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티칸.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바티칸.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최근 문재인 대통령의 적극 중재로 교황 방북이 가시화되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종단으로 꼽히는 천주교. 그러나 중세 천주교의 부패는 극에 달했고, 그 부패의 최정점에 교황이 있었다. 그들의 부패를 95개조 반박문에 써서 내걸면서 종교개혁이 일어났고, 오늘날 개신교의 모태가 됐다. 종교개혁 501년이 된 지금 천주교는 얼마나 개혁되고 변화했을까. 천주교의 과거와 현재, 천주교의 부패에 반발해 태동한 개신교의 탄생과정과 실태를 진단한다.

[천지일보=강수경 기자] ‘가톨릭’으로 지구촌에서 통칭되는 천주교는 성서를 경서로 하는 종단이다. 흔히 기독교라고 불리는 그리스도교의 하위 종파로 분류된다. 그리스도교에는 천주교, 정교회, 개신교 등이 있다. 수많은 그리스도교 종파 중 교세가 가장 크다. 미국 해외선교연구센터(OMSC)가 지난 2013년 발행한 국제선교통계보고서(IBMR)에 따르면 천주교는 전 세계 71억명 중 12억 500만명(17.02%)으로 이슬람교(23.09%) 다음으로 많은 신도수를 갖고 있다.

이처럼 많은 신도수를 보유한 가톨릭은 역사적으로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종단이다. 하지만 이에 대한 비판도 있다. 가톨릭이 권력을 갖게 된 배경에 정치적인 요소가 컸기 때문이다.

한국천주교주교회의가 홈페이지를 통해 가톨릭에 대해 소개한 내용을 보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우신 교회로서, 예수님과 함께 생활하던 제자들인 사도들로부터 이어오는 법통을 오늘날까지 고이 간직하고 있다”고 명시한다. 또 “서기 30년경, 예루살렘에서 시작된 초기 그리스도교는 사도들의 열성적인 선교 활동으로 시리아, 그리스, 로마 등지로 신속하게 퍼져 나갔다”며 “천주교는 황제 숭배를 거부한다는 이유로 당시 세계를 지배하고 있던 로마의 통치자들에게 300여 년 가까이 혹독한 박해를 받았지만 굳건하게 신앙을 지켜 마침내 313년 신앙의 자유를 얻었고, 곧이어 로마 제국의 국교가 됐다”고 설명한다.

◆제국과 공생관계 된 로마가톨릭

실제로 대략 서기 300년을 기준으로 가톨릭교회는 그 이전과 이후 교회 분위가 사뭇 다르다.

3세기까지도 로마 제국 전역에는 로마 감독, 콘스탄티노플 감독, 시리아의 안디옥 감독, 예루살렘 감독, 알렉산드리아 감독 등 5명의 감독들이 교회를 다스려 왔다. 이 가운데 신앙인들은 박해를 견디며 숨죽인채 신앙생활을 했어야 했다. 그러나 4세기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그리스도교로 개종하면서 상황은 반전된다. 로마제국은 밀라노 칙령을 통해 가톨릭을 로마제국의 종교로 공인했고, 이후 교인들의 입장은 바뀌었다. 그러나 권력의 확장은 신앙의 부패로 귀결됐다. 심지어 당시 가톨릭교회는 공인한 황제의 이름을 따 콘스탄티누스교회 라고 불리기도 했다.

제국의 비호를 받기 시작한 교회는 제국과 공생관계가 될 수밖에 없었다. 세속 황제에게 가톨릭교회는 정치적으로 이용할만한 수단으로 인식됐다. 대공의회인 니케아공의회는 황제가 공권력을 발휘해 소집됐으며 모든 비용도 부담했다. 회의 결과는 황제가 원하는 대로 결의될 수밖에 없었다. 가톨릭교회의 정치성은 로마의 감독이 교황의 직위를 받아가는 과정에서 더욱 짙어졌다. 4세기 말 황제 테오도시우스는 그리스도교 국교령을 내렸다. 그리스도교 외 다른 종교는 배척 대상이 됐다.

5세기에는 수도원 운동이 일었고, 11세기에는 이슬람권의 확장으로 교황 지휘 아래 십자군운동이 일어났다. 십자군 전쟁의 잇따른 실패로 교황의 권위는 땅에 떨어졌다. 15세기 유럽의 경제력이 커지면서 교회는 세속주의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가톨릭교회 내에서는 심지어 교황이 난립하는 ‘대립교황’이 출현하기도 했다.

