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상현 주필

 
우리 민족의 동질성을 음식에서 찾는다면 그 동질성은 김치를 먹는 데서 찾아진다. 한국은 김치의 나라다.
한민족(韓民族)은 김치 민족이다. 김치는 우리 조상의 탁월한 지혜가 만들어낸 독창적인 세계 유일무이(唯一無二)의 발명품이다. 그래서 단군 이래 유례없는 배추 파동을 접하는 소회가 그지없이 착잡할 수밖에 없다.

지금은 가장 토속적인 것이 세계적인 것으로 보편화되는 세계화 시대다. 우리 김치의 독특한 맛과 매력이 점차 세계인의 입맛을 사로잡아가는 와중에 배추 파동이 일어났다. 그러니 김치의 나라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 같은 배추 파동이 세계적인 뉴스가 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일 것이다. 우리에게는 너무도 어이없는 일이지만-.

한국이 중국에서 긴급히 배추를 사들이기로 하자 중국 관영 언론들이 각별한 관심을 보였다. 한국의 배추 값 폭등 사태를 전하며 배추 산지 산둥성 농민들의 수출 기대감과 바쁜 일손 등에 대해 자세히 보도했다.

배추 파동에 대한 보도는 미국 영국 일본 언론들도 관심있게 보도하고 있다. 그 중에서 미국의 시사 주간지 타임(TIME)의 ‘배추 위기, 한국에 김치가 바닥났다’라는 제하(題下)의 보도는 더욱 흥미롭고 의미가 다각적이며 시사적(示唆的)이다.

타임 인터넷판은 ‘한국을 공포(Panic)에 몰아넣는 것이 김정일이 아니라면 배추 부족일 것’이라고 썼다. 그러면서 한국의 배추 위기의 해법은 ‘중국으로 방향을 트는 것(Turn To the Chinese)’이라며 이것이 ‘결과적으로 중국의 지역 내 영향력을 더욱 확대해주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어떤가. 미국의 언론이기 때문에 강대국으로 굴기(崛起)한 중국을 견제하는 미국의 시각이 반영될 수밖에 없는 보도라고 가볍게 흘려버려도 될 얘기 같은가. 결코 아닐 것이다.

급한 김에 쳐다보지도 않던 중국산 배추 수입에 얼른 의존한 것까지는 어쩔 수 없었다고 하자. 하지만 이것에 대해 아무 문제의식을 느끼지 않는다면 그것이야말로 우리에게 있어 정말 더 큰 문제다. 대외 환경은 언제 변할지 모르는 것인데 우리처럼 필수적인 기초 먹거리 생필품을 일개 국가로부터의 수입에 몽땅 안심하고 내맡기다시피 의존하는 나라는 없다.

확실히 우리의 중국으로부터의 수입 의존은 지나치다. 기우(杞憂)라면 좋겠지만 그것은 국내의 민생(民生)에 불확실성을 조성하며 향후 여러 가지 도전적인 걱정거리를 만들어낼 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안일하게 수입에 기대는 관행을 되풀이만 할 것이 아니다. 우리의 현 상황을 점검해보고 전략적인 사고와 성찰, 개선을 더 늦기 전에 해야 하지 않을까.

모자라는 농수산물의 수입은 불가피하지만 점차 줄여가고 각별한 의지로 국내 자급도(自給度)를 높이는 노력과 함께 수입이 이루어져야 옳다. 값싼 중국산으로 쉽게 국내 농수산물 수급과 가격 안정을 기할 수 있다는 안이한 편의성에 길들여지면 우리도 모르게 수입 의존이 돌이킬 수 없게 심화될 수 있다.

그 결과는 국내 영농 기반의 황폐화, 먹거리 수입의 체질화, 민생의 불확실성 증대, 국가적인 위험의 초래가 아닐까. 경제 대국이나 산업 대국, 무역 대국치고 농업 기반이 약한 나라가 거의 없으며 오히려 농업의 상대적인 취약성 때문에 더 농업을 살리려고 애를 쓰는 이유는 뭘까.

국방력이 약한 나라가 항상 불안하듯이 농업이 약한 나라도 마찬가지로 항상 불안하다. 농업의 개념이 바로 국가 안보의 개념이다. 그런데 이런 것에 대한 우리의 문제의식은 무디어지고 마비돼가고 있으니 이를 어쩌랴.

우리 식탁을 중국 농수산물이 토종을 밀어내고 점령해버린 지 오래다. 심지어 제사상과 명절 상차림에서도 그러하다. 우리 밥상에서 토종 문화가 사라지다니-.

왠지 우리의 얼을 뺏긴 것 같은 서글픔이 느껴지지 않는가. 왜 그렇게 됐는가. WTO(세계무역기구)체제의 국경 없는 무한 경쟁 때문인가. 아니라고 할 수는 없지만 일차적인 책임은 우리가 국내의 소규모 영농을 국제 경쟁력이 약하다는 이유로 너무 소홀히 한 것 아닌가 반성해봐야 한다.

쌀과 함께 우리의 ‘얼’이라 수 있는 ‘신토불이(身土不二)’ 배추가 모자라다니-. 그 이유를 날씨나 폭우 탓만을 한다면 우리 모두는 너무 무책임하고 비겁하다. 우리 땅이 좁긴 해도 적어도 우리가 먹고살 만큼의 신토불이 배추를 키우기에는 충분히 넓고 비옥하다. 영농 의욕을 북돋우고 적절한 경작 면적을 확보해 배추 파동의 재발을 막아야 한다.

그 같은 결의를 책임 있는 사람들이 밝히고 약속을 해야 떳떳하지 않은가. 타임이 보도한 대로 모자라면 ‘중국으로 방향을 틀면 되지’라고 생각하지 말고-. 또 배추 파동이 좋은 정쟁(政爭)의 소재가 된다 싶어 서로 핏대를 올리고 싸우는 것만으로는 너무 공허하고 식상하다. 미리 못 챙겨본 것이나 먼저들 반성하고 사후약방문(死後藥方文)이지만 국민이 안심할 대책을 내놓아라.

배추는 우리의 식탁에서 절대로 중국산에 밀릴 식품이 아니다. 아무리 값이 싸더라도 우리 주부들은 꺼림칙한 중국산 배추로 김장하기를 한사코 망설이고 있지 않은가. 어디 배추만 그런가. 중국에 수입이 과도하게 의존된 ‘우리 것’ 토종 필수 기초 먹거리 생필품이 다 그렇다.

토종에 대한 이 같은 애정만으로도 신토불이 토종은 경쟁력이 있는 것 아닌가. 토종을 잘 키워 점령당한 식탁을 탈환해야 한다. 김치 민족의 전통과 자존심을 되찾고 식탁의 토종 문화를 회복해야 하지 않겠는가. 영농가도 잘 살고 수요자 민생도 안정시키며 향후 걱정거리도 없애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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