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강 김덕수

우리 범인들은 일이 순조롭게 풀리고 있을 때 욕심을 내고 일이 좌절될 때 슬퍼하거나 화를 냅니다. 이 평범한 진리를 약 삼천 년 전에 석가세존(釋茄世尊)께서는 명확하게 설파하셨지요. 일상에서 자신이 원하거나 의도하지 않은 상황에 갑작스럽게 맞닥뜨렸을 때를 우리는 경계에 부딪혔다고 표현합니다. 쉽게 불행한 일들을 당했다고 보면 됩니다.

그러나 일이 자신이 의도한 방향으로 순조롭게 되어가는 상황도 역시 하나의 경계랍니다. 정확하게는 순경계(順境界)라고 표현합니다. 이번 지면에서는 우리 중생들의 삶 속에서 늘 접하는 순경계와 역경계에 대해서 알아보는 시간을 갖겠습니다.

순경계란 일이 자신이 의도한 방향으로 순조롭게 잘 되어 갈 때 혹은 산행 시 평지를 걷거나 내리막길을 갈 때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이와 반대로 역경계란 자신이 의도한 방향과는 전혀 반대되는 결과에 이르거나 일이 지척거리는 경우로 산행에 비유하면 오르막길이 계속되거나 돌밭길, 가시밭길을 가는 상황이라고 보면 됩니다.

부처님께서는 ‘중생들은 순경계에서는 욕심을, 역경계에서는 화를 낸다고 간단명료하게 중생들의 속성을 간파하셨습니다.

보통 불가에서는 일반적으로 경계에 부딪혔다 또는 경계에 맞닥뜨렸다고 표현합니다. 순경계든 역경계든 실지로 맞닥뜨리면 거기에 반응하는 자신을 성찰함으로써 우리는 스스로의 공부를 점검해 볼 수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일이 순조로울 때 삐끗하면 오히려 일을 더 크게 말아 먹거나 그르치기 쉽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범인들은 과욕을 부리기 때문이죠.

시절이 화평할수록 어려운 때를 대비하여 물자를 비축하고 국방력을 길러두면 외세의 침탈이나 어려운 상황에 직면하여 슬기로운 대처가 가능하니 그 평화가 지속되겠죠.

그러나 범인들은 멀리보지 못합니다. 단지 이익만을 좇아 달려가는 제동장치 없는 기관차와 같습니다. 일이 순조로울수록 평상심을 잃지 않고 성찰을 게을리하지 않는다면 자기의 분수를 알게 됩니다. 자기의 분수를 아는 자는 자신이 해야 할 바와 해서는 안 될 일을 분간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편안한 곳에 머무를 줄 압니다.

보통의 범인들은 역경계에 당하면 슬퍼하거나 화부터 냅니다. 글머리에 일상에서 자신이 원하거나 의도하지 않은 상황에 갑작스럽게 맞닥뜨렸을 때를 역경계라고 했습니다. 이 표현은 언뜻 보면 맞는 것 같으나 한 번 자세히 살펴보죠. 우리는 어떤 불행들이 예고없이 갑작스럽게 찾아왔다고들 합니다. 과연 그럴까요. 범인들은 막상 불행이 닥치면 그 원인을 면밀히 살펴보고 따져보기 전에 재수없어서 또는 운이 없어서라고들 합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 우연히 일어나는 일들이 하나라도 있겠습니까? 그 어떤 일도 연기(緣起)와 인과(因果)를 벗어나서 파생할 수 없습니다.

일례로 위암 말기 판정을 받았다고 보죠. 그러면 왜 위암이 나에게 발병했을까 하고 의문을 갖고 그 원인을 철저히 규명해 보아야 합니다. 그 발병원인엔 자신의 체질과 식습관이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을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위암에 걸린 사람들을 보면 자신의 체질을 면밀하게 모른다는 사실입니다.

체질에 대한 명확한 분석없이 자신에게 맞지 않는 음식을 습관적으로 먹다보니 자기도 모르게 그 음식이 맛있고 몸에 잘 맞다고 착각하고 산다는 것이죠.

병 하나가 발병하는 이치도 모두 스스로에게 구비되어 있는 것입니다. 순경계나 역경계에 맞닥뜨리는 것도 스스로 짓는 바요. 스스로의 선택으로 이루어집니다. 또 범인들은 순경계는 좋은 것으로, 역경계는 나쁜 것으로 인식한다는 것이죠. 순경계에 오히려 일을 크게 그르칠 수 있고 역경계엔 면밀한 성찰을 통해서 전화위복으로 삼을 수 있습니다.

역경계엔 회피하고 도망치려고 말고 정당한 대가를 치르고 당당히 맞서면 어느 순간 스스로가 커져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경계에 당하면 무엇보다 정견을 갖고 차분히 살펴보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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