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주교 과거·현재 실태 진단
중세 시대 ‘지성의 야만시대’
종교개혁 결정적 원인 ‘면죄부’

루터, 95개조 반박문 내걸어
칼빈 ‘기독교 강요’로 변질시켜
교리 거부 시 ‘마녀사냥’ 자행

최근 문재인 대통령의 적극 중재로 교황 방북이 가시화되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종단으로 꼽히는 천주교. 그러나 중세 천주교의 부패는 극에 달했고, 그 부패의 최정점에 교황이 있었다. 그들의 부패를 95개조 반박문에 써서 내걸면서 종교개혁이 일어났고, 오늘날 개신교의 모태가 됐다. 종교개혁 501년이 된 지금 천주교는 얼마나 개혁되고 변화했을까. 천주교의 과거와 현재, 천주교의 부패에 반발해 태동한 개신교의 탄생과정과 실태를 진단한다.

[천지일보=이지솔 기자] 올해는 종교개혁(宗敎改革)이 일어난 지 501주년이 되는 해다. 종교개혁을 일으킨 기폭제는 ‘면죄부(免罪符)’였다. 면죄부는 16세기 초 교황 레오 10세가 성 베드로성당 개축비용 마련을 위해 죄를 면하는 대가로 돈을 받고 발행한 증명서다. 죽은 사람의 죄까지 사해준다며 면죄부를 판매했고, 이는 로마 가톨릭교회의 극심한 부패와 타락의 극단을 보여줬다.

로마 가톨릭교회 수사이자 사제, 비텐베르크대학교 교수였던 마틴 루터(1483~1546)는 이를 조목조목 지적하는 95개조 반박문을 비텐베르크의 성교회(슐로스교회) 문에 내걸었다. 루터로부터 시작된 종교개혁의 외침은 중세 유럽을 휩쓸었고 개신교(프로테스탄트) 탄생의 배경이 됐다.

그러나 루터의 종교개혁 정신은 존 칼빈(1509∼1564)으로 인해 ‘기독교 강요’라는 이름으로 변질됐다. 칼빈은 자신의 교리를 믿지 않던 수많은 사람을 ‘마녀’라는 죄목으로 화형에 처했다.

종교개혁을 부른 당시 중세교회와 사회

당시 중세사회는 신앙인들의 하나님에 대한경외와 열망은 높아졌지만, 답을 찾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독일관광청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1483년부터 1546년까지는 중세에서 새로운 시대로 넘어가는 과도기였다. 신앙인들은 경건을 찾고 하나님을 경외했다. 반면 중세 말엽에는 악마, 마귀, 악몽 등에 시달렸고 두려움과 걱정이 신앙인들을 지배했다. 전염병과 자연 재앙은 신앙인들에게 세상의 멸망이 다가왔다고 느끼도록 만들었다. 특히 1520년 술레이만 대제가 터키군을 이끌고 빈을 포위했을 때 신앙인들은 멸망이 왔다고 생각했다고 전해진다.

소위 ‘암흑시대’ ‘지성의 야만시대’로 불렸던 중세 시대는 성직자들의 부정부패, 비리의 정점에 있었다. 권력과 야합하고 성직매매가 공공연히 자행됐으며, 독신이어야 할 성직자 중 음란한 생활을 하는 자들이 많았다. 또 외형적 확장과 성전건축에 열을 올리는 등 교황청은 수탈의 총본산이었다고 알려진다. 사실 현재 교황이 거하는 바티칸 베드로 대성당은 중세비리의 상징과도 같은 곳이다. 당시교황은 바티칸 대성당을 역사상 가장 웅장하고 화려한 예술품으로 건축하기 위해 갖은 모양으로 재정 조달을 위한 헌금을 강요했다. 실상은 교황 자신의 영광을 위해 건축하면서 ‘신’의 이름으로 각종 탈취가 자행됐다고 전해진다.

이때 출현한 ‘면죄부’는 중세교회 부패를 극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다. 면죄부를 구매하면 과거의 죄뿐 아니라 미래에 지을 죄도 미리 용서받는다고 했다. 죽은 사람도 그의 이름으로 돈을 내면, 돈주머니로 ‘땡그랑’하고 돈이 떨어지는 순간 그 영혼이 연옥에서 천국으로 올라간다고 했다. 인쇄술이 발달되지 않아 성경도 귀하고, 글도 잘 몰랐던 신도들은 교황의 말을 그저 ‘하나님 말씀’으로 믿었다.

◆95개조 반박문에는 어떤 내용이 담겼을까

종교개혁자 이전에 가톨릭교회의 수사이자 사제였고, 또 비텐베르크 대학교 교수에 재직했던 루터는 왜 당시 로마 가톨릭에 반기를 들었을까. 그가 종교개혁을 일으킨 원인에 대해서는 그의 95개조 반박문에 자세히 나온다. 루터는 “진리에 대한 사랑과 이를 해명하려는 열정을 근거로 비텐베르크의 신부이며, 인문학부 및 신학부 교수 겸 비텐베르크 대학 정교수인 마틴 루터는 다음과 같은 명제에 논쟁하고자 한다”며 95개조 반박문을 통해 토론을 제안했다.

