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호익 동북아공동체ICT포럼회장/한국디지털융합진흥원장

세계경제포럼(WEF) 창립자인 클라우스 슈밥은 4차 산업혁명을 이끄는 기술로 무인운송 수단, 3D프린팅, 로봇공학, 신소재 등 물리학(physical) 기술, 사물인터넷, 블록체인, RFID(전자테그), 공유경제 기술 등 디지털(digital) 기술, 유전자 공학으로 대표되는 생물학(biological) 기술을 들고 있다. 그리고 모든 기술개발과 신기술에는 디지털 기술과 정보통신 기술을 광범위하게 활용하는 공통된 특성이 존재한다고 한다. 따라서 그동안 우리 국민은 정보통신 강국의 우리나라가 4차 산업혁명의 시대에는 큰 이점이 있을 것으로 믿어왔다.

그러나 한국경제연구원이 4차 산업혁명의 핵심을 이루는 12개 기술 분야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현재 우리나라 기술경쟁력이 미국 일본은 물론 중국에도 뒤진다는 데 큰 충격을 주고 있다. 12개 기술은 4차 산업혁명을 대표할 바이오, 사물인터넷(IoT), 우주기술, 3D프린팅, 드론, 블록체인, 신재생에너지, 첨단소재, 로봇, 인공지능(AI), 증강현실(AR), 컴퓨팅 기술(빅데이터 등)이다. 그동안 많은 전문가들이 한국 경제는 한·중·일 경쟁 구도에서 기술력에서 앞선 일본과 값싼 노동력을 앞세운 중국 사이에 심한 압박을 받고 있는 넛크래커에 낀 상황이라고 말해왔다. 하지만 현실은 그보다 훨씬 더 심각하다. 중국은 이미 기술면에서도 한국을 제쳤다고 진단한 것이다.

우리나라가 기술수준이 100이라면 미국 130, 일본 117, 중국 108로 중국의 기술도 쫓아가야 하는 신세가 된 것이다. 더 큰 문제는 미래다. 보고서에 따르면 업계 전문가들은 5년 뒤에도 미국(123점)이 여전히 선두를 지킨 가운데, 중국(113점)이 일본(113점)을 따라잡으면서 한국과의 격차는 13% 이상 벌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구체적으로 중국과 비교하면 한국은 현재 바이오·IoT·로봇·AR·신재생에너지 같은 5개 분야에서는 우위에 있으나 블록체인과 인공지능(AI), 우주 기술, 3차원(3D) 프린팅, 드론 기술에서는 이미 중국이 한국을 30~40% 앞선 것으로 평가했다. 5년 후 중국은 첨단소재와 컴퓨팅 기술에서도 한국을 추월하고 바이오와 사물인터넷, 신재생에너지, 로봇, 증강현실 분야에서는 한국과 같은 수준에서 경합할 것으로 내다봤다. 중국 업체들의 약진이 이대로 계속된다면 IT코리아의 원동력인 스마트폰이나 반도체도 중국 업체에 밀려 결국 도태되고 말 것이라고 우려한다. 기술 선진국의 빠른 추격자(fast follower)였던 한국은 혁신적인 기술의 선도자(first mover)로 치고 나가기는커녕 중국에도 한참 뒤질 거라는 암울한 전망이다.

중국은 ‘제조 2025’ 국가 전략을 통해 가공할 만한 속도로 기술경쟁력을 키워가고 있다. 인터넷 이용자 8억명이 만들어 내는 방대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더욱 혁신적인 AI 기술과 서비스를 내놓고 있다. 구글 회장을 지낸 에릭 슈밋은 2025년이면 중국이 4차 산업혁명의 핵심인 AI 분야에서도 미국을 제칠 것으로 내다봤다. 중국이 양자 컴퓨팅과 반도체, 5세대(5G) 통신, 합성바이오 등에서 미국의 패권에 도전하고 있다.

한국경제연구원 조사 업계는 4차 산업혁명 관련 회사가 느끼는 가장 큰 애로사항으로 ‘투자 불확실성과 전문인력 부족, 새 비즈니스 모델 창출’을 꼽았다. 발전과제로는 “산업 간 융합·협업 활성화, 전문인력 양성을 들었다. 4차 산업혁명 기술의 발전과 미래 성장동력 창출을 위한 규제 개혁도 절실하다”고 밝혔다. 한국 기업들은 개인 정보 보호 등 산적한 규제에 막혀 미래 산업에 제대로 된 도전조차 못하고 있다고 한다.

우리는 도약적인 기술 발전을 꾀하는 중국보다 빠르게 움직여야 한다. 시간이 없다. 우물쭈물하다가는 승자 독식 구도가 더욱 뚜렷해질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생존마저 위협받을 수 있다. 파격적인 규제 완화 조치를 단행하고 기업이 마음껏 도전할 여건을 마련해야 한다. 정부는 단기성과에 얽매이지 않고 다양한 기술 개발·시도하는 기업을 전폭 지원해야 한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신사업에 자유롭게 도전할 수 있는 혁신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대통령 직속 4차산업혁명위원회에 따르면 미국은 AI 연구개발(R&D) 예산만 연간 11억 달러(약 1조 1857억원)가 넘는다. 반면 한국이 지난해 AI R&D에 쓴 돈은 2344억원으로 5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물론 양국 간 경제 규모가 다르다는 점은 고려해야 하지만 4차 산업혁명 관련 예산도 대폭 확대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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