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순휘 정치학박사 / 문화안보연구원 이사 

 

한국·미국·북한 사이에 판문점선언에 이어 싱가포르 공동성명 그리고 평양선언에 이르는 숨 가쁜 한반도를 둘러싼 정상회담 열차가 달려가고 있다. ‘선언정치’라고 할 수 있는 정상들의 약속이벤트가 국민과 세계인의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다. 선언이라는 것은 ‘국가나 단체가 자기의 방침과 주장을 외부에 정식으로 표명’이라는 사전적 의미로 볼 때도 그에 따른 책임과 의무가 동반되는 내용으로 취급된다. 선언이라는 것은 신사협정(紳士協定, Gentleman’s Agreement)으로 협약이 아닌 이상 그 위반은 국제위법행위를 구성하지 않으면 국가책임의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 것으로 실무적 효력이 쌍무적이라기보다 일방적으로 집행되기 때문에 제한적이다.

따라서 선언대로 업무가 추진되지 않는다면 한낱 정치적 약속에 불과하게 되는 것으로 정부는 함부로 남발해서는 안 된다. 선언은 조약도 국민적 공감을 기반으로 추진해야 하는데 작금의 선언들은 비핵화문제보다도 남북관계 치적 쌓기로 자칫 국가안보의 핵심의제를 외면한 듯한 우려의 눈길을 증폭시키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 취임 이후 세 번째로 열린 지난 9월 19일 남북정상회담의 3대 의제는 ‘비핵화 진전’과 ‘남북관계 개선’ ‘군사적 긴장 완화 및 전쟁위험 종식’이었다. 평양선언은 성과측면에서 남북관계가 실질적으로 진전되는 전기(轉機)의 가능성을 보였으나 군사적 합의문제에서 안보차원에서 매우 불균형적인 합의로 전문가의 지적이 있다.

‘남북 군사분야 합의서’ 내용 중에 ‘군사적 긴장 완화 및 전쟁위험 종식’은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신중을 기해서 해도 전혀 문제가 없는 의제였으나 “번갯불에 콩 구워 먹는다”는 속담을 무색케 할 정도로 전격적인 타결이 됐다. 작금의 현실은 북한 비핵화가 본질적 의제인데 부수적인 ‘남북 군사분야 합의서’를 채택한 것은 과연 불요불급한 것이었는가를 자문하게 된다. 특히 남북관계라는 것이 정권의 정치적 치적(治積)에 근거한 ‘선언’에 휘둘리는 것은 자칫 기울어져있는 남북군사력을 외면한 무리한 평화분위기 조성사업이 될 수 있다.

합의서를 들여다보면 군사분계선(MDL) 5㎞ 밖까지 포사격훈련 및 연대급 이상 야외기동훈련 전면중지, 최소 10㎞ 밖 비행체도 못 운행하고, 11월 1일부터 MDL일대서 육해공 군사연습 중지가 명시돼 있다. 11월 30일까지 JSA인근 지뢰제거, 공동유해발굴 명목으로 남북 간 폭 12m 도로개설도 합의했다. ‘해상적대행위 중단구역’도 80㎞로 발표했지만 확인결과 135㎞로 남측해상이 약 35㎞ 더 넓어서 인천 앞 덕적도해상으로 접근이 돼있다. 더욱이 남북군사공동위원회를 통해서 군사훈련, 무력증강, 정찰행위중지 등 그야말로 안보의 자승자박(自繩自縛)을 한 것은 아닌지 국민적 우려가 많다. 

특히 북한군의 실체적 위협에 대해 군사적 대응능력이 취약한 한국군의 입장에서는 심각한 안보위협 하에 놓이게 된 것이다. 북한군은 평양과 원산고속도로 선 아래로 북한군의 재래식부대의 70% 수준이 배치돼 있는 현 남북군사대치 상황에서 동등동수의 GP철수라는 것은 상식 밖의 합의라고 할 것이다.

특히 현대전은 기습을 막지 못하면 초기 전력발휘가 불가하고, 초전에 전력이 파괴돼 적절한 방어력 발휘도 불가하여 치명적인 패배를 당하게 되는 것이다. 더욱이 북한군은 약 4200대의 전차를 보유해 전 세계의 최강의 기계화전력을 가지고 있는 점에서 유사시 사전 적의 기습정보를 획득하지 못한다면 심각한 패인이 된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군에 대한 정찰기능을 포기한 합의서는 재고를 하거나 새로운 원거리 정찰장비를 투입해 북한군 제2제대와 기계화부대의 기습적 움직임을 적어도 24시간 전에 파악해야만 국가안보를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이 전문가 의견이다.

‘유비무환(有備無患)’과 ‘무비유환(無備有患)’이 새삼스러운 안보의 계절이다.

천지일보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저작권자 © 천지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