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일보=남승우 기자] 30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법원 대법정에서 강제징용 피해자 손해배상 청구 사건에 대한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열리고 있다. ⓒ천지일보 2018.10.30
[천지일보=남승우 기자] 대법원 전원합의체. ⓒ천지일보 2018.10.30

14년 만에 기존 판례 뒤집어

대법 “처벌은 양심의 자유 제한”

관련사건 227건 모두 무죄될 듯

[천지일보=홍수영 기자] 대법원이 종교적‧양심적 병역거부를 정당한 사유로 인정했다. 대법원이 양심적 병역거부가 정당한 사유에 해당한다고 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는 지난 2004년 대법원 전원합의체 유죄 선고 이후 14년 만에 기존 판례를 뒤집은 것이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1일 오전 11시 현역 입영을 거부해 병역법 위반 등으로 기소된 여호와의증인 신도 오모(34)씨의 상고심 판결에서 대법관 9(무죄) 대 4(유죄) 의견으로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창원지법 형사합의부로 돌려보냈다.

재판부는 “종교·양심적 병역거부는 병역법 제88조 1항 ‘정당한 사유’에 해당한다”고 판결했다. 

병역법 88조 1항은 ‘현역입영 또는 소집통지서를 받은 사람이 정당한 사유 없이 입영하지 않거나 소집에 응하지 않은 경우 3년 이하 징역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재판부는 “국가가 개인에게 양심에 반하는 의무 이행을 강제하고 형사처벌 등 제재를 가하는 것은 기본권에 대한 과도한 제한이 되거나 본질적 내용에 대한 위협이 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이어 “이 경우 형사처벌 등 제재를 감수하지 않는 이상 내면적 양심을 포기하거나 자신의 인격적 존재 가치를 파면시켜야 하는 상황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은 병역의무 불이행에 따른 어떤 제재도 감수하겠다며 이를 거부하고 있다”면서 “이들에게 집총과 군사 훈련을 수반하는 병역의무를 강제하고 형사처벌하는 것은 양심의 자유에 대한 과도한 제한이 되거나 위협이 된다고 봐야 한다”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그 과정에서 피고인의 가정환경, 학교생활, 사회 경험, 삶의 모습 등도 아울러 살펴봐야 한다”며 “이 사건에선 심리를 다하지 않은 잘못이 있다”고 설명했다.

반면 김소영·조희대·박상옥·이기택 대법관 등은 “기존 법리를 변경해야 할 명백한 규범적·현실적 변화가 없음에도 무죄를 선고하는 것은 혼란을 초래한다”고 반대의견을 냈다.

특히 김소영·이기택 대법관은 “대체복무제 도입으로 해결해야 할 국가 정책의 문제”라며 “이 사건은 헌재 결정으로 사실상 위헌성을 띠게 된 현행 병역법을 적용해 서둘러 판단할 것이 아니라 대체복무제에 대한 국회입법을 기다리는 것이 마땅하다”며 다수의견을 반박했다.

조희대·박상옥 대법관도 “(다수의견) 심사판단 기준으로 고집하면 여호와의증인 신도와 같은 특정 종교에 특혜를 주는 결과가 수 있다”며 “이는 양심 자유의 한계를 벗어나고 정교분리원칙에도 위배된다”고 비판했다.

하지만 김명수 대법원장 등 대법관 9명의 다수의견으로 최종 판단이 내려졌다.

오씨는 육군 현역병으로 입영하라는 통지서를 받고도 입영일인 2013년 9월 24일부터 3일이 지나도록 입영하지 않은 혐의로 기소됐다.

1·2심은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가 처벌 예외사유인 정당한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했다. 다만 1심에서 오씨가 증거인멸과 도주우려는 없다며 법정구속은 하지 않았다.

헌법재판소는 지난 6월 28일 양심적 병역거부자에 대한 대체복무제를 규정하지 않은 병역법 제5조 1항(병역종류조항)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이로 인해 이번 대법 선고도 전향적으로 이뤄질 수 있다는 관측도 나왔다.

이 판결로 지난달 31일 기준 대법원에서 심리 중인 종교·양심적 병역거부 사건 227건 모두 무죄가 선고될 전망이다.

다만 이미 유죄 확정판결을 받은 경우에는 구제받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대법원 판결은 아직 재판이 진행 중인 사건에만 영향을 미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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