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일보 부산=김태현 기자] 4일 오후 부산시 해운대구 영화의전당 야외무대에서 제23회 부산국제영화제(BIFF) 개막식이 열린 가운데 신성일이 레드카펫에 참석해 관객들에게 미소 짓고 있다. ⓒ천지일보 2018.10.4
[천지일보 부산=김태현 기자] 4일 오후 부산시 해운대구 영화의전당 야외무대에서 제23회 부산국제영화제(BIFF) 개막식이 열린 가운데 신성일이 레드카펫에 참석해 관객들에게 미소 짓고 있다. ⓒ천지일보 2018.10.4

[천지일보=이혜림 기자] 한국 영화계의 큰 별인 영화배우 신성일이 4일 오전 2시 25분 향년 81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했다.

1937년 대구에서 출생한 신성일은 1960~1970년대 최고 인기를 누린 배우다. 출연 영화는 524편, 감독 4편, 제작 6편, 기획 1편 등 데뷔 이후 500편이 넘는 다작을 담겼다. 이 중 주연 영화만 507편에 이른다.

데뷔작은 ‘로맨스 빠빠(1960)’이며, ‘맨발의 청춘(1964)’ ‘별들의 고향(1974)’ ‘겨울 여자(1977)’ 등 히트작을 남기며 독보적인 자리에 올랐다.

고인은 ‘로맨스 빠빠’에서 만난 당대 최고의 배우 엄앵란(82)과 1964년 결혼해 장남 석현·장녀 경아·차녀 수화씨를 뒀다. 당시 두 사람의 결혼식에는 4000여명의 인파가 몰려 지금까지도 ‘세기의 결혼’으로 불리고 있다. 명성만큼이나 수상 이력도 그 어떤 배우보다 화려했다.

1968년과 1990년 대종상영화제에서 남우주연상을 받았으며, 부일영화상 남우주연상, 백상예술대상 남자최우수연기상, 청룡영화상 인기스타상 등을 받았다.

영화 관련 단체 활동에도 적극적인 자세를 보였다. 1979년 한국영화배우협회 회장을 맡았고, 1994년 한국영화제작업협동조합 부이사장을 맡았다. 2002년 한국영화배우협회 이사장과 춘사나운규기념사업회 회장직도 지냈다.

대구과학대학 방송연예과 겸임교수, 계명대 연극예술과 특임교수를 맡아 후진 양성에 힘썼다. 자서전 ‘청춘은 맨발이다’, 인터뷰집 ‘배우 신성일, 시대를 위로하다’ 등의 저서도 남겼다.

영화계 성공을 계기로 정계에도 진출했다. 본명은 원래 강신영이었으나 고(故) 신상옥 감독이 ‘뉴스타 넘버원’이라는 뜻의 신성일(申星一)이라는 예명을 지어줬다. 이후 ‘강신성일’로 개명했다. 본명을 표기해야 하는 국회의원 선거 출마를 위해서였다. 고인은 2000년에 16대 총선에서 당선돼 의정활동을 펼쳤고 2001년에는 총재 특보를 지냈다.

고인은 지난달 초 제23회 부산국제영화제에 참석했고, 이장호 감독, 배우 손숙과 함께 환한 미소로 레드 카펫을 밟았다. 이는 고인의 생전 마지막 공식 활동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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