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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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 수도원 수녀들의 감춰진 이야기

중세문화 종교사연구가 양태자 박사

14세기 베네치아 수도원 흑역사 조명

[천지일보=강수경 기자] 세계 곳곳에서 가톨릭 성직자들의 성추행과 은페 의혹 등이 불거지며 가톨릭교회가 지독한 홍역을 앓고 있다. 최근 교황청에서 열리고 있는 세계주교대의원회의에 참석 중인 유흥식 주교(대전교구장)는 이와 관련해 현지에서 연합뉴스와 인터뷰를 갖고 “이 문제로 미국을 비롯한 세계 교회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이 사실”이라며 “교회가 통렬히 반성하고, 각성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데 이견이 없을 것”이라고 가톨릭교회 내 분위기를 전했다.

사그라지지 않고 있는 가톨릭교회의 성문제는 어디서부터 시작됐을까. 기독교사상 10월호에 중세문화 종교사연구가 양태자 박사가 기고한 ‘중세사람들의 삶와 죽음 03’ 하위 주제인 ‘수녀원이냐 결혼이냐-중세 수녀원과 결혼지참금’ 글에서 중세시대 수녀들의 애환을 찾아볼 수 있었다.

양태자 박사의 기고글에 따르면 사학자 마리 라벤은 14세기경 이탈리아 베네치아의 수녀원에 대해 3년 동안 연구한 결과를 발표했는데, 놀랍게도 수녀의 절반가량은 억지로 수녀원에 들어갔다.

사학자 후티 스페어링의 연구에 따르면 비자발적으로 수녀원에 들어간 여인의 수가 베네치아 수녀의 50% 이상을 차지했다. 이들은 풍습인 결혼 지참금 문제로 부모들에 의해 강제로 수녀원에 들어가야 했다. 부모들은 결혼 지참금보다 저렴한 수녀원 지참금을 내고 시집보내지 못한 딸을 수녀원에 보냈다. 당시 결혼 지참금은 법적으로 1600두카텐(현 한화 약 2억 4000만원)으로 정해졌다. 그러나 실제 결혼 지참금은 3000두카텐(현 한화 약 4억 6000만원) 정도 했고, 심하게는 2만 두카텐(현 한화 약 30억 7000만원)까지 올랐다.

이같은 상황에서 베네치아의 많은 딸들이 자신의 의사와는 상관 없이 평생을 수녀원에서 지내야 했다.

억지로 수녀가 된 것도 문제지만, 더 큰 문제는 그 다음에 벌어졌다. 양 박사의 글에 따르면 종교개혁을 일으킨 마틴 루터는 수녀원에서 벌어진 성폭력에 대해 비판의 칼날을 세웠다.

당시 대주교 가오바니 티폴로는 부모에 의해 강제로 수녀가 된 것이 정당하다고 주장했다. 가오바니는 수녀원에서의 삶이 더 안전하다고 말했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기로라모 프리울리가 쓴 일지에 따르면 시에 세워진 수녀원은 마치 ‘공적인 창녀촌’ 같았고, 수녀들은 ‘창녀’처럼 살았다고 기록돼 있다.

중세 큰 도시에서는 결혼하지 않은 남자들의 성적욕구를 해결한다는 명목으로 시에서 직접 공창을 운영했는데, 이는 토마스 아퀴나스 등 당대 신학자들의 영향을 받았다는 설명이다.

게다가 그러한 성폭력 등 행위에 대한 은폐의혹도 제기된다. 1509년 원로원이 수녀원을 더럽힐 경우 징벌을 내린다고 발표한 게 당시 상황을 예측할 수 있게 하는 증거다.

원로원은 수녀원에 허가 없이 발을 들여놓는 이들이나 수녀가 수녀원을 도망칠 수 있도록 돕는 행위를 하는 자들을 감옥에 넣거나 아니면 평생을 유배지로 보낸다는 법을 만들었다. 가톨릭 교회의 수장들도 이에 동조했다.

종교개혁자 루터는 수녀원의 이러한 불합리성에 대해 비판했다. 루터는 도둑 같은 교회 수장들의 성적인 노리갯감에서 딸을 데리고 나올 수 있도록 하라며 부모들에게 강력하게 촉구했다. 이런 글을 읽고 수녀들이 수도원에서 도망쳐나오기도 했다.

양 박사는 “당시 수녀원을 도망쳐나온 여인들이 할 수 있는 선택은 결혼을 하거나, 하녀로 살거나, 이 두 가지 경우가 아니면 창녀로 살아갈 수밖에 없던 시대였다”고 말했다. 루터는 수도원에서 도망나온 9명의 수녀 중 한 사람이 결혼을 못하고 있자 자신이 결혼하기로 마음 먹고 1525년 6월 그와 결혼했다.

양 박사는 “베네치아의 수녀원 이야기는 중세 문화사를 엿보게 하는 흘러간 옛날 이야기처럼 들리지만, 실제로 그곳 수도원에 갇혀서 몸부림쳤을 여인들을 상상하면 참으로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고 소회했다.

양태자 박사는 대구 가톨릭대학교 독어독문과를 졸업한 뒤 독일에서 비교종교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20여년간 독일에서 거주하며 중세사에 관해 연구하며 ‘중세의 뒷골목 풍경-거리의 악사에서 사형집행인까지, 중세 비주류 인생의 풍속 기행’ ‘종교학적으로 분석한 개념이 서구 기독교의 믿음체계와 전통적인 반투 아프리카에 나타난 종교성과 그 관계성 연구’ ‘한국 기독교에 나타난 샤머니즘적인 요소들’ 등을 저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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