교회의 분열과 그로 인한 교회 내부의 혼란으로 2명의 교황은 물론, 심지어는 3명의 교황이 동시에 존재하기도 했다. 이들 교황들은 각자 적법한 선거를 통해 교황으로 선출되었다고 주장했으며, 그렇기 때문에 자신만이 교회를 지도할 수 있는 권한을 소유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첫 번째의 대립 교황으로는 히폴리토로 추정되며 마지막 대립교황으로는 펠릭스 5세로 알려져 있다. 성직자나 수도자의 무지와 도덕성의 퇴폐도 심했다. 당시 수녀들이 거주하던 수도원이 공창으로 운영됐다는 주장도 있다.

마틴 루터는 당대 가톨릭교회의 부패상을 지적하며 프로테스탄트교회(개신교)를 분립했다.

16세기 이후 유럽 통일이 붕괴됐고, 근대국가가 탄생했다. 1869~1870년까지 진행된 1차 바티칸공의회에서는 가톨릭교회의 교리를 수호하고 교황의 권위를 높이기 위해 ‘교황 무오’가 선언됐다. 교황이 무오하기 때문에 교황의 말과 선택 등에 오류가 없다는 주장이었다. 이는 역대 교황들의 치부가 드러나며 비판의 대상이 됐다.

반면 1962~1965년까지 이어진 2차 바티칸 공의회는 이전과는 다른 양상을 보였다. 라틴어로만 진행되던 예전을 자국어로 할 수 있도록 했으며, 정교회와 개신교 등 교단에 대해 이단이 아닌 ‘분리된 형제들’로 보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현재 바티칸이 세계 최소의 독립국 형태의 나라가 된 것은 로마가톨릭이 국가와 정교조약을 맺었기 때문이다. 1929년에는 이탈리아 정부와 로마가톨릭 사이에 라테란 협정이 체결됐고 바티칸은 한 나라로 독립할 수 있었다.

◆ ‘교황’ 뜻 알고 사용하나?

교황은 라틴어로 파파(Papa), 헬라어로 파테르, 영어로 포프(Pope), 한국어로 교황(敎皇)이라 한다. 라틴어 파파(Papa)의 원 의미는 아버지(Father)라는 뜻이다. 기독교 성경에서 ‘아버지’는 하나님을 뜻한다. 또 한국에서 사용되는 ‘교황(敎皇)’이라는 명칭도 풀이하면 가르칠 ‘교(敎)’에 천제(天帝) 즉 하느님을 가리키는 ‘황(皇)’을 쓴다. 뜻 그대로 풀이하면 가르치는 만물의 주재자, 즉 교황은 하나님이라는 해석이 가능하다. 이 해석대로라면 명칭 자체로 논란거리가 된다. 하지만 명칭 자체를 문제삼은 목소리는 거의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천주교는 1대 교황을 베드로로 정했다. 이후 모든 교황은 사람이다. 명칭 해석대로라면 사람을 하나님으로 부르는 격이 된다.

한국천주교 예비신자 교리서에 따르면 ‘교황(敎皇)’의 역할에 대해 “이 지상에서 그리스도의 대리자로서 막중한 임무를 맡고 있다”며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몸소 교회를 세우신 다음 열 두 제자를 뽑으시고, 그 가운데 베드로를 사도들의 으뜸으로 삼아 교회를 다스리도록 위임했다. 베드로 사도의 후계자들이 곧 교황”이라고 강조한다.

천주교는 성서 마태오복음 16장에는 베드로에 대해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울 터인즉, 저승의 세력도 그것을 이기지 못할 것이다. 또 나는 너에게 하늘 나라의 열쇠를 주겠다. 그러니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고,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릴 것이다’라는 구절을 인용해 베드로가 교황이 될 수 있는 명분을 제시하고 있다.

교황은 1059년부터 추기경단의 비밀투표로 선출했다. 새 교황은 착좌할 때 관습에 따라 새 이름을 스스로 선택한다. 2013년 교황직에 오른 프란치스코 교황은 266대 교황이다.

교황은 로마의 주교, 그리스도의 대리자, 베드로 사도의 후계자, 서방교회의 최고 지도자, 바티칸 시국 원수 등 여러 직함으로 불린다. 가톨릭교회는 해마다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사도 대축일(6월 29일)에 가까운 주일을 교황 주일로 지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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