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용진 감독. ⓒ천지일보(뉴스천지)

윤용진 감독 인터뷰
중견 CF 감독의 첫 데뷔작, 농익은 종교영화 <할>

[천지일보=최유라 기자] 불경과 성경이 14일 한 스크린에서 만난다. 최근 들어 종교편향이 극심해지고 있는 가운데 양 종교의 교점을 찾아주는 영화가 나와 눈길을 끈다.

영화계 첫 소재로 등장한 종교영화 <할(喝)>의 뜻은 ‘불교 선종에서 스승이 참선하는 사람을 인도할 때 질타하는 고함소리’를 뜻한다. 즉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절대진리를 나타내기 위해 할을 한다고 일컫는다.

한때 수많은 기업·브랜드 홍보 광고도 제작한 중견 CF감독의 첫 데뷔작이기도 한 <할>. 감독이 보여주고자 한 말을 무엇일까.

◆천주교냐 불교냐 나도 모르겠다

지난 4일 윤용진(47) 감독을 찾았다. 가장 궁금했던 질문은 윤 감독의 종교였다. “내 종교가 천주교나 불교냐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그는 자신의 종교 배경 변천사를 짧으면서도 굵게 전했다.

그는 한때 천주교 세례도 받았고, 세례명까지 있는 천주교인이었지만 언젠가 불자 친구가 건네준 책 한 권이 그의 인생을 바꿔놓았다.

임제 선사 어록을 강의한 오쇼 라즈니쉬의 <마음을 버려라>를 읽은 윤 감독은 이로 인해 <반야심경>을 접하게 됐다. “반야심경은 260자 밖에 안됩니다.”

처음으로 받아본 불경 서적에 다소 거부감도 있었겠지만 짧으니까 한 번 읽어볼 만 하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이내 못 이기는 척 반야심경 처음 구절을 읽기 시작했다.

觀自在菩薩(관자재보살) 行深般若波羅密多時(행심반야바라밀다시) 照見五蘊皆空(조견오온개공) 度一切苦厄(도일체고액).

윤 감독은 처음부터 막히는 어려운 법문을 이해하느라 꽤나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읽기 시작하면서 점점 불교의 매력에 빠졌고, 그 후로 불교를 이해하려는 마음이 서서히 열리기 시작했다.

◆누구나 웃음 속에 고민이 있다.

윤 감독은 어렸을 때부터 남녀노소를 불구하고 사람들이 웃고 살아도 항상 마음속에 고민을 실은 채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는 한 예로 한국 학생들의 자살률이 급증해지고 있는 것도, 사회에서 짊어지고 갈 책임이 막중한 어른들뿐 아니라 어린 친구들도 그들 나름의 심각한 고민이 많이 생겼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고민이 생기는 이유가 궁금했던 윤 감독은 반야심경에 나온 많은 구절 중 ‘조견오온개공 도일체고액’의 ‘오온(五蘊)’ 때문이었음을 알게 됐다.

오온이란 감각 지각 사유 의식 네 가지 비물질적 요소와 물질적 요소가 합해진 ‘사람’을 말한다. ‘오온이 공허하다는 것을 알게 되면 도의 모든 고통에서 벗어난다’는 말에 공감한 것이다.

윤 감독은 “우리나라에 불자도 많고, 절에도 많이 갔었는데 왜 이제야 반야심경을 보게 됐는지 모르겠다”며 “불교를 좀 더 알려야겠다는 강한 신념에 시나리오를 짜게 됐다”고 말했다.

◆주기도문의 새로운 발견

영화 속에는 불경과 성경 구절이 등장한다. 특히 그는 불경을 접하면서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 많은 부분 중 주기도문을 다시 보게 됐다.

윤 감독은 “주기도문에 있는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나라가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부분에서 ‘땅에서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게 해달라’는 것이 포인트지만 이것을 깊게 생각하는 사람이 없는 것 같다”고 말한다.

그는 이렇게 설명했다. “하늘에서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진 것은 하늘나라 즉 천국이 이루어진 것을 말하는 것 아닙니까.

많은 종교인들이 천국에 가고자 신앙을 하면서 ‘생을 다하면 저 하늘에 있는 천국에 간다’고 말합니다. 정작 이 땅에 천국이 이루어지게 해달라고 기도하고 있으면서 말이죠.”

▲ ‘캐논인가 캐논이 아닌가’라는 유명한 카피를 남긴 윤용진 감독의 캐논 광고(위). 아래는 라이코스 CF. (바닐라엔젤 제공)

◆공대생이 오히려 더 감상적이다.

윤 감독은 공대생이다. 하지만 미술이 하고 싶어 결국 일본으로 유학을 가서 디자인 공부를 한 뒤 광고회사 ‘오리콤’에 취직했다.

그곳에서 그래픽 디자인을 하다가 필름 쪽에서 일하는 일본인을 만났고 서로 호흡을 맞추다가 CF 쪽으로 길을 바꿨다. 그러다 CF감독이 된 것이 경험이 돼 영화까지 찍게 됐다.

그는 “공대생이 오히려 더 계산적이고 이성적일 것이라고 생각할 지도 모르지만 이성적이기 때문에 감성적일 수도 있다”고 말한다.

기차를 놓쳤을 때 ‘늦었구나’라고 말할 수 있겠지만 반대로 다음 기차를 기다릴 때 ‘너무 일찍 왔구나’라고 말할 수 있는 것과 같다고 말한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사람들이 생각을 반대로 할 수도 있지만 오히려 반대되는 것이 더 가까운 것일 수도 있답니다.”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

‘산이 높네’ ‘물이 흐르네’ ‘물은 깊네’ 등 사람들이 느끼는 생각은 모두 제각각이다. 그는 성철스님의 대표적인 어록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라는 말을 꺼냈다.

부처님의 무의법을 나타내는 이 어록은 사람의 생각이 들어가지 않은 채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라는 뜻으로 유명하다.

영화 마지막에 나오는 이 어록은 영화 내내 나왔던 불교와 기독교 교리가 추구하는 방향이 결국 다르지 않음을 간접적으로 보여준다. 사람들의 생각이 다르면 서로 만나서 싸우게 되는 것이라며 종교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그는 “부처님은 ‘자비’, 기독교는 ‘사랑’을 중시하기 때문에 서로 다른 것 같지만 결국 자비와 사랑은 서로 같은 것”이라며 “하지만 두 종교가 서로 같다는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그는 양 종교가 서로 반목하지 않고 화합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싶다고 전했다.

그에게 마지막으로 영화를 보는 이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그는 이렇게 답했다.

“자기 생각이 맞으면 얼마나 맞겠습니까. 될 수 있으면 자기의 편협 된 생각을 내려놓고 남의 얘기도 들어보고 내 얘기가 틀리지 않았는지 다시 한 번 생각해 본다면 특별히 싸울 일이 없을 겁니다.”

<약력>
인하대 환경공학과 졸
일본도쿄디자인아카데미 수학
광고대행사 오리콤
프로덕션 피디하우스
현 바닐라엔젤 대표
CF 제작 - 라이코스/ 캐논/ 모토로라/ 보루네오/ 두산건설 등

▲ 종교영화 <할(喝)>. (바닐라엔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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