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창우 안전사회시민연대 대표 

 

지난달 30일 대법원이 강제징용에 대해 배상 판결을 했다. 늦었지만 다행이다. 강제징용으로 한스런 삶을 산 사람들이 거의 모두 떠난 시점에야 배상판결이 나온 탓에 슬픔이 크다. 일제로부터 독립한 지 73년이 지나서야 ‘배상’ 판결이 나온 이유는 무엇일까. 

대법원 판결이 나오자마자 일본 외무성은 “1965년 국교정상화 이래 쌓아온 한일 우호협력관계의 법적기반을 근본부터 뒤흔드는 것”이라면서 “대단히 유감이고 결코 받아들일 수 없다”고 했다. 실로 유감스러운 것은 일본 정부의 후안무치한 태도이다. 도무지 부끄러운 줄을 모른다.  

한국 국민들과 8000만 겨레는 한국 법원이 강제징용에 대한 재판을 하지 않으면 안 됐던 이유가 무엇인지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일본 스스로 식민 지배를 반성하고 알아서 배상을 하는 게 도리이다. 일본 기업 역시 제국주의 일본을 위해 역할을 한 전범행위에 대해 반성부터 해야 한다. 조선청년들을 강제 동원해 임금조차 지급하지 않고 배 곯리고 최악의 노동환경에서 목숨 잃게 만들었으면 스스로 참회하고 배상해야 마땅한 일이다. 

미국이 배후에서 조종하는 가운데 일본은 분위기에 떠밀려 한일협정을 맺었다. 침략행위와 식민지배에 대해 반성하고 참회하는 대신에 독립축하금 또는 경제협력금이라는 명목으로 무상 3억 달러, 유상 2억 달러, 상업차관 3억 달러 규모의 돈을 한국 정부에 건넸다. 이웃 나라 식민지배에 대한 반성과 성찰을 담지 않은 한일협정이 일본 정부의 성찰 기회를 또 한 번 빼앗아갔다.  

일본이 식민지 가해국가이면서도 책임지지 않고 넘어갈 수 있었던 것은 냉전시대가 도래했기 때문이다. 한국전쟁이 터지는 바람에 일본은 엄청난 돈을 벌게 됐고 미국이 방어해 준 덕에 국방비가 거의 들지 않았다. 일본이 경제대국으로 발돋움할 수 있었던 배경이다. 독일과 같은 추축국이었음에도 독일과는 달리 통일국가를 유지하고 엉뚱하게도 식민지 피해국인 한국이 분단되는 어이없는 역사가 펼쳐졌다. 세계 최강대국으로서 지위를 굳히기 위한 미국이 잘못 대응해서 생긴 일이다.  

이 같은 역사적 배경 속에 일본은 과거 침략전쟁에 대한 반성 한번 제대로 하지 않았고 경제대국이라는 칭송까지 받아가면서 국제 사회에서 대우를 받아왔다. 경제적 힘을 무기로 자신들이 침략했던 동남아 국가들에게 큰 영향력을 행사해 오고 있다. 동남이 국가들은 일본에 대해 별다른 항의를 하지 않고 있다. 중국과 북한, 남한이 일제 식민지배에 대해 항의하고 있지만 일본은 개의치 않고 무시하기 일쑤다. 일본 정부는 그때그때 임기응변으로 대응하면서 어물쩍 넘어갔다.

일본 정부는 지금까지 한 번도 반성다운 반성을 하지 않고 반성의 말을 할 때도 애매모호하게 처리하고 넘어가기를 거듭한 탓에 무엇을 잘못했는지 알지도 못하고 어떤 반성의 말과 행동을 해야 할지 알지 못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한국 대법원의 배상 판결에 일본 정부가 분노를 드러내는 게 이해가 된다. 

일본 정부가 끝도 한도 없는 오만함을 보이는 데는 이유가 있다. 해방 73년 만에야 일본 기업에 대한 개인청구권 인정 판결이 난 이유는 “일본 정부의 심기를 건드리면 어떡하나” “과거에 집착하다 한일관계를 악화시키거나 한일관계의 미래를 해치면 어떡하나” “한미일 대북 공조가 깨지면 어떡하나” 하는 생각부터 하는 정부와 국회 그리고 사법부의 잘못된 태도 때문이다. 

이번 대법원 판결을 앞두고 여러 언론 매체에서 배상 판결이 나오게 되면 “한일관계를 파국으로 몰아넣을 것”이라거나 “‘위안부 합의’ 문제 등으로 그렇지 않아도 어려운 한일관계를 더욱 꼬이게 할 것”이라는 논조의 글들이 넘쳐났다. 한국정부가 저자세 외교를 하고 불철저한 대응을 한 점도 문제지만 한국의 언론계와 지식인 사회에서 한국의 입장이 아니라 일본의 입장을 먼저 생각하고 배려하는 듯한 태도를 보인 점도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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