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일보=남승우 기자] 서비스가 불친절하다는 이유로 서울 강서구의 한 pc방 아르바이트생을 흉기로 찔러 숨지게 한 김성수(29)가 22일 오전 정신감정을 위해 충남 공주의 국립법무병원 치료감호소로 이송되고 있다. ⓒ천지일보 2018.10.22
[천지일보=남승우 기자] 서비스가 불친절하다는 이유로 서울 강서구의 한 pc방 아르바이트생을 흉기로 찔러 숨지게 한 김성수(29)가 22일 오전 정신감정을 위해 충남 공주의 국립법무병원 치료감호소로 이송되고 있다. ⓒ천지일보 2018.10.22

심신미약·상실 합쳐 심신장애

‘책임이 없으면 형벌도 없다’

안타까운 피의자 구원의 역할

또는 악질범죄자 감형 도구로

심신미약 주장 사건 인정 19%

[천지일보=홍수영 기자] ‘강서 PC방 살인’ ‘강서 전처 살해’ 등 사회를 뒤숭숭하게 만든 사건의 피의자들이 잇따라 심신미약과 관련된 주장을 하자 엄청난 공분을 사고 있다. 강서 PC방 살인의 경우엔 심신미약을 이유로 감형하지 말아달라는 청와대 국민청원에 참여한 인원이 100만명을 훌쩍 넘겼다. 국민청원 사상 최다 기록이다.

심지어 심신미약으로 인한 감경을 폐지해달라는 청원도 청와대 게시판에 계속 올라오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 과연 많은 이들을 분노케 하는 심신미약이라는 규정은 얼마나 적용되고 있을까?

심신미약·심신상실 합쳐 ‘심신장애’로 지칭… ‘책임 없으면 형벌도 없다’

심신미약이란 심신장애의 하위개념으로 옳고 그름을 구분하는 능력이 매우 떨어져 있는 상태를 뜻한다.

심신장애는 심신상실과 심신미약으로 나뉘는데, 형법 제10조 1항 ‘심신장애로 인해 사물을 변별할 능력이 없거나 의사를 결정할 능력이 없는 자의 행위는 벌하지 아니한다’는 규정이 심신상실, 2항 ‘심신장애로 인해 전항의 능력이 미약한 자의 행위는 형을 감경한다’는 조항이 심신미약에 해당한다.

이는 ‘책임이 없으면 형벌도 없다’는 형법의 책임주의 기본 원칙에 따른다. 자신의 행위를 적절히 통제할 수 없는 상태의 사람이 책임을 지게 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가정폭력.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가정폭력.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안타까운 피의자 감형 사례

지난 2005년 서울고법 형사1부(당시 이주흥 부장판사)는 자신에게 욕설한 남편을 흉기로 살해, 1심에서 징역 8년을 선고받은 서모(46, 여)씨의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를 이유로 심신미약을 인정해 징역 5년으로 감형했다. 재판부는 PTSD에 시달리던 서씨가 남편의 계속된 폭행과 욕설에 사건 당일 극도의 흥분에 빠져 충동적으로 범행한 것으로 봤다.

같은 해엔 서울고법 형사7부(당시 고영한 부장판사)가 자녀들이 보는 앞에서 자신을 성폭행하고 딸을 성추행한 남편을 목 졸라 숨지게 한 이모(43, 여)씨에게 징역 3년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징역 2년을 선고한 일도 있었다.

고 판사는 “이씨가 반복되는 남편의 폭력 때문에 ‘매 맞는 아내 증후군’과 우울증 등에 시달려 온 점이 인정된다”며 “범행 당시에도 남편의 딸 성추행 모습을 보면서 이를 막지 못하는 것에 죄책감을 느껴 심신장애 상태에서 살인을 저지른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이처럼 심신장애 규정은 경우에 따라 어쩔 수 없는 상황에 빠진 이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미는 조항으로 역할을 했다. 하지만 일반 시민 감정으로 납득하기 힘든 사건에서도 심신장애를 이유로 감경을 받았던 것도 사실이다.

