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은 경비원의 실루엣. (사진출처: 온라인 커뮤니티)
사진은 경비원의 실루엣. (사진출처: 온라인 커뮤니티)

보호 사각지대 놓인 건물 경비근무자

‘경비원 폭언·폭행’ 매년 꾸준히 증가
 

경비원 낮게 보는 왜곡된 시민의식 문제

“인식 개선 시급… 공동체 일원으로 봐야”

[천지일보=임혜지 기자] #.1 서울 홍제동의 한 아파트 경비원 김모(72, 남)씨는 지난달 29일 한 만취 남성에게 다짜고짜 폭행을 당해 결국 병원으로 옮겨진 지 이틀 만에 ‘뇌사’ 판정을 받았다. 김씨는 폭행을 당하는 내내 “살려달라”고 호소했지만 남성의 폭행은 계속해서 이어졌다. 결국 김씨는 112에 신고하던 도중 정신을 잃었다. 가해자는 바로 아파트 입주민 최모(47)씨였다. 최씨는 “층간 소음 민원을 해결해주지 않아 때렸다”고 경찰에 진술했다.

#.2 지난 9월 경기도 수원시 장안구의 한 상가 건물에서 근무하던 한모(70, 남)씨는 술에 취해 건물 안에서 난동을 부리던 10대들에게 “나가달라”고 했다가 무자비한 폭행을 당했다. 한씨에 따르면 한씨가 윤모군과 신모(18)군에게 나가달라고 하자 이들은 대걸레질을 하고 있던 한씨에게 욕을 하며 다가왔다. 그때부터 발로 차는 등의 폭행이 시작됐다. 사건 이후 한씨는 “어금니가 없어서 앞니로 먹고 사는데 잇몸이 아파서 미음만 먹고 있다”고 하소연하기도 했다.

이처럼 아파트와 상가 건물을 지키는 경비원이 구타당하는 사건이 올해 들어 잇따라 발생하고 있다. 건물과 입주자의 안전을 지키는 경비원이 도리어 자신의 안전엔 ‘무방비’라는 지적이 나오면서 제도적 개선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경비원 폭언·폭행’은 매년 꾸준히 증가하고 있는 추세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자유한국당 박완수 의원이 주택관리공단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3년부터 2017년까지 임대아파트 관리사무소 직원과 경비 근무자들이 일부 민원인으로부터 폭행이나 폭언을 당한 사례는 3702건에 달했다.

[천지일보=임혜지 기자] 지난 10월 29일 한 만취 주민이 70대 경비원을 폭행해 뇌사 상태에 빠뜨린 서울 서대문구 아파트 경비실의 모습. ⓒ천지일보 2018.11.5
[천지일보=임혜지 기자] 지난 10월 29일 한 만취 주민이 70대 경비원을 폭행해 뇌사 상태에 빠뜨린 서울 서대문구 아파트 경비실의 모습. ⓒ천지일보 2018.11.5

이중 폭언이 1464건으로 가장 많았고 주취 폭언 1330건, 주취 행패 688건, 행패 184건 등의 순이었다. 주취 폭행은 81건, 흉기 협박은 32건, 자해는 20건이었다. 2013년도에 194건이었던 폭언·폭행 건수는 2016년 1209건으로 6배 넘게 급증한 모습이었다.

특히 전체 경비원 중 상당수 경비원은 60대 이상의 고 연령층이기 때문에 안전문제에 더 취약하다. 고령사회고용진흥원에 따르면 2014년 기준 전체 경비원 중 60대 이상은 47.9%였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일각에선 상가 경비원과 아파트 경비원도 경찰과 같이 무전기나 삼단봉 등 호신 장비를 갖춰야 하는 게 아니냐는 목소리도 나온다.

‘경비원도 호신 장비를 착용할 수 있다’는 법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경비업법을 보면 경비원이 근무 중 경적, 단봉, 분사기 등을 휴대할 수 있다고 명시돼 있다. 그러나 이는 시설경비에 한정돼 있기 때문에 아파트 경비원에겐 적용될 수 없다. 또 시설경비라 하더라도 업체에서 비용 부담 등을 이유로 장비를 제공하지 않는 경우가 대다수다.

현장 경비원들은 “주민들 시선이 좋지 않기 때문에 호신장비는 그림의 떡”이라고 입을 모은다. 경비원이란 직업의 특성상 고용이 불안정한 경우가 많기 때문에 문제를 일으켰다간 해고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경비원들이 주민 폭행에 대해 적극적으로 대응하기도 어려운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천지일보=임혜지 기자] 지난 10월 29일 한 만취 주민이 70대 경비원을 폭행해 뇌사 상태에 빠뜨린 서울 서대문구 아파트 경비실에 ‘직원 외 출입금지’ 스티커가 붙어있다. ⓒ천지일보 2018.11.5
[천지일보=임혜지 기자] 지난 10월 29일 한 만취 주민이 70대 경비원을 폭행해 뇌사 상태에 빠뜨린 서울 서대문구 아파트 경비실에 ‘직원 외 출입금지’ 스티커가 붙어있다. ⓒ천지일보 2018.11.5

서울 용산구 한 5층짜리 아파트에서 8년째 근무하고 있는 김춘식(70, 남)씨는 “다 먹고 살려고 하는 일인데 맞아도 참고 피해야지 어쩔 수 있겠냐”며 “타이르고 달래서 돌려보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또 다른 건물 경비원 강금철(67, 남)씨는 “경비원 중 대다수는 힘없는 60대~70대”라며 “경비실은 언제나 열려있기 때문에 범죄가 쉽게 발생할 수 있다. 경비원 스스로를 지킬 최소한의 보호장구는 필요하다”고 말했다.

전문가는 경비원 안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인식의 변화부터 이뤄져야 한다고 목소리를 냈다.

이웅혁 건국대 경찰학과 교수는 “경비원을 자신보다 낮은 지위에 있다고 생각하는 왜곡된 시민의식이 문제”라며 “아파트 경비원을 머슴이나 하인처럼 생각해선 안 된다. 우리의 안전을 지켜주는 생활공동체의 일원으로 생각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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