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각장애로 고통 받는 장애인들은 웹 접근성이 낮은 방송사 홈페이지 때문에 필요한 정보를 제대로 이용하고 있지 못한 것으로 조사됐다. 시각장애인은 인터넷 사용에서 조차 깊은 어둠을 실감하고 있다. 한 시각장애인이 지인의 도움을 받아 길을 건너고 있다. ⓒ천지일보(뉴스천지)

방송국 홈페이지, 복잡한 메뉴에 비장애인도 어안 벙벙
시각장애인 전용 페이지, 빈 링크 많아 ‘무용지물’

[천지일보=백하나 기자] 시각장애인 이모(16) 군은 친구가 평소 웹 사이트를 통해 ‘방송 다시보기’를 즐겨 이용한다는 말을 듣고 MBC 홈페이지에 접속했다. 하지만 이 군은 초기화면을 맞닥뜨린 순간 황당했다. 웹 페이지 초기 화면에 너무 많은 링크가 걸려 있어 페이지 구성을 이해하는 데 한참이 걸렸던 것.

주변의 도움을 받아 가까스로 예능 프로그램 하위 메뉴까진 도달했지만 동영상 보기를 위해선 회원가입을 해야 한다는 조항 앞에 이 군은 두 손을 들고 말았다.

이 군은 “웹 페이지에 링크가 너무 많아 전체 내용을 이해하는데 시간이 많이 든다”며 “공공 서비스를 제공해야 하는 방송사가 시각장애인들을 배려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지난 9월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가 방송의 날을 맞아 KBS·MBC·SBS 등 방송 3사의 웹 접근성을 분석했다. 그 결과 방송 3사의 웹 접근성은 국제 표준에도 못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시각장애인들은 인터넷을 활용할 때 화면의 텍스트를 음성으로 변환해주는 스크린리더(화면낭독프로그램)를 이용한다. 따라서 웹 제작 지침에 따라 제작자들은 콘텐츠가 이미지나 사진, 플래시 등으로 제작됐을 때 대체 텍스트를 제공해야 한다. 하지만 방송 3사는 이러한 조항을 미비하게 지키고 있어 시각장애인들에게 큰 불편을 주고 있다.

장가 지난 8월 수집한 장애인 차별 관련 집단 진정 건에서는 심지어 시각장애인 전용 홈페이지를 이용하면서도 불편을 겪는 사례가 확인됐다.

KBS 한국어능력시험을 준비하던 시각장애인 김모(22, 남) 씨는 웹 사이트를 이용하면서 차별을 겪었다고 주장했다. KBS가 한국어능력시험 접수를 인터넷으로 받는 것도 모자라 시각장애인 전용 홈페이지에서도 정보 지원을 하고 있지 않았던 것이다. 현재 시각장애인 전용 홈페이지 KBS Able을 운영함에도 한국어능력시험정보를 별도의 페이지를 통해 제공하고 있다.

▲ KBS 시각장애인 전용 홈페이지. 장애인 단체들은 시각장애인 홈페이지에 콘텐츠가 적고, 선별적으로 정보를 올려 차별 대우를 받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자료 출처: KBS Able).

방송사를 상대로 한 장애인 차별 관련 진정에서 김 씨는 “메인 홈페이지에 있는 정보가 전용 홈페이지에는 없는 경우가 많다. 막상 들어가면 정보가 없는 게 태반”이라고 전했다.

그는 “홈페이지를 만들 때부터 시각장애인이 이용할 수 있게 하면 되는데 굳이 시각장애인 전용 홈페이지를 만들고 정보를 선별적으로 올리느냐”며 “이는 엄연한 차별”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장애인 단체는 우리나라 대부분의 웹 사이트가 시각장애인의 편의를 고려하지 않고 있지만, 특히 방송사가 공공성을 외면하고 있다며 홈페이지 개선을 촉구했다.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는 지난해 9월 정보통신 단체표준으로 채택된 ‘한국형 웹 콘텐츠 접근성 지침 2.0’을 기준으로 방송사의 웹 접근성이 기준 이하라고 밝혔다.

‘한국형 웹 콘텐츠 접근성 지침’은 웹 제작 시 가장 기본이 되는 조항으로 ‘대체 텍스트 표시’를 강조하고 있다. 대체 텍스트는 홈페이지 제작자가 제작 초기부터 이미지와 플래시 등의 속성에 설명을 넣어주는 것을 말한다.

예를 들어 홈페이지를 제작할 때 ‘회사소개’ 메뉴 버튼은 HTML에서 <img Alt=“”/>를 입력해 만든다. Alt 값을 굳이 적지 않아도 웹으로 보는데 지장은 없지만, Alt 값을 입력하면 스크린리더가 입력값을 음성으로 지원한다. 따라서 웹 제작자들은 번거롭더라도 반드시 Alt 값을 입력해야 한다.

방송사들이 이러한 서비스를 제공하지 못하고 있는 이유는 누적된 콘텐츠 양이 많아져 관리하지 못하고 있고, 네티즌의 시각을 사로잡기 위한 플래시 등 화려한 그래픽 위주의 서비스를 제공하다 보니 생긴 현상으로 장애인 단체는 분석했다.

이외에 ▲키보드만으로 홈페이지 메뉴를 읽을 수 없는 점 ▲메뉴와 메뉴 링크관계가 복잡해 위치와 구조 파악이 어려운 점 ▲메뉴 건너뛰기 기능이 제공되지 않는 점 등도 방송사가 시각장애인에게 불편을 주는 요소로 지적됐다.

이연주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 웹 접근성 평가센터 기획팀장은 “지난해 방송사에 개선을 요청했지만 많은 정보를 관리하는데 비용이 많이 든다”고 말해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는 어려운 상황을 설명했다.

시간과 비용 때문에 일각에서는 시각장애인 전용 페이지를 통해서라도 방송사들이 별도의 페이지를 운영하는 것이 좋지 않으냐고 주장한다.

이에 대해 웹 전문가들은 한국형 웹 콘텐츠 접근성 지침에 시각장애인 전용 홈페이지를 제공하라는 지침이 없고, 대체 텍스를 제공하지 못하는 경우에 한해 페이지를 설정하게 돼 있다고 일축했다.

한국정보화진흥원 관계자는 “개편을 위한 초기 비용은 들어가겠지만 국제적인 기준을 준수해 구조적인 결함을 보완하다 보면 장기적으로 사후 유지 보수·비용이 덜 소요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국정보화진흥원은 웹 접근성이 높은 사이트는 시각장애인뿐만 아니라 인터넷 속도가 느려 이미지를 다운 받지 못하는 사람, 마우스를 사용할 수 없거나 속도 조절이 필요한 지체장애인, 광과민성발작 증세가 있는 사람 등에게도 유익하다고 전했다.

이연주 팀장은 “앞으로 방송사가 기준에 따라 웹을 편성하고 홈페이지 자체를 개편해줬으면 한다”며 “방송사뿐 아니라 공공기관 등 웹을 제작하는 모든 사이트가 웹 접근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공감대가 형성됐으면 한다”는 바람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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