‘강남역 살인사건’ 피의자 김모씨. ⓒ천지일보DB
‘강남역 살인사건’ 피의자 김모씨. ⓒ천지일보DB

◆악질 강력 범죄자 감형 사례

그 대표적 사례는 2008년 여자 아이를 유인해 강간·폭행하고 중상해를 입힌 조두순(당시 56세) 사건이다. 당시 법원은 검찰이 구형한 무기징역보다 낮은 징역 12년을 선고했다.

검찰은 “조씨가 술에 취하면 정상적 행동을 하지 않는 자신의 성향을 알면서도 술을 마신 뒤 범행을 저질렀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법원은 “알코올 의존증 환자로서 심신미약 상태에서 범죄를 저질렀다”는 조씨 주장을 인정했다.

2016년에 발생한 ‘강남역 살인사건’도 꼽을 수 있다. 당시 34세였던 피의자 김성민은 조현병 환자로 피해망상에 휩싸여 있었다. 법원은 이를 심신미약으로 인정해 검찰이 구형한 무기징역보다 낮은 30년형을 선고했다.

이런 기억을 간직한 시민들에게 최근 벌어진 강력 사건 피의자들의 심신미약 주장은 납득할 수 없는 것으로 여겨졌으며 여론도 급속도로 악화됐다. 다만 이들이 심신미약을 인정받을 가능성은 많지 않다.

◆우울증으로만 인정한 사례 없어… 심신주장 사건 중 19%는 인정

[천지일보=박완희 기자] 21일 1심 선고를 받기 위해 서울 도봉구 서울북부지법에 도착한 ‘어금니 아빠’ 이영학(36). 오른쪽은 지난해 10월 경찰에 연행되는 이영학의 모습. ⓒ천지일보 2018.2.21
[천지일보=박완희 기자] 21일 1심 선고를 받기 위해 서울 도봉구 서울북부지법에 도착한 ‘어금니 아빠’ 이영학(36). 오른쪽은 지난해 10월 경찰에 연행되는 이영학의 모습. ⓒ천지일보 2018.2.21

최이문 경찰대학교 교수의 2017년 논문 ‘정신장애 범죄자에 대한 법원의 책임능력 판단에 대한 연구’에 따르면, 2014~2016년 법원이 인정한 심신장애 정신질환은 조현병 42.67%, 지적장애 15.64%, 정동장애(조울증) 14.66% 순이었다. ‘강서 PC방 살인사건’ 피의자 김성수가 바라는 것처럼 우울증만으로 심신미약을 인정한 사례는 없었다.

넓게 봐도 지난 2006년 산후우울증을 앓던 20대 주부 최모씨가 자신의 3개월, 두살된 남매와 함께 다리에서 뛰어내려 자신만 살고 두 아이는 죽었던 사건처럼 극소수의 사례만 인정받았다. 이 경우에도 남편과 시부모 등 가족들의 탄원이 법원 결정에 영향을 미쳤다.

심신장애를 인정한 사례는 5명 중 1명 꼴로 나타났다. 최 교수의 논문에 따르면 2014~2016년 형사사건 160만건 중 1심 기준으로 심신장애를 주장한 사례는 1597건이었다. 이중 법원이 인정한 건 305건(19%)이었다. 심신장애를 주장한 사건 중 81%가 인정되지 않은 것이다.

심신장애를 인정하지 않았던 한 예로 자기 딸의 동창인 여중생을 성추행하고 살해한 혐의를 받은 ‘어금니 아빠’ 이영학은 평소 환각과 망상이 있었다며 심신미약자로 인정해줄 것을 주장했지만, 1·2심 법원 모두 이를 인정하지 않고 1심에선 사형, 2심에선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2017년엔 초등학생을 유인해 살해한 뒤 시신을 훼손하고 유기한 ‘인천 초등학생 살인사건’의 주범 김모양에게 1·2심 모두 미성년자 법정최고형인 징역 20년을 선고했다. 김양 역시 자폐성 정신질환의 하나인 ‘아스퍼거 증후군’을 주장했으나, 법원은 이를 인정하지 않았다.

두 사건 모두 불인정 사유로 피고인들이 범행을 사전에 계획했다는 점을 들었다. 김성수의 경우에도 집에서 칼을 갖고 다시 사건 현장으로 돌아왔다는 점에서 심신미약을 인정받을 확률이 낮다는 분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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