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라곤 논설실장/시인

 

지난 2일 인천SK행복드림구장에서 열린 ‘2018 KBO 포스트시즌’ 넥센 히어로즈와 SK 와이번스의 플레이오프 5차전은 보기 드문 명승부였다. TV 전국시청률에서도 8.9%(수도권 9.7%)를 점유해 당일 시청률 순위에서도 8위를 차지할 만큼 팬들의 관심이 높았다. 승패가 나지 않아 연장전까지 이어진 장장 5시간 동안 경기 현장 또는 TV 앞에서 각본 없는 드라마를 지켜본 시청자들은 KBO역사에 길이 남을 만한 명승부였다고 이구동성으로 입을 모았다. 두 팀은 10회말 마지막까지 선수들과 관중들이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승부를 연출해냈던 것이다. 

올해 프로야구가 순조롭게 진행되면서 2016년에 이어 3년 연속 800만 관중시대를 열었다. 하지만 아시안게임 출전 선수 선발과 관련해 오지환 선수와 박해민 선수가 국가대표 선수로 발탁되는 과정에서 빚어진 일부 의혹(?)들은 사회여론을 달구는 등 악영향을 미쳤다. 또 준플레이오프를 거치는 동안 졸전은 포스트시즌의 흥행에 찬물을 끼얹는 요소로 작용되기도 했다. 막상 플레이오프가 벌어진 후 SK 와이번스의 2연승으로 자칫하면 플레이오프가 싱겁게 끝나는가 했더니 넥센 히어로즈의 막판 뒷심으로 2대 2가 되면서 5차전까지 이어졌고, 한편의 드라마보다 더 흥미진진한 플레이를 팬들에게 선사했음은 좋은 일이었다. 드라마를 써서 경기를 이렇게 만들라고 해도 만들지 못할 만큼 의외성과 반응성이 큰 멋진 경기였다.  

선(先)공격팀인 넥센이 6회초에 3점을 먼저 내자 6회말에 SK가 3-6으로 뒤집었고, 9회초 2사후 점수가 4-9로 밀려 이대로 끝나는가 싶었다. 그러던 넥센이 9회초에 김하성 선수와 송성문 선수의 연속 2루타로 3점을 따라붙어 7-9가 된 상태에서 4번타자 박병호 선수의 타순까지 이어졌다. 정규시즌 내내 잘 했던 박병호 선수는 포스트시즌에서 진가를 발휘하지 못하게 되자 5차전 시합을 앞두고 장정석 감독에게 “어느 타순이든 감독님이 결정해 달라”는 말을 하자 장 감독은 “넥센의 4번타자”라며 종전의 배팅오더대로 박 선수를 4번에 배치했던 것이다. 

이후 서건창 선수가 2루실책으로 진루했고 박병호 선수가 나오자 이날 경기를 중계하던 SBS해설위원들마저 들뜬 분위기였다. 이승엽 위원은 ‘끝날 때까지 끝난 것이 아니다’는 야구의 명대사를 소개하면서 박 선수의 홈런 한방이면 동점임을 예고한바, 아니나 다를까 넥선의 4번타자는 팬들과 장 감독의 기대에 부응했다. 바뀐 투수가 던진 볼카운트 2-2상황에서 6구를 걷어올려 비거리 120m의 큼지막한 투런 홈런을 만들어냈던 것인데, 넥센 팬에게는 정말 기쁨을 선사한, 소름 돋게 했던 순간이었다. 이 한방으로 SK 홈팬들에게 찬물을 끼얹고 말았다.

정규이닝동안 9대 9 동점을 이룬 두 팀은 연장전에 들어가 먼저 웃은 팀은 넥센이었다. 임병욱 선수와 김민성 선수의 연속 2루타로 1점을 낸 후 무사 2루가 되자 넥센 측에서는 희생번트를 지시해 성공했고, 1사 3루의 황금 같은 찬스에서 나온 두 선수가 삼진을 당했다. 넥센이 유리한 고지에 오를 기회를 잃었고 SK의 10회말 공격에서 이변이 생겼다. 첫 타자는 힐만 감독의 부름을 자주 받지 못해 정규시즌에서 1군과 2군을 오갔던 베테랑 김강민 선수였다.

선두타자 김강민 선수는 투 스트라이크 상태에서 4구를 받아쳐 동점 홈런을 만들어내 인천SK행복드림구장을 감격과 흥분의 도가니로 만들었고, 이어 타석에 나선 한동민 선수는 신재영 투수가 던진 9구를 통타해 중견수 뒤 큼지막한 홈런을 만들어냈다. 순간 야구장을 메운 SK팬들은 난리가 났다. 장장 5시간 가까이 TV를 지켜보던 필자도 소름이 돋을 만큼 전율을 느꼈는데 현장에 있던 관중들은 어땠을까. 1점을 지고 있던 경기에서 홈런으로 동점이 되고, 또 홈런으로 역전을 만드는 연속타자 홈런을 누가 생각이나 했을까. 상상조차 힘든 경기였다. 

이렇게 플레이오프는 끝이 났고 천신만고 끝에 SK 와이번스가 한국시리즈에 진출해 11월 4일부터 진행되는 2018 KBO 마지막 시리즈를 맞이하고 있는 중이다. 아직 7전 4선승제의 한국시리즈가 끝나지 않았지만 지난 2일 SK과 넥센이 맞붙었던 플레이오프 5차전은 올해 정규시즌과 포스트시즌을 통틀어서 가장 멋진 경기로 남게 됐다. 두 팀의 공격과 수비과정에서 경기 흐름의 결과를 바꿀 수 있는 몇몇 실수가 나온 것은 차치하더라도 SK는 흔들릴 수 있는 분위기에서도 끝까지 승리를 지켜냈고, 넥센도 보기드믄 집념의 추격으로 아름다운 패배를 했으니 박수받기에 충분한 내용이었고, 올해를 명예롭게 마무리할 수 있는 경기였던 것이다.

한국프로야구가 선보인 지 벌써 37년째다. 한해 관중 800만명이 넘은 스포츠는 프로야구뿐으로 그만큼 국민의 관심과 사랑을 받고 있다는 증거다. 프로야구가 KBO나 선수단 또는 선수들의 전유물이 될 수 없고 그들만의 리그는 아니다. 어쩌면 이번 주에 한국시리즈가 끝날지도 알 수 없지만 중요한 건 한국프로야구가 발전되고 팬들의 사랑을 더 받기 위해 더 노력해야 한다. 그래야만이 프로야구가 국민스포츠로 거듭 태어날 수 있을 것이라 필자는 확신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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