그는 말로 논할 수 없는 사람은 글로 토론을 해도 된다고 강조했다. 그 일부를 살펴보면 ▲예수가 외친 ‘회개하라’의미는 신자들의 전 생애를 참회하는 것이 돼야함 ▲‘회개’가 성례전적 참회 곧 사제의 직권으로 수행하는 고백과 속죄(고해성사)는 아님 ▲내적인 회개를 해도 육신의 정욕 등 억제가 되지 않으면 무의미함 ▲내적 참회의 형벌은 하늘나라에 들어갈 때까지 계속됨 ▲교황은 직권 혹은 교회법의 위세로 부과된 형벌 이외의 어떤 벌이든 용서할 힘이나 뜻을 갖지 못함 ▲교황이 어떤 죄든지 사할 힘은 없음 ▲사제의 권력에 복종하면서도 다른 모든 일에서는 겸손할 줄 모르는 자는 죄 있음 등이다. 이는 당대 로마 교황의 권력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것이었다.

루터의 종교개혁 캐치프레이즈는 ‘솔라 피데(오직 믿음으로)’ ‘솔라 그라티아(오직 하나님의 은총)’ ‘솔라 스크립투라(오직 성경)’로 요약된다. 그는 부패한 로마 가톨릭에 본질과 근원, 성경으로 돌아가자고 외쳤다. 로마 교황청은 루터를 회유했지만, 그는 오히려 대학에서 로마 교황청의 부패상을 가르쳐 교황청으로부터 파면 당했다. 사형에 처하겠다는 칙령까지 받았다. 그러나 루터는 학생들이 보는 자리에서 교황의 훈령과 칙령을 불태워버렸다. 루터로부터 시작된 종교개혁의 외침은 중세 유럽을 휩쓸었고 개신교탄생의 배경이 됐다.

◆가톨릭 개혁 외쳤던 개신교의 부패

로마 가톨릭교회의 부패 개혁을 외친 루터 지지자들은 독일과 북유럽, 미국 등 전 세계로 퍼졌다. 루터파 교회는 10여년에 걸친 투쟁 끝에 1555년 아우크스부르크 제국의회에서 정식 종교로 인정받아 프로테스탄트교회, 즉 지금의 개신교가 됐다. 로마 가톨릭의 부패를 청산하기 위해 종교개혁을 주창하며 출현한 개신교는 로마 가톨릭을 사실상 이단시하고 있다.

많은 개신교 신학자들은 로마 가톨릭은 루터의 종교개혁과 함께 이미 끝난 종교로 보고 있다. 새에덴교회 소강석 목사는 2014년에 방한한 프란치스코 교황에 대해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할 사실은, 인간적으로 볼 때 그렇게 겸손하고 청빈하며 귀감 되는 삶을 사는 교황일지라도 그 역시 가톨릭의 제도와 비성경적 교리 위에서 있는 사람”이라며 “‘무신론자도 선행만 하면 천국에서 함께 만날 수 있다’고 설교한 적이 있는 그의 구원관은 의심받을 수밖에 없다”고 비판한 바 있다.

중세 가톨릭교회를 비판하고 출현한 개신교지만, 오늘날의 모습은 중세 가톨릭교회를 닮았다. 목회자 비리는 물론 외형적 성장과 교회건축에만 열을 올리고 헌금을 강요하며, 입으로는 부패를 한탄하면서도 권력을 붙잡기 위한 모습까지 그대로라는 혹평을 받는다.

◆‘마녀사냥’을 일삼은 장본인 칼빈

마틴 루터보다 20년 늦게 프랑스 노용에서 서기관의 아들로 태어난 신학자 존 칼빈은 프랑스출신이지만, 우여곡절 끝에 스위스 제네바에서 종교국이라는 특별기구의 수장으로 재임했다. 그는 스위스 개혁에 참여하면서 자신의 정치개혁에 종교를 철저히 이용했다. 칼빈은 절대예정론을 주장했다. 그는 “영생이 예정된 자가 다시 영멸로 예정되거나 영멸로 예정된 자가 다시 영생으로 예정되는 변동은 없다”고 주장한다. 한마디로 구원받을 사람도 벌 받을 자도 이미 정해져 있어서, 선택된 자가 어떠한 죄를 짓더라도 용서가 된다는 주장이다.

그는 ‘주석의 왕자’라는 별칭도 가지고 있다. 수많은 주석을 쓴 그는 신약의 예언서인 요한계시록만은 해석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계시록을 정경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1536년 27세의 나이에 ‘기독교강요’를 저술한 칼빈은 장로교회 통치제도를 발전시켰다. 또한 중세 가톨릭교회의 이단 척결 행태와 오버랩 되는 제도를 만들기도 했다. 그는 자신이 정한 교리에 동조하지 않으면 ‘이단’으로 몰고 처형했다. 이런 ‘마녀사냥’으로 4년 동안 무려 58명을 사형하고, 76명이나 추방했다. 당시 스위스 제네바시 인구가 1만 6000명 미만이었음을 고려하면 엄청난 숫자다. 마녀로 결론나면 표적이 된 사람의 재산은 재판관이나 법원관리들의 몫이 됐다.

유럽의 마녀사냥은 포식자들이 경제적 이득을 얻을 수 없을 때야 끝을 맺었다. 이후 칼빈의 제자 존 녹스(1513∼1572)가 스코틀랜드로 건너와 칼빈의 종교개혁 사상을 전파하면서 장로교파로 자리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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