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봉구 도봉동에 위치한 ‘평화문화진지’ ⓒ천지일보 2018.11.3

군사시설, 문화예술공간으로 리모델링

각종 공연, 모임, 전시회 장소로 사용

개관 1주년 맞이해 다양한 행사 열려

[천지일보=김예슬 기자] 군사시설로 긴장감이 감돌던 곳에서 이제는 문화예술 창작공간으로 시민과 예술가의 발걸음이 오가는 곳. 바로 서울시 도봉구 도봉동에 위치한 ‘평화문화진지’다. 대전차방호시설의 흔적이 남아 있어 분단의 아픔과 평화의 소중함이 더 느껴지는 공간이다.

평화문화진지는 서울창포원과 다락원체육공원 사이에 있다. 서울의 최북단 전철역인 도봉산역에서 내려 서울창포원을 거쳐 들어오면 된다. 현재 전철역에서 평화문화진지로 바로 갈 수 있는 길도 공사 중이다. 서울창포원에 들어온 뒤 평화문화진지로 가는 길이 헷갈린다면 전망대를 찾으면 된다. 높이 20m의 전망대는 평화문화진지에 도착해 가장 먼저 만나는 시설이다. 그 옆에는 폐전차와 장갑차가 전시돼 있고 길이 약 250m에 이르는 평화문화진지 본관이 잔디밭과 함께 펼쳐진다.

지금은 한적하고 조용해 평화롭기까지 한 이곳은 한때 분단의 상징인 대전차방호시설이 운영됐던 자리다. 6.25 전쟁 때 북한군이 탱크를 몰고 남침해 온 길목인 이곳에 1969년 대전차 방호시설을 지었다. 유사시에는 건물 폭파로 남침의 통로를 차단하는 것이 목표였다. 군사적 목적으로 지어졌으나 민간시설로 위장하기 위해 2층에서 4층까지 아파트를 올렸다. 이것이 도봉구 첫 시민아파트이기도 하다. 약 180세대가 거주할 수 있는 규모였는데 군인아파트로 사용해 오다가 1972년 시가 시설을 인수한 후에는 일반 주민에게 분양했다고 한다. 이후 세월이 흐르면서 관리의 부재와 건물 노후화로 건물안전진단 결과 E등급 판정을 받고 2004년에 철거됐다.

하지만 군사시설인 1층은 그대로 유지해오다가 2016년 ‘서울미래유산’에 선정되고 지난 2017년 10월 지금의 평화문화진지로 재탄생했다. 흉물로 남아있던 군사시설이 평화를 염원하는 곳으로 바뀌게 된 것이다. 이는 실제 대전차방호시설 건축물을 리모델링한 것으로 콘크리트와 튀어나온 철근 등이 현대적인 건축자재와 섞여 묘한 느낌을 준다.

‘도시를 문화로 지키다’라는 의미를 가진 평화문화진지는 개관한 지 1년이 됐다. 잔디밭에 전시된 전차와 장갑차는 당시 실물은 아니지만 이곳이 어떤 곳이었는지를 생각해볼 수 있게 해준다. 동서방향으로 길게 늘어진 평화문화진지는 총 5개 동으로 나뉜다. 다목적공연장 등이 있는 시민동(1동), 다목적 전시실 등이 있는 창작동(2동), 스튜디오로 이뤄진 문화동(3동), 4동 예술동, 5동 평화동으로 구성돼 있다. 탱크가 있던 벙커는 이제 아름다운 선율이 울려 퍼지는 공간이 됐다. 각종 공연과 전시는 물론 예술가들과 시민들이 창작의 꽃을 피우는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이곳에서 이뤄지는 전시나 공연, 공방은 블로그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평화문화진지는 개관 1주년을 맞이해 4일까지 다양한 행사를 펼친다.

평화문화진지는 대전차방호시설이던 당시 분위기를 조금이나마 마주할 수 있는 흔적이 남아 있다. 병사이동통로는 지나가는 내내 마음이 숙연해지는 것을 경험할 수 있다. 좁고 낮은 것은 물론 어둡기까지 한 병사이동통로는 한사람씩 허리를 숙여야만 이동이 가능한 규모다. 이곳을 지나면 일련번호가 찍혀 있는 통로가 나온다. 벽에는 직사각형의 화기구멍이 그대로 남아 있다. 회색 콘크리트벽에 뚫린 화기구멍에서 바라보는 연녹색 잔디밭은 액자 속 그림인 듯한 착각이 든다.

전망대는 평상시에는 누구나 올라가볼 수 있기 때문에 꼭 이용해보기를 추천한다. 창포원을 비롯해 도봉산, 수락산 등 주변 자연환경이 눈앞에 펼쳐진다. 또 1동에서 5동까지 이어져 있는 옥상 산책로를 거닐어 보는 것도 전체 구조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옥상은 시민아파트가 있던 2층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옥상에서 아래를 바라보면 그대로 남아 있는 철골구조물이 한눈에 보여 1층에서 바라봤을 때의 평화문화진지와는 또 다른 느낌을 준다. 당시 사람들이 오르락내리락했던 계단도 일부 남아 하늘을 향해 뻗어 있다.

평화문화진지를 거닐다 보면 야외에 전시된 베를린장벽 3점이 눈에 들어온다. 이는 시가 평화를 염원하는 마음을 담아 독일 베를린시로부터 기증받은 것으로, 동독과 서독에서 그린 그림이 양면에 그대로 남아 있다. 어느 쪽 그림이 동독에서 그렸는지 또는 서독에서 그렸는지를 살펴보는 것도 재미가 쏠쏠하다. 이렇게 짧지만 약 30~40분 남짓 평화문화진지를 둘러보고 나면 평화가 얼마나 소중한지 몸소 느껴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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