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수 한체대 스포츠 언론정보연구소장 

 

‘21세기 미국 메이저리그 최강팀, 108승으로 구단 역사상 단일시즌 최다승.’

지난달 29일 2018 메이저리그 월드시리즈에서 LA 다저스를 물리치고 시리즈 전적 4승1패로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린 보스턴 레드삭스는 올해 사상 최고의 전과를 올리며 찬사가 쏟아졌다. 2004년, 2007년, 2013년에 이어 2018년에도 정상을 차지해 2000년대 들어 4번째 월드시리즈 우승을 거머쥔 레드삭스는 3회 우승의 샌프란스시코 자이언츠를 제치고 21세기 최다 우승팀으로 올라섰다. 또 정규시즌에서 108승을 올리며 올해 메이저리그 전체 다승 1위를 기록, 구단 역사상 단일 시즌 최다승을 세우기도 했다. 보스턴은 아메리칸리그 디비전시리즈, 챔피언십시리즈, 월드시리즈에서 11승을 보태 2018년에 총 119승을 거뒀다. MLB닷컴은 “보스턴이 올해 거둔 119승은 1998년 양키스(125승), 2001년 시애틀 매리너스(120승)에 이은 역대 최다승 3위”라고 보도했다.이처럼 화려한 승리의 금자탑을 세웠음에도 불구하고 보스턴 팬들에게 기쁨의 기억은 찰나에 지나지 않았던가 보다. 뉴욕타임스 야구전문기자 데이비드 월드스타인은 보스턴의 우승이 확정되던 날, 스포츠면에 ‘타이틀을 차지한 레드삭스 팬들이 양키스 팬들을 조롱하는 것을 선택했다’라는 제목의 기사를 실었다. 다소 뜬금없는 기사가 나온 것은 LA 다저스 스타디움에서 광적인 보스턴 팬들이 겉보기에 어울리지 않는 구호를 했기 때문이었다. “양키스 엿먹어라(Yankees suck)”라는 구호였다. 보스턴 레드삭스 팬들이 뉴욕 양키스를 상대로 만든 이 구호는 미국 최대 스포츠라이벌인 두 야구단 팬들의 극심한 경쟁의식을 보여주는 한 단면이라고 할 수 있다. 이 구호는 1999년부터 한 무리의 보스턴 응원단의 부츠와 티셔츠에 등장하면서 인기를 끌었다. 미국 스포츠 역사에서 가장 인기 있는 이 응원 구호는 1920~30년대 미국의 대표적인 야구기자이자 스포츠작가로 활약했던 그랜트랜드 기사에서 영감을 얻었다. 

올해 월드시리즈에서 LA 다저스를 꺾고 보스턴이 우승을 차지했지만 이 구호를 외친 보스턴 팬들의 진짜 속마음은 항상 양키스에 대한 것으로 가득 차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월드시리즈라는 최고의 승부를 보면서도 한편으론 양키스에 대한 경쟁의식을 잊지 않고 경쟁상대가 아닌 양키스를 폄하함으로써 대리만족을 느꼈던 것이다. 이는 보스턴 팬들이 1백년 이상 된 ‘밤비노의 저주’를 아직까지도 떨쳐 버리고 못하기 때문이다. 1903년, 1912년, 1915년, 1916년, 1918년 월드시리즈 우승을 차지한 보스턴은 이후 85년 동안 정상에 오르지 못했다. 메이저리그 팬들은 1920년 베이브 루스를 뉴욕 양키스에 헐값에 내준 기억을 떠올리며 ‘보스턴이 밤비노의 저주에 걸렸다’고 말했다. 2004년 86년 만에 월드시리즈 우승을 차지해 ‘밤비노의 저주’에서 헤어 나왔지만 보스턴 팬들에게는 양키스는 ‘눈엣가시’ 같은 존재이다.

지난 2008년에는 앙숙인 두 팀 팬들 사이에 이 구호 때문에 살인사건이 벌어지기도 했다. 술집 앞에서 ‘양키스 엿먹어라’라는 구호를 외친 보스턴 팬을 향해 여성인 한 뉴욕 양키스팬이 차량으로 돌진해 사망사고가 발생했던 것이다. 구호 때문에 살인까지 불러왔던 참사였다.

사실 이 구호는 대표적인 피해자 ‘코스프레’로 볼 수 있다. 뉴욕 양키스는 별로 라이벌 의식을 하지 않는데 반해 보스턴 레드삭스는 ‘밤비노의 저주’에 따른 피해의식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에 나온 것이다. 미국 최대 도시이자 세계적인 도시인 뉴욕에 반해 보스턴은 미국의 독립운동을 촉발한 역사도시로서의 명맥을 이어가고 있는 조그만 도시이다. 도시와 구단 규모에서 많은 차이가 나는 뉴욕 양키스를 상대로 한 보스턴 레드삭스의 경쟁의식은 프로스포츠 시장에서는 충분히 이해할 만하다.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처럼 두 팀의 라이벌 이야기는 많은 화제를 뿌리며 관심을 촉발함으로써 삶의 행복과 지혜를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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