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형 (사)동아시아평화문제연구소 소장

 

일본 아베 총리는 10월 25일 2박 3일 일정으로 500명의 경제사절단을 이끌고 중국을 국빈방문 했다. 일본 총리가 중국을 찾은 것은 7년 만에 처음이었다. 회담 결과 일부 성과도 있었지만 당사국 간에 가장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역사 및 영토 현안 등 해묵은 갈등은 정상회담 의제로 거론되지 못했다. 이번 회담이 두 나라 간에 절실한 필요에 의해서 성사되기보다는 미국의 무역전쟁에 따른 문제점을 잠시 봉합해 보자는 의도로 출발했기 때문일 것이다. 

금년 3월부터 시작된 미국의 무역보복 공세와 7월부터 부과된 고율 관세로 중국의 3분기 경제성장률은 2009년 금융위기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고, 중국이 일본 최대 수출시장이기 때문에 일본 경제도 성장세가 둔화되고 있다. 따라서 일본 입장에선 거대한 중국 시장을 계속 개척해 확대해 나갈 필요가 있었고, 중국 입장에선 미국과의 무역전쟁에서 미국의 맹방 일본을 우군으로 끌어들여 보려는 구상이 맞아떨어지면서 이번 중·일 정상회담이 성사된 셈이다. 

일본은 중·일 평화우호조약 체결 40주년을 맞아 중국과 관계개선을 추진함은 물론 인도·러시아와의 우호관계 정립에도 공을 들이고 있다. 일본은 미·일 동맹을 최우선으로 중시하면서도 다른 주변 국가와의 관계에도 부쩍 신경을 쓰고 있다. 최근 트럼프 대통령이 아베 총리에게 “진주만을 기억하고 있다”고 말하는가 하면, 일본의 자동차, 철강 등 관세문제도 종종 언급함으로써 언제든 미·일 간 무역 마찰이 가시화될 수 있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도 일본과 역사 및 영토 문제로 논쟁을 계속해 왔지만, 장기전이 예상되는 미국과의 무역전쟁 국면에서 세계 제3위 경제대국 일본이 필요했던 것이다. 시 주석은 본인이 제창한 ‘일대일로(一帶一路: 육상·해상 실크로드)’에 일본이 참여해 주기를 기대해 왔다. 그러나 일본정부는 이 프로세스 참여가 트럼프 대통령을 자극할 수도 있다고 보고 ‘일대일로’라는 용어 대신 ‘제3국 시장협력’으로 바꿔 부르며 참여를 추진하고 있다. 이 일대일로 전략은 중국에서 유럽까지 육로는 철도로, 바다는 동남아-인도-아프리카를 묶어 바다와 육지의 2개의 실크로드를 네트워크화 한 것으로, 그 중요 거점 중 하나인 시안(西安)은 내륙의 항구로서 도요타·혼다·닛산 등 일본 자동차 업체들은 이미 부품과 액세서리를 이곳을 통해 유럽으로 수출하고 있다. 

중·일 정상회담에서 양국은 이노베이션·지적 재산에 대한 정부 간 채널 신설, 30조원 규모의 통화스와프 재개, 양국 해상수색·구조협정 체결 등의 성과를 거뒀다. 또한 시 주석은 “양국의 공동노력 아래 현재 중·일 관계는 정상궤도로 돌아왔다”고 선언했고, 아베 총리는 “이번 방문을 계기로 일·중 관계를 경쟁에서 협조로, 새로운 시대로 끌어올리고 싶다”고 화답했다. 그러나 중·일 양국은 1978년 평화우호조약으로 정상적인 국가관계를 형성했음에도 불구하고, 일본은 아직까지 중국 침략 과정에서 저지른 역사적 과오에 대해 진정성 있는 사과를 하지 않고 있으며, 또한 두 나라는 동중국해 영유권 문제에 대해서도 서로 물러설 수 없다는 입장이다.

이번 회담에서 몇 가지 가시적인 성과가 있긴 했어도 역사 및 영토 문제 등 본질적 갈등은 여전히 미해결로 남아 있으며, 양국 모두 초강국 미국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었던 점 등은 중·일 정상회담의 한계를 여실히 보여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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