석은 아들 홍타이지가 이어나갔다.

변방의 시골마을에서 시작된 누르하치의 꿈. 이는 그 아들인 홍타이지를 통해 하나씩 완성되어져 갔다.

청태조 누르하치 무덤인 동릉  ⓒ천지일보 2018.11.11
청태조 누르하치 무덤인 동릉 ⓒ천지일보 2018.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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