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일보=홍수영 기자] 3일 서울 광화문 파이낸스 센터에서 시민단체와 청소년들이 ‘여학생을 위한 학교는 없다’를 주제로 ‘스쿨미투’ 집회를 열고 있다. ⓒ천지일보 2018.11.3
[천지일보=홍수영 기자] 3일 서울 광화문 파이낸스 센터에서 시민단체와 청소년들이 ‘여학생을 위한 학교는 없다’를 주제로 ‘스쿨미투’ 집회를 열고 있다. ⓒ천지일보 2018.11.3

“우린 학교를 바꾸는 들불” 선언

도심 행진하며 5대 요구안 제시

[천지일보=홍수영 기자] “나는 여기 있습니다! 나는 살아있습니다! 우리는 끝까지 함께 할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학교를 바꿀 것입니다! 가해자는 감옥으로! 피해자는 일상으로!”

‘학생의 날’을 맞은 3일, 시민단체와 청소년들이 서울 광화문 파이낸스센터 앞에서 ‘여학생을 위한 학교는 없다’를 주제로 한 집회를 열고 이같이 외쳤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여성위원회를 포함한 청소년페미니즘모임(청페모), 행동하는예비교사모임 등 34개 시민단체가 학교 내에서 열린 ‘미투(Me too, 나도 당했다)’를 의미하는 ‘스쿨 미투’ 집회를 가졌다. 이날 집회에는 이들 단체 회원을 비롯한 시민 300여명이 참석했다.

이들은 “올해 4월 시작된 스쿨미투 고발이 반 년 넘도록 이어지고 있다. 한 명의 여학생이 용기를 내 진실을 말하자, 그간 침묵을 강요받던 수많은 여성들이 응답했다”며 “스쿨미투가 고발한 것은 성폭력이 상식이 돼버린 학교 현장이었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우리는 아직 거리로 나오지 못한 여학생들의 목소리를 기억한다. 이제는 여학생이 안심하고 말할 수 있는 학교를 만들어야 한다”며 “우리는 무력한 찰나의 존재가 아니라 학교를 바꾸는 들불이다. 오늘 여기서, 서로의 손을 잡고 학교를 바꾸자”고 선언했다.

이번 집회는 청소년들이 직접 피해사례를 고발하며 여성 청소년들이 학교에서 동등하게 발언권을 갖게 하자는 취지로 진행됐다.

◆‘무릎에 앉으면 수행평가 만점’ 등 성희롱 피해 천태만상

서울 광남중학교에 재학 중인 한 학생은 “학교 선생님들이 ‘내 무릎에 앉으면 수행평가 만점을 주겠다’고 하거나 ‘치마가 길어 보기가 안 좋다’ ‘예전엔 안마 해달라고 하면 서로 해준다고 했다’ 등 수시로 성희롱을 저질렀다”며 “문제가 되자 ‘예뻐서 칭찬한 것’이라며 변명한다. 더 이상 성희롱을 칭찬이라면서 넘기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충북 청주여자상업고등학교의 한 학생 역시 교사에게 들은 성희롱을 소개했다. 그 학생은 “‘여자는 남자 앞에서 자면 안 된다’ ‘여자는 60㎏ 넘으면 안 되고 살을 빼야한다’ 등의 발언을 서슴치 않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천지일보=홍수영 기자] 청소년 페미니즘 모임 등 여성단체들이 4일 오후 서울 중구 파이낸스빌딩 앞에서 ‘여학생을 위한 학교는 없다’ 스쿨미투 집회를 연 가운데 참가자들이 행진을 하고 있다. ⓒ천지일보 2018.11.3
[천지일보=홍수영 기자] 청소년 페미니즘 모임 등 여성단체들이 4일 오후 서울 중구 파이낸스빌딩 앞에서 ‘여학생을 위한 학교는 없다’ 스쿨미투 집회를 연 가운데 참가자들이 행진을 하고 있다. ⓒ천지일보 2018.11.3

학교명을 밝히지 않은 ‘ㅅ고등학교 공론화’ 계정 관계자는 계정을 오픈하고 수많은 제보를 받았다고 밝혔다. 관계자는 “남자교사들이 여학생에게 ‘허리를 잘 돌리네’ 같은 이야기를 해 문제제기를 하자 ‘뭘 그렇게 예민하게 구냐’하며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며 “우리는 성적 수치심을 느끼고 그런 선생을 잡아내기 위해 학교에 가는 것이 아니다. 교단엔 ‘교사’만 서야 한다”고 일갈했다.

변산공동체학교에서의 성추행 경험을 고백한 A씨는 “대안학교에서 3년간 가족보다 신뢰하고 존경하던 선생님에게 고민 상담 중 성추행을 당했고, 가해자는 그 사실이 알려질까 두려워 도망쳤다”며 “이외에도 몇 사람이 교장으로부터 혼외정사를 권유 받았다”고 폭로했다. 그는 “대안학교는 신고할 관련 부서도 마땅치 않다”며 대책을 촉구했다.

◆남교사뿐 아니라 남학생도 성폭력 가해

성폭력 가해자는 교사만이 아니었다. 충남 천안의 한 학교에 재학 중인 학생은 동료 남학생들에게 받은 성희롱을 공개했다. 학생은 “우연히 폭로된 남자 기숙사 이야기 속 우리는 성적 노리개에 불과했다”며 “그들은 침대 위 우리 모습을 상상해 묘사하고, 신체 순위를 매기고, 우리를 ‘가슴달린 원숭이’ 취급했다”고 분노했다.

이어 “가해자를 두둔하는 사람들은 ‘그 나이엔 다 그런다’ ‘너희 피해 받은 게 확실하나’ 등의 말을 쏟아냈다. 우리는 왜 처절한 고통 속에서 스스로의 아픔을 증명해야 하는지 의문”이라면서도 “하루 수백번 마음 찢어지는 친구들을 위해, 하루하루 버틸 친구들을 위해서라도 진실을 향해 소리쳐야 한다. 변화의 순간은 바로 여기서 시작된다”고 힘줘 말했다.

이날 집회에 참석한 변지혜(18, 경기도 용인)양은 “점심시간 한 선생님에게 ‘여학생이 무슨 밥을 그리 많이 먹냐’는 소릴 듣고, 존경하는 남교사에게 악수를 하자 옆의 한 교사가 ‘미투 조심해야 한다’고 말하는 걸 들었다”며 “더 이상 침묵하지 않고 우리를 둘러싼 벽들을 하나씩 깨 나갈 것”이라고 다짐했다.

이번 집회 주최 측은 ▲학내 구성원 정기적인 페미니즘 교육 시행 ▲2차 가해 중단 ▲학내 성폭력 전국적 실태조사 이행과 규제 처벌 강화 ▲성별이분법에 따라 학생 구분하고 차별하지 말 것 ▲사립학교법 개정, 학생인권법 제정으로 수평·민주적 학교 만들기 등을 제안했다.

이들은 발언이 끝난 후 칠판 부수기 퍼포먼스를 하고, 서울시교육청까지 행진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후 자유발언을 진행한 뒤 현수막을 거는 포퍼먼스도 벌였다.

천지일보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저작권자 © 